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6 장

8

 

입원환자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곧 명절이라고 할수 있다.

별식을 만들어가지고 찾아오는 가족과 친척들, 새 소식을 한보따리 꿍져가지고 나타난 유쾌한 친구들, 별스레 너그러워진 군의들과 간호원들…

언제나 정숙이 흐르던 병원이였지만 이날만은 환자들과 면회자들의 말소리,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웠다.

표무강이 들어있는 입원실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의 입원실문을 제일먼저 두드린 사람은 신주옥이였다.

《련대장동지, 성철이 아버지가 나타나면 욕하십시오. 요즘은 집에 얼씬도 하지 않으니 이렇게 우리만 면회오지 않았습니까. 정말 미워죽겠습니다.》

말투를 보면 남편을 원망하는것 같지만 웃음을 함뿍 담고있는 얼굴에는 은근한 자랑기가 물결치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남편이 오늘 새벽 병원에 왔다간 사실을 모르고있었다.

신주옥이 돌아간 다음에 찾아온 사람은 서분이였다.

전쟁시기 행군중에 아이를 낳은 그 녀인은 평양방직공장에서 정방공으로 일하고있었는데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병원에 자주 찾아왔다.

그때마다 꼭꼭 데려오는 다섯살 난 영보는 어머니한테서 련대장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지 표무강을 친삼촌처럼 따랐다.

오늘도 어머니를 뒤에 떨구고 깡충깡충 달려온 영보는 침대우에 옴짝 못하고 엎드려있는 표무강에게 목말을 태워달라고 조르다가 그의 잔등우에 넌떡 올라탔다.

《이랴, 이랴!》

서분이가 큰일났다고 아부재기를 치더니 아이를 끌어내려 찰싹찰싹 엉치를 후려갈겼다.

표무강은 녀인을 만류하였다.

《아주머니, 놔두십시오. 사내아이야 좀 갈겨야 정상이지요.》

한참후 서분이가 가져온 뜨끈한 단고기국을 먹고있는데 뜻밖에 고남수가 어기적어기적 나타났다.

오늘은 무슨 날이기에 모두 약속이나 한것처럼 밀려드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련이어 찾아오니 고독감은 사라지고 즐겁기만 하였다.

전쟁시기 련대와 함께 고산진까지 들어간 고남수는 소원대로 간고한 북행길에서 소중히 보관해온 옥백미를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렸었다.

그때 그는 감격의 눈물을 좔좔 쏟으며 이제는 농사를 실컷 지어서 공화국을 받들겠다고 하였었다. 현재 고남수는 서해안의 곡창지대에서 농사를 짓고있었는데 이번에 모범농민강습차로 평양에 올라왔다가 복구건설장에 지원나온 서분이를 만나 소식을 알고 병원에 들렸던것이다.

《련대장어른, 허리병치료엔 곰열이상 없수다.》

농사군답게 투박한 이야기였지만 유순하게 내려앉은 갈고리눈에는 진정이 흐르고있었다.

그들이 돌아가자 리경일을 비롯한 전우들이 또 쓸어들었다.

그들속에는 전쟁시기 《구두식사》를 펼쳐놓았던 료리사도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직접 누른 농마국수가 풀어지기 전에 빨리 들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표무강은 그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싸웠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하였다.

면회자들의 왕래가 끊어지자 그는 죽지 부러진 새마냥 어깨가 축 처졌다. 잠시나마 몰려가던 번민의 파도가 또다시 밀려들었던것이다.

고개를 맥없이 떨구고있는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 속삭임소리는 다름아닌 자기의 가슴속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인간이 한생을 살아가자면 삶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그렇다. 목적없는 삶은 살아도 죽은것이나 같다. 하다면 내 삶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군공메달을 영원히 빛내이는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군복을 벗는다면…

《환자동지, 투약시간입니다.》

이래저래 속이 탄 표무강은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았으나 반겨맞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간호원처녀앞에서 내색할수도 없어 한마디 던지고말았다.

《약초캐러 갔다더니 언제 왔소?》

《좀전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넘겨주는 약을 받아놓은 표무강은 베개밑에 끼워놓았던 《신애의 편지》를 꺼냈다.

《이건 어떻게 된거요?》

그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를 알아보자 담당간호원은 당황해하였다.

《미안합니다. 환자동지가 없을 때…》

《동물 탓하자는게 아니요. 내가 알자는건 어떻게 되여 편지를 썼는가 하는거요.》

《저, 사실은…》

똑똑똑-

두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출입문쪽을 바라보았다.

인차 문이 열리더니 미색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처녀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그를 알아본 표무강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방긋 웃음을 담고있는 처녀는 뜻밖에 한정아였던것이다.

이 처녀가 어떻게 왔을가?

한정아가 먼저 자신만만하게 말을 건네왔다.

《무강동진 제가 온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의 부름말이 《련대장동지》로부터 《무강동지》로 바뀌였고 자기를 대하는 태도도 건설장에서 만났을 때보다 퍼그나 부드러워진것을 표무강은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그를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지 결심을 못 내리고있는데 담당간호원처녀가 한정아에게 알은체를 하였다.

《정아언니!》

《영금동무, 잘 있었어요?》

서로 반가와하는것을 보면 아마 두 처녀는 이미전부터 아는 사이 같았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간호원처녀가 딱한 처지에서 벗어나게 된것이 다행스러운 모양 얼른 입원실을 나서자 한정아는 손에 들고있던 보자기를 원탁우에 올려놓았다.

《건강은 어때요?》

《?》

표무강은 그동안 그가 퍼그나 달라졌다는것을 느꼈다.

