(제 44 회)

제 5 장

3

 

허정효는 팔베개를 하고 나무침대우에 누워있었다.

몸에는 비록 한장의 모포를 둘렀지만 마음은 푹신한 비단이불을 덮고있는것처럼 뜨뜻하다.

조금 있자 한동안 잊어버렸던 질탕한 쟈즈곡이 귀전에 들려오더니 허리와 다리가 저절로 들썩거렸다.

이런 땐 고놈의 계집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년은 사내를 무릉도원으로 끌고 가는 솜씨도 괜찮지만 춤가락 또한 사람들의 넋을 빼앗을만큼 뛰여났어. 흠,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나처럼 독한 사나이가 연약한 풀잎사귀같은 계집한테 꼼짝 못하다니. 그년은 지금 뭘 하고있을가? 혹시 하불의 몸뚱이밑에 깔려가지구 교성을 지르고있는게 아닐가? 그때 그자가 그년한테 눈독을 들이고있었거던. 퉤, 더러워서… 하지만 각하, 한발 늦었소그려. 그년의 배안에는 이미 내 씨가 박혀있단 말이요. 속으로 뇌까리던 허정효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표무강을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전투부대에 쫓겨갔던 일이 생각났던것이다.

…어깨우에 초라한 소위계급장을 올려놓은 허정효는 이를 사려물고 미친듯이 싸웠다.

다른 소대들은 《공산군》이 공격하면 꽁지가 빳빳해서 달아났지만 그는 도망치는 사병들을 권총으로 쏴갈기며 목이 터지게 돌격을 부르짖었다.

어느날 허정효는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독사같은 상관이 죽은줄로 안 사병들은 쏘던 이를 뽑은것처럼 시원해하며 얼씨구 좋구나 하고 달아났다.

그날 밤 오랜만에 발편잠을 자던 사병들은 《집합!》 하는 고성에 놀라 깨여났다.

어디서 소대장같은 독종이 나타났어 하고 투덜거리며 뛰쳐나오던 사병들은 말뚝처럼 굳어졌다.

피흐르는 어깨를 싸쥔 허정효가 자기들앞에 서있었던것이다.

염라대왕이 그만 출석부를 잊어버렸나? 저놈은 과연 명두 길구나!

사병들이 수군수군하는데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앙칼진 목소리가 터졌다.

《난 부상당한 상관을 버리고 달아난 너희들의 죄를 따지지 않겠다. 그러나 화랑도정신을 줴버린데 대해선 용서할수 없어서 지옥의 문앞에서 다시 돌아섰다. 1렬 뒤로 돌앗!》

앞에 선 사병들이 뒤로 돌아서자 소대는 두줄로 갈라졌다.

《뺨치기, 시작!》

철썩, 철썩…

대충대충 뺨을 갈기고있는 사병들을 노려보던 허정효는 매몰차게 뇌까렸다.

《상대를 넘어뜨린자는 취침해도 좋다!》

그 말이 떨어지자 당장 형세가 달라졌다.

히죽거리며 뺨치는 시늉을 내던 사병들이 별안간 사나운 이리로 둔갑하였다.

이쪽에서 힘껏 뺨을 갈기자 저쪽에서는 그보다 더 세게 후려갈긴다.

철썩…

철썩…

사병들은 죽기내기로 뺨을 치다못해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찼다.

《소위님!》

뼈대가 실한 이등병이 선참으로 손을 쳐들었는데 그의 발밑에 한 사병이 나딩굴고있었다.

허정효가 턱짓으로 천막쪽을 가리키자 이등병은 으쓱해서 뛰여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뺨치기는 더욱 맹렬해졌다.

반시간이 지나자 그 자리에 서있는 사병은 하나도 없었다.

이발이 부러지고 코등이 깨여진 사병들이 가까스로 일어나자 허정효는 소리쳤다.

《기립, 또 시작하라!》

또다시 반시간이 지나자 한개 분대가량 되는 사병들이 남았다.

경멸에 찬 눈길로 쓰러진 사병들을 노려보던 허정효는 씨벌여댔다.

