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6 장

1

 

날이 가고 달이 지날수록 복구건설장은 세차게 들끓고있었다.

한쪽에서는 축조공들이 흙손을 맵시나게 휘두르며 벽돌을 차곡차곡 쌓고 다른쪽에서는 미장공들이 무용수들마냥 몸을 률동적으로 흔들며 걸싸게 미장을 들이대고있었다. 그리고 한창 일떠서는 덩지 큰 벽돌건물밑에서는 지원자들이 몰탈을 이기느라고 개미떼처럼 바글거리고있었다.

낮과 밤이 따로없이 떠들썩한 그곳에 물매미같은 《뽀베다》가 나타났다.

차문이 열리자 밤색양복을 차려입은 청년이 내렸다.

누군가를 찾는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때마침 옆으로 뛰여가는 런닝그바람의 청년을 붙들고 뭐라고 이야기하였다.

외국제향수내가 물씬 풍기는 멋쟁이를 마뜩지 않게 흘겨본 청년은 저쯤에서 한창 몰탈을 이기고있는 녀기자를 발견하자 껑충껑충 뛰여갔다.

《함마명수》로 소문난 건설자를 취재한 뒤 몰탈조에 끼워 열심히 일하던 한정아는 승용차쪽을 손짓하는 청년에게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그냥 삽을 놀렸다.

외바퀴손수레들이 가득 몰려와 몰탈을 요정내자 그 자리에 혼석과 세멘트가 산처럼 쌓아지고 수십개의 삽들이 일시에 덤벼들

었다.

그동안에 시간은 퍼그나 흘렀지만 멋쟁이는 근기있게 기다렸다.

금방 또 한판을 이긴 한정아는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고 자리를 떴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기다리건말건 그냥 일하고싶었으나 건설장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차경준의 옷차림이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킬것 같아서였다.

최근 들어와 찾아오는 회수가 부쩍 늘어난 차경준이였다.

이즈음 그의 태도는 미묘하게 변하고있었다. 이를테면 점잖은 대학동창생으로부터 인내성있는 청혼자로 슬며시 모습을 바꾼것이다.

언제인가 신문사정문앞에서 두시간나마 기다린 차경준을 만났을 때 한정아는 그가 전쟁전과 퍼그나 달라졌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회포나 나누자는 그의 권고를 받아들여 공원에 갔었다.

그날 차경준은 아래로는 고대그리스의 전설적시인 호메로스로부터 시작하여 우로는 로씨야의 문호 레브 똘스또이에 이르기까지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내리며 이름난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들을 렬거하였는데 그 학구적인 태도에서는 문학에 대한 짙은 향수가 풍겼다.

그랬던 그가 얼마전부터는 명인들의 옛사랑을 력설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뽀베다》쪽으로 다가간 한정아는 반갑게 맞아주는 차경준에게 어떻게 왔는가고 물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렸소.》

마치 련정시라도 읊듯 부드럽게 말한 차경준은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내주었다.

《저한테도 있어요.》

작업복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한정아는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땀방울을 자근자근 훔쳤다.

그 모습을 바라본 차경준은 리해할수 없다는듯 한 태도를 취하였다.

《동문 건설자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일할거야 있소?》

상대방을 위하는 그 념려에 처녀는 다기차게 대답하였다.

《전 건설장에 나오면 한바탕 땀을 흘려야 시원하답니다.》

《하긴 로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재미도 있을거요.》

처녀의 심정을 리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린 차경준은 옆에 서있는 《뽀베다》를 가리켰다.

《나하구 같이 가기요.》

그때 골재를 실은 화물차가 그들옆으로 지나가며 길우에 고여있던 누런 흙탕물을 뿌려던졌다.

《젠장, 차를 좀 점잖게 몰것이지.》

손수건을 꺼내 바지가랭이에 튀여난 얼룩을 깐깐히 닦은 차경준은 또 봉변을 당할가봐 겁이 난듯 《뽀베다》를 향해 손짓하였다.

《뽀베다》는 곡선주로를 달리는 스케트선수마냥 멋지게 선회하더니 한정아옆에 스르르 멎어섰다.

《타오.》

처녀의 휘우듬한 속눈섭이 우로 올라가자 경계심이 어린 까만 눈동자가 나타났다.

《어디로 가는가요?》

《가보면 알게 되오.》

미심쩍은 생각이 갈마든 한정아는 적당한 구실을 대였다.

《전 이제 신문사에 들어가야 한답니다.》

거짓말하는 귀여운 소녀를 대하는듯 한 눈길로 처녀를 바라보던 차경준은 손목시계를 얼핏 들여다보았다.

