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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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 철썩!-

흰갈기를 추켜세운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고있었다.

그 열정적인 물결은 전쟁의 상처를 가시지 못한 대동강기슭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는 뒤로 물러났다가 성차지 않은듯 다시금 달려오군 하였다.

아까부터 강기슭을 거닐고있던 한정아는 미세기의 그 환희로운 움직임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강할가? 어쩌면 저리도 장쾌할가?

인간생활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처녀는 생각하였다.

지금껏 자기의 가슴을 조이던 표무강의 문제가 이제는 썰물처럼 물러갔던것이다.

오늘 오후, 원고를 집필하고있는데 당위원장이 찾는다는 련락이 왔다.

《좀전에 승용차를 타고 온 장령동지때문에 그러는게 아닐가?》

《혹시 정아동무를 데려가려는게 아닐가요?》

《그럴지도 몰라.》

제나름대로 추측하는 동료들을 뒤에 남기고 사무실을 나선 한정아도 그들 못지 않게 속이 궁금하였다.

생각을 더듬어보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편집부장한테 기각되였던 기사는 수정하여 제출하였고 생활에서도 특별히 제기된것이 없었다. 그런데 당위원장이 찾는다니 보통일은 아닐것 같았다.

얼마후 당위원장방에 들어선 한정아는 동료기자들이 말하던 그 인민군장령을 알아보았다.

그는 전쟁시기 포위에 들었던 표무강련대를 구원해준 오성국장령이였다.

그때 먼발치에서 보았던 그가 몇해가 지난 오늘 무슨 일로 신문사에 찾아왔는지 알수 없었다.

쏘파에 앉으라고 권하는 오성국의 길쑴한 얼굴에는 마치 헤여졌던 혈육을 만난것과도 같은 반가운 기색이 어려있었다.

처녀가 쏘파에 얌전히 앉자 그는 다심한 아버지인양 나이는 몇살인가, 부모는 뭘 하는가, 직장일은 재미나는가 등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또박또박 대답하는 처녀를 유심히 살펴보던 오성국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아동무, 혹시 약속한 남자가 있소?》

《?》

소년선봉대시절부터 혁명에 참가하여 유명한 소왕청방어전투와 산동툰전투, 조묘태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사단장, 군단참모장 등을 력임하면서 이름을 떨쳤다는 항일투사가 그런 질문을 하리라고 짐작하지 못하였던 한정아는 놀랍기만 하였다.

《허, 다르게 생각마오. 내 꼭 알고싶어 그러오.》

서글서글한 그의 이야기에 다소 마음이 가라앉은 처녀는 솔직히 대답하였다.

《아직은… 없습니다.》

《없단 말이지?! 그럼 됐소.》

다행이라는듯 오성국의 얼굴은 금시 환해졌다.

《한가지 더 묻기요. 정아동문 표동무를 어떻게 생각하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있던 한정아였지만 그 질문에 일순 당황해나지 않을수 없었다.

아이참, 이런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한담?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있는 처녀를 바라보던 오성국은 빙그레 웃었다.

《난 동무들의 인연이 깊다는걸 아오. 듣자니 정아동문 표동무한테 군공메달주머니를 만들어주었다고 하더군.》

어마나, 죄다 알고있구나!

홧홧 달아오른 얼굴을 옆으로 돌리는데 오성국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아동무, 내가 오늘 동무를 찾아온건 위대한 수령님께서 표무강동무를 두고 하신 말씀때문이요.》

《네?》

깜짝 놀란 한정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령님께서는 표무강동무는 자신을 믿고 공화국으로 의거하였는데 아직 그의 생활을 안착시켜주지 못하였다고, 전쟁이 끝났는데 아직도 기숙사생활을 하고있다니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시였소.》

한정아는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게 정말일가?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수령님께서 그의 일생문제를 두고 마음쓰시다니.

수령님께서는 표무강동무가 의거할 때 자기를 위해 목숨바친 처녀때문에 장가를 가지 않고있다는데 그 사실만 놓고봐도 그 동무야말로 얼마나 진실하고 깨끗한 인간인가. 그럴수록 우리가 그를 잘 돌봐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소.》

《!》

지금껏 자기들의 문제를 단순히 남녀간의 애정문제로만 여겨온 한정아였다. 그때문에 표무강을 사랑하면서도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는데 수령님께서 그처럼 심려하신다니 생각이 깊어졌다.