전쟁시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복구건설장에서 마주쳤을 때도 한정아는 총명하고 자존심이 강한 처녀들이 대개 그러하듯 약간 새침한 인상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티가 전혀 없고 발랄한 표정이였다.

그 모습앞에 주눅이 들어버린 표무강은 《많이 나았소.》 하고 어름어름 대답하고말았다.

《그럼 됐군요.》 하고 한정아는 보자기를 풀었다.

음식그릇들이 부딪치는 달그락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상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표무강은 저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렸다.

분명 오래전에 어머니가 무쳐주군 하던 콩나물무침냄새였다.

아닐세라 한정아가 꺼내놓은 음식들중에는 먹음직스러운 콩나물무침도 들어있었다.

제대문제때문에 고민하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입맛이 뚝 떨어졌는데 그 냄새를 맡자 태평스레 졸고있던 목젖이 무섭게 방아를 찧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그에 련대성을 표시하듯 배까지 쪼르륵- 하고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질렀다.

제길, 이게 무슨 망신이야?

듣지 못한척 하고 원탁을 침대옆에 바싹 붙여놓은 한정아는 콩나물무침을 담은 접시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구미에 맞겠는지 모르겠어요.》

처녀의 정겨운 목소리에 표무강은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정아는 내가 콩나물무침을 좋아한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가?

《아이참, 어서 드세요!》

처녀가 진심으로 권하는데 멍하니 앉아있는것처럼 민망한 일은 없다.

에라, 어쨌든 먹고보자.

저가락을 집어든 표무강은 콩나물무침을 걸탐스럽게 먹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맛있는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어마나, 그냥 콩나물무침만…》

한정아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고 웃자 표무강은 자기가 정말 밥이랑 떡은 하나도 손대지 않고 콩나물무침만 먹어치웠다는것을 알았다.

처녀앞에서 멋적은 생각이 들었지만 여하튼 오랜만에 콩나물무침을 먹고나니 울적하던 기분이 한결 풀어지는것 같았다.

《그럴줄 알았으면 좀더 많이 무쳐올걸 그랬군요. 래일 또 가져오겠어요.》

처녀의 말에 표무강은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오지 마오.》

웃음이 찰랑거리던 처녀의 두눈이 굳어졌다.

《어째서요?》

《바쁘겠는데 공연한 걸음을 하지 말라는거요.》

《공연한 걸음이라니요?》

《글쎄 오지 말란 말이요.》

고집을 부리는 표무강을 야속한 눈길로 응시하던 한정아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신상에서 벌어진 일때문에 마음쓰는건 아닌가요?》

《…》

《이렇게 말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지금 무강동지한테선 련대를 지휘하던 그때의 기백을 찾아볼수 없군요.》

표무강은 속이 불끈거리는것을 겨우 참았다.

《그건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요?》

한정아는 주저없이 대답하였다.

《전 담가에 누워 련대를 지휘하던 무강동지의 모습을 잊을수 없어요. 그때의 동진 정말 남아다왔어요. 헌데 지금은…》

《지금은 어쨌다는거요?》

《저도 들었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맥을 놓고 주저앉으면 어떻게 해요?》

말문이 막혀버린 표무강은 씩씩 숨을 가쁘게 톺기만 하였다.

《신애언니가 살아서 동지를 보았다면… 분해서 울었을거예요.》

한정아의 입에서 신애소리가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던 표무강은 우뜰 놀랐다.

이 처녀가 어떻게 신애를 알고있는가?

또다시 들려온 처녀의 절절한 목소리가 가슴속을 아프게 헤집었다.

《물론 전 신애언니를 만나보지 못했어요. 허지만 그가 무엇때문에 꽃나이청춘을 서슴없이 바쳤는가 하는것만은 알고있답니다. 그래, 무강동진 신애언니의 편지를 벌써 잊었는가요?》

《편지?》

문득 《신애의 편지》에 대해 묻자 인차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담당간호원의 모습이 생각났다.

원래 그 처녀는 병원규정밖에 몰랐는데 별안간 군공메달을 가져다주었고 편지도 썼다. 좀전에는 한정아와 반갑게 인사까지 나누었다. 혹시?…

날카로운것이 뇌리를 치는 순간 표무강은 환자복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럼 이 편지를 쓴게 동무요?》

한정아는 단풍잎처럼 붉게 물든 얼굴을 소곳이 숙였다.

옳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숨이 가빠올랐다.

저도 모르게 거친 말소리가 튀여나왔다.

《어쩌자고 이런 편지를 썼소? 도대체 동무가 뭐길래…》

처녀의 고개가 홱 쳐들렸다.

놀라움과 실망이 한데 엉킨 까만 눈동자가 나타났다.

《어디 말해보란 말이요.》

타는듯 한 눈으로 마주보던 한정아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전… 신애언니처럼 살고싶었어요.》

표무강은 웅글은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뭐, 신애처럼 살고싶었다구?… 어떻게 정아가 신애로 될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순 없어. 절대로 그럴수 없어!

울컥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누르지 못한 표무강은 주먹으로 원탁을 쾅!- 내리쳤다.

《내앞에서 당장 사라지오!》

《네?》

처녀의 속눈섭이 가늘게 떨고있었다.

《다시 내앞에서 신애소리를 꺼내면 가만있지 않겠소.》

보이지 않는 몽둥이에 얻어맞은듯 한정아는 몸중심을 잃고 비칠거렸다.

《어쩜… 어쩜…》

신음소리마냥 같은 말을 뇌이던 한정아는 와락 얼굴을 싸쥐더니 입원실을 뛰쳐나갔다.

세차게 오르내리던 표무강의 어깨가 침대우에 떨어졌다.

《음!-》

입원실이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가고있었다.

그와 함께 모든것이 섞어지며 뒤죽박죽이 되여버렸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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