《퇴근시간은 이미 지났소. 그리구 이 복새통에 동무를 찾아내느라 애쓴 내 수고도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소.》

《…》

《그냥 서있겠소? 사람들이 지켜보는데.》

한정아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아닌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호기심에 찬 눈길들이 날아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차경준은 친절하게 차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타오.》

할수없이 한정아는 차에 오르고말았다.

하루가 다르게 일떠서는 수도의 한복판을 기세좋게 질주하던 《뽀베다》는 모란봉기슭으로 꺾어들었다.

차경준은 전쟁통에도 용케 살아남은 오붓한 수림속에 버섯마냥 옹크리고 앉은 조선식기와집앞에서 승용차를 세웠다.

《여긴 어딘가요?》

내가 아무렴 동무한테 해되는 일을 하겠소라고 암시하듯 싱긋 웃어보인 차경준은 손으로 출입문을 가리켰다.

《들어가면 알게 되오.》

승용차에서 내린 그들이 건물안에 들어서자 접대원처녀가 쪼르르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반겨맞아주는 접대원에게 차경준은 틀스럽게 물었다.

《다됐소?》

《네, 아까부터 기다리고있습니다.》

수고했다는 인사말을 대신하듯 접대원의 손에 향수병을 슬쩍 쥐여준 차경준은 자기들을 안내하라고 눈짓하였다.

두사람을 뒤에 달고 한들한들 춤추듯 걸어가던 접대원은 구석진곳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모종의 약속을 한 차경준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한정아를 할끔 훔쳐본 접대원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지만 한정아는 선뜻 들어서지 못하였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오다나니 바지가랭이며 편리화에 몰탈이 튀여오른것을 뒤늦게야 발견하였던것이다.

그 눈치를 알아차린 차경준은 아량있게 웃었다.

《우리끼리인데 뭐라오? 들어가기요.》

아담하게 꾸려진 방안에 들어선 두사람은 깨끗한 비닐보가 씌워진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잠시후 량손에 음식다반을 올려놓은 접대원처녀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식탁을 풍성하게 차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쯤하면 그들의 관계를 알고도 남는다는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접대원은 방문을 살그머니 닫아주었다.

방안에 이름할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깃들었다.

이런 좌석이 처음인 한정아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리 상대가 대학동창생이라고 하지만 조용한 방에 남녀가 단둘이 있게 되니 몸이 부자연스럽고 눈길마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는 처녀를 바라보던 차경준이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정아동무, 생일을 축하하오!》

한정아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은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걸 어떻게 알았을가?

자기의 생일을 알고있는것은 어머니 한사람뿐이다. 외사촌오빠 로성익도 아마 잊어먹었는지 저녁무렵이 돼오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또 설사 생일을 잊고 넘어가면 어쨌단 말인가. 그래서 모른척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생각지 않게 차경준한테서 생일상을 받게 될줄이야.

얼핏 상을 둘러보니 전번 동창회때보다 품을 더 들인것이 알렸다.

그 성의는 고마왔지만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일상을 준비하느라고 왼심을 쓴 차경준을 섭섭하게 해줄수는 없었다.

《경준동지, 고마워요!》

차경준은 이쯤한 일에 뭘 그러는가고 점잖게 웃었다.

《정아동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내 식성에 맞췄는데 리해해주오.》

그 말을 듣자 한정아는 시장기를 느꼈다.

오늘 아침도 통강냉이밥을 대충 먹고 출근한데다 건설장에서 정신없이 몰탈을 이기느라 점심까지 건넸던것이다.

《자, 들기요.》

차경준이 먼저 포크를 집어들자 한정아도 저가락을 손에 들었다.

첫눈에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주군 하는 록두지짐이 눈에 띄우자 집어들고 조심스레 한입 베여물었다.

《손이 말이 아니구만.》

포크를 놀리면서 슬그머니 처녀의 손을 살펴본 차경준이 걱정하였다.

《아이참, 일하는 사람손이 그렇지요 뭐.》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구만. 가만, 지짐 같은거야 늘 먹는건데 이 과일쌀라드를 맛보우.》

차경준은 제잡담 록두지짐과 과일쌀라드접시를 바꾸어놓았다.

눈에 선 서양음식을 대하자 한정아는 잠간 망설이였다.

차경준은 모른척 하고 다른 화제를 끄집어냈다.

《난 말이요. 앞으로 동무의 손에 삽이 아니라 피아노건반을 쥐여주려고 하오.》

《!》

한정아는 그 이야기가 대학동창들사이에 허물없이 주고받는 례사로운 말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자기들의 앞날에 대한 설계이고 또한 은페된 청혼이였다.