오성국의 진중한 목소리가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난 정아동무가 이미전부터 그를 남다르게 생각한다고 보는데… 내 말이 틀리오?》

한정아는 자기의 속마음이 송두리채 드러난것 같아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내 짐작이 옳구만.》

《…》

항일의 백전로장은 투박하면서도 꾸밈없는 어조로 직방 말하였다.

《난 동무가 표무강동무와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오.》

《네?》

놀라서 그를 쳐다보던 처녀는 자기의 심장이 여느때보다 더 힘차게, 더 열렬하게 뛰고있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러는데 오성국은 한결 부드러운 어조로 이르는것이였다.

《당장은 표동무가 입원한 병원에 가보았으면 좋겠소.》

한정아는 다우쳐물었다.

《그가 어떻게 되였습니까?》

《전쟁때 다친 부상처가 도져서 그만… 무척 힘들거요.》

한정아는 그렇게 하겠다고, 병원에 찾아가겠다고 말하고싶었지만 또다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종시 대답을 못하고말았다. …

철썩, 처절썩-

생각에서 깨여난 한정아는 수면우에 눈길을 던졌다.

복구건설로 들끓는 조국의 모습을 담아싣고 줄기차게 흘러가는 대동강.

수천수만개의 거울이 떠있는듯 반짝반짝 빛나는 강물우에는 벌써 1단계 복구공사를 끝낸 평양방직공장의 밝은 불빛이 얼른거리고 날마다 몰라보게 일떠서는 평양곡산공장건설장의 용접불꽃이 언뜻언뜻 비치고있었다.

그 활기로운 수면우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신주옥의 모습이 비꼈다.

전쟁시기 개울가에서 알게 된 그들은 한정아가 대학으로 떠나자 서로 련계가 끊어졌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부딪쳤는데 그때 한정아는 신주옥이 전후에 김흥선과 결혼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반갑게도 신주옥이 다니는 진료소가 신문사와 같은 방향에 위치한 덕분에 두 녀인은 출퇴근길에서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군 하였다.

그때마다 신주옥은 집에서 있은 크고작은 일들을 숨김없이 터놓았다.

《언니, 며칠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글쎄 정신없이 자다가 무슨 소리가 나기에 깨여났더니 애아버지가 아이기저귀를 갈아주고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인 요즘 공장일이 바빠서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군 하는데 글쎄, 요 맹꽁인 아이건사도 제대로 못하니 그게 무슨 안해이겠나요?》

《오늘 새벽엔 말이예요. 아이가 칭칭거리자마자 깨났지요 뭐. 헌데 그이가 벌써 잠투정하는 아이를 달래고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내쏘았지요 뭐. 당신은 온밤 잠은 자지 않구 아이보초를 서는가구요.》

행복에 넘친 신주옥의 밝은 얼굴을 보느라니 가정생활의 중심에 확고히 자리잡은 그가 비록 나이는 두살이나 아래이지만 생활에서는 한참이나 선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틀전 퇴근길에서 만났을 때 안타까운 심정을 죄다 털어놓았다.

그때 신주옥은 주저없이 말하였다.

《언니, 난 사랑은 누가 선사해주기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제손으로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김흥선의 이야기가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메아리쳐왔다.

《표동문 지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고비를 겪고있소. 난 이런 때야말로 그의 옆에 정아동무가 있어야 한다고 보오.》

아,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 깨끗하고 진실하고…

그들은 내가 그와 일생을 같이할것을 바라고있어. 더우기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으니 그 어느때보다 힘과 용기가 필요해. 그런데도 난 맹꽁이처럼 속만 태웠어. 아니, 그를 굳게 믿고 아껴주시는 수령님께서 계시고 미더운 전우들이 있는데 무엇을 주저한단 말인가. 그래, 이제라도 그가 군공메달을 끝까지 빛내일수 있도록 도와주자. 설사 그 길에 어떤 고생이 있다고 해도 물러서지 않을테야.

철썩, 처절썩-

또 한차례 기슭을 어루만진 파도는 기진한듯 물러갔다가 강심에서 힘을 모아가지고 또다시 기운차게 밀려왔다.

지칠줄 모르고 끝없이 밀려드는 저 파도!

어쩌면 저 파도는 그의 심장으로 끝없이 달려가는 내 마음과 같을가. 표동지, 똑똑히 들어주세요. 난 동지를 진심으로 사랑해요. 끝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단 말이예요!

이마우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바퀴뒤로 곱게 쓸어넘기는 처녀의 가슴속에 사랑의 밀물이 가득차오르고있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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