《너희들은 약자들이다. 오늘은 동료한테 맞아서 넘어졌지만 래일은 공산군에게 맞아죽는다. 알겠는가?》

상관의 말이 떨어지자 사병들은 이를 사려물고 하나둘 일어났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렇듯 사납게 물어뜯고 별의별 지랄을 다 부렸지만 구세주처럼 믿고있는 상전은 이쪽에 대고 방귀 한번 뀌지 않았다.

분통이 터져 애꿎은 하늘에 대고 주먹질하던 허정효는 용기를 내여 하불을 찾아갔다.

상전은 아는척도 하지 않고 손톱을 깎기만 하였다.

그것은 로골적인 랭대였고 무시였다. 하긴 표무강을 귀순시켜 미국의 위신을 올려세우려던 당초의 계획이 틀려진데다 조선전쟁에서 패하기까지 한 판에 싸움판에서 죽으라고 내버렸던 번견이 살아왔으니 반가울리 만무한것이다.

허정효는 그 푸대접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대신 목구멍을 타고넘어간 치욕은 지옥에 가서라도 표무강을 물어뜯고싶은 강렬한 복수심으로 바뀌였다.

어푸러지듯 하불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린 그는 눈물을 좔좔 쏟으며 울부짖었다.

《각하, 절 이북에 보내주십시오.》

때깍때깍하던 소리가 멎었다.

《이북에?》

《예, 표무강을 복수하겠습니다.》

《어떻게 복수하겠다는거요?》

상전이 호기심을 드러내자 허정효는 이미전부터 세워온 계획을 설명하였다.

《차도살인이라… 흥미있소.》

《각하, 내 뼈를 갈아서라도 기어이 그자를 복수하겠습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 노랑눈을 뱅글뱅글 굴리던 하불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며칠후 허정효는 간첩훈련소에 들어갔다.

살인기술, 폭파기술, 미행술…

그 훈련은 별로 새로운것이 아니였지만 그는 남보다 늦게 잠들고 일찍 깨여났으며 일단 훈련이 진행되면 성난 독사같았다.

간첩훈련소에서는 그를 두고 훌륭한 첩자가 될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간첩훈련소를 졸업한 뒤 허정효는 하불의 호출을 받았다.

《받소.》

랭소를 지은 하불은 표무강을 《국군》군단장으로 임명한다는 《대통령》임명장을 내주었다.

《이건 당신에 대한 나의 마지막믿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말에 허정효는 잔등이 오싹하였다.

그렇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는 물러설 자리가 없다!

그는 날카로운 송곳이로 입술을 피나게 깨물었다.

내가 누구때문에 파멸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는가? 표무강, 바로 너때문이다. 너는 공화국의 신임을 얻었지만 난 상전의 버림을 받고 명예도 부귀영화도 다 잃었다. 그렇다고 이 허정효가 순순히 물러날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 내 이제 네가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주마!

이렇게 되여 북에 들어온 허정효는 의도적으로 공화국내무기관에 붙잡혔고 한동안 뻗치는척 하다가 《월남계획》을 털어놓았던것이다.

그야말로 독사는 죽는 순간까지도 독사였다.

허정효는 지금쯤 공화국검찰기관에서 진술서내용을 확인하려고 표무강을 호출하였을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간첩과 언제 만났는가? 언제 월남하려고 하였는가?

성미가 불같은 표무강은 공화국이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칠것이다. 하지만 검사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것이다. 그한테는 륙사동창생을 《자유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간첩의 진술서와 《대통령》임명장이 증거물로 남아있기때문이다. 필경 공화국은 《배반자》인 표무강을 엄벌에 처할것이다. 차도살인! 세상에 남의 칼을 빌어 원쑤를 죽이는것처럼 통쾌한 복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쯤되고보니 표무강때문에 잡치였던 기분은 꺼져버리고 춤이라도 한바탕 추고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난 허정효는 녀자의 매츨한 허리를 그러안고 춤추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였다.

쿵짝짜, 쿵짝짜-

어둡고 좁은 감방이지만 넓고 화려한 무도장이라고 상상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래, 이런 쾌감을 어찌 계집년을 깔고타는 재미에 비긴단 말인가.

그날이, 표무강이 공화국의 버림을 받는 그 통쾌한 날이 바야흐로 다가오고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만족스러워진 그는 핫핫핫 하고 웃어댔다.

 

련재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