그런데 이런 때 마땅히 높뛰여야 할 심장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가슴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모욕감 비슷한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경준동지 눈에는 내가 들끓는 현실을 외면하고 아늑한 집안에 들어앉아 피아노건반이나 두드릴 그런 처녀로 보였는가요? 유감이지만 동진 저를 잘 모르는군요.

차경준은 두손으로 류학기간에 자주 추었을 왈쯔를 형상하듯 우미한 곡선을 그려보이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내가 류학간 나라 녀성들은 저녁이면 남자들의 팔을 끼고 영화관이나 극장에 다니군 했소. 난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조국에 돌아가면 정아동무와 함께 그런 랑만적인 생활을 누려보리라 하고 생각했댔소.》

《…》

그가 뭔가 더 말하려는데 활짝 열어놓은 창문밖에서 우렁찬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터전을 다진다 힘차게 다져라

    원쑤들이 불사른 내 고향 페허에

    …

 

화려한 앞날을 기약하는 자기의 말보다 노래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처녀를 보자 차경준은 움쭉 일어나더니 창문을 닫아버렸다.

태연하게 돌아와 자리에 앉은 그를 서늘한 눈길로 바라보던 한정아는 말없이 일어났다.

미상불 자신의 불같은 고백으로 막을 내릴 결정적인 순간을 그려보고있던 차경준은 기절할것처럼 놀랐다.

《왜 벌써 일어나오?》

두눈을 내려깐 한정아는 나직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전 가봐야겠어요.》

《그건 무슨 소리요?》

두눈이 휘둥그래진 차경준은 당장이라도 처녀의 손목을 잡아 눌러앉힐 잡도리였다.

그에 비하면 한정아의 태도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는데 바로 그 모습에서 풍기는 쌀쌀한 기운때문에 차경준은 감히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오빠를 통해 보내준 향수는 받았어요. 헌데 앞으로는 그런 수고를 하지 말아주세요.》

차경준은 금시 통곡이라도 할것 같은 참담한 표정이였다.

《정아동무, 갈 땐 가더래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겠소?》

《말씀하세요.》

몹시 흥분한 차경준은 두손을 합쳤다 풀었다 하더니 드디여 입을 열었다.

《이건 이미전부터 하고싶었던 말인데…》

긴장한듯 침을 꿀꺽 삼킨 그는 금시라도 처녀를 그러안을듯 두팔을 앞으로 뻗쳤다.

《난 동물… 정아동무를 사랑하오!》

그가 쏟아낸 불같은 고백을 음미하듯 동안을 두었던 한정아는 침착하게 응답하였다.

《경준동지, 절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어 고마워요. 허지만…》

《허지만… 뭐요?》

불안을 느낀 차경준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따라외웠다.

《…우린 서로 갈길이 다른 사람들인가봐요.》

차경준의 얼굴은 삽시에 창백해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

《난 그래도 동무와 일생을 같이할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정아는 두눈을 내려깔고 침묵을 지켰다.

《혹시… 애인이 있는게 아니요?》

그전에도 청혼을 한 총각들이 있었는데 남자들이란 참 우스운 존재들이다. 자기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으면 덮어놓고 그런 질문을 한다.

약속한 사람이 있지 않는가? 있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

자신을 다잡은 처녀는 차겁게 대답하였다.

《그건… 처녀의 비밀이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아동무!》

등뒤에서 애절한 부르짖음소리가 들려왔으나 한정아는 총총히 방을 나섰다. …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솔길을 걷고있는 처녀의 눈앞에 표무강의 름름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그가 못견디게 그리웠다. 정말이지 그가 옆에 있다면 무슨 말이든 나누고싶었다.

무슨 말을 할가. 무슨 말을…

다음순간 처녀의 심장은 무섭게 몸부림쳤다.

난 바보야. 어째서 그를 잊지 못하는걸가? 그의 가슴속에 다른 처녀가 있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어쩌자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걸가?

허겁지겁 걸어가던 한정아는 머리우를 쳐다보았다.

검푸른 저녁하늘가에 방금 돋기 시작한 별들이 가득 뿌려져있었다.

아득한 거리에 떨어져있는 그 별들을 보느라니 문득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별을 바라보던 소년은 쿨쩍쿨쩍 울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던 별이 이상해서 물었다.

《얘야, 넌 왜 울고있니?》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소년은 중얼거렸다.

《당신이 먼곳에 있어서 만질수 없어 그래요.》

엉뚱한 소년의 말을 듣고난 별은 이렇게 말하였다.

《얘야, 울음을 그쳐라. 난 너의 가슴속에 있단다. 그렇기때문에 넌 날 볼수 있는거란다.》…

호- 하고 처녀는 한숨을 내그었다.

마치도 자기가 영원히 만질수 없는 별을 보며 안타까와하는 그 소년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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