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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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간에 뿌잇한 안개바다를 헤가르며 멀리 사라져가는 조혁을 그냥 따르던 차선옥은 가볍게 문이 여닫기는 소리에 눈을 떴다. 꿈이라는것을 깨달으며 가늘게 한숨 지었다.

(여기가 어디길래 편히 누워있는걸가?…)

베개우에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성》이라고 쓴 약함들이며 깨끗한 백포들, 점적대들이 시야에 비껴오며 병원이라는것을 새삼스레 인식시켰다. 바로 이틀전에 당비서의 우격다짐에 못이겨 병원에 끌려온 선옥이였다.

도당책임비서가 조직한 사업이라고 했다. 자강도처녀를 불구의 몸으로 평양에 보낼수 없다면서 어떻게 하나 굳어진 팔을 되살려 애인의 곁에 떳떳이 내세워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급급히 입원했고 치료를 받게 되였다.

병원에서는 지금 환자의 마비된 신경을 살리고 뼈세포조직을 회복하기 위한 협의회를 진행하고있다. 기술부원장이 주최하고있는데 도안의 유능한 의사들이 초청되였다고 한다. 이따금 입원실에 들리는 담당의사는 선옥이더러 일이 다 잘되고있으니 마음놓으라고 신심을 준다.

선옥은 수술이 설사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손으로 대강 머리를 손질한 선옥은 창곁에 다가섰다.

하늘에 구멍이 펑 뚫린듯 호함진 눈이 쏟아지고있었다. 거리의 곳곳에 흰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건물들의 지붕과 골목길, 병원구내의 바늘잎나무들에 깨끗하고 정갈한 눈의 바다가 펼쳐진것이 사뭇 황홀하게 안겨왔다. 병원주위에 사는 애들이 마당이 좁다하게 뛰여다니며 눈싸움을 벌리고있었다. 정문에는 벌써 희한한 웃음을 짓는 커다란 눈사람이 막대기를 척 쥐고 서있었다. 선옥은 숫눈판에 몸을 던지고 마음껏 딩굴고싶은 심정이였다.

조혁이와 처음 만나던 때의 일이 불쑥 생각났다. 눈세계와 어울린 기타소리가 아슴푸레 들려오는듯 했다. 다시 기타를 손에 잡고 그와 함께 인생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날이 있겠는지…

(내가 무슨 허튼 생각을 다 하고있어? 온 자강도땅이 장군님을 모신 감격을 안고 설레이는데 자기 상념에만 잠겨있다니…)

선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날 아침 그는 회진하는 기술부원장에게서 자강도에 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오시였다! 사나운 북방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선옥이가 살고있는 강계땅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선옥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이런 때에 병원침상에 누워있다면 평생 죄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술부원장에게 한시바삐 일터를 지키는것이 로동계급의 본분이라고 설명하며 퇴원시켜줄것을 제기했다.

《그래, 선옥동무의 말이 옳소. 그게 본분이지. 그러나 장군님께 동무의 그 상한 팔을 보여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소? 어버이장군님께서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나 말이요. 지금은 입원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는것이 선옥동무에게는 전투라고 보오.》

기계음처럼 단조로운 기술부원장의 말을 듣고서야 선옥은 자기를 다잡을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허전했다. 장군님을 뵈옵지 못하는 설음을 이기지 못하고 오전내껏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래, 내가 환희를 느끼는 저 눈발을 헤치며 장군님께선 멀고험한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계셔. 난 저밖에 모르는 맹꽁이야.)

황홀하게 안겨오던 눈내리는 창밖의 풍경이 한스러워졌다.

언제면 눈이 그칠가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열리는 소리가 났다. 지난해 입원생활을 할 때 앙큼하게 남의 속을 들여다보며 속을 괴롭히던 담당간호원처녀였다. 간호원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별스레 환해보였다.

《선옥동지, 소식을 들었나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간호원이 흥분에 겨운 어조로 물었다.

《?…》

《아버지장군님께서 선옥동지가 일하는 공장을 현지지도하셨대요.》

《!…》

선옥은 가슴을 헤우는 짜릿한 흥분에 몸을 떨었다.

《종업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고 공장에서 준비한 예술소조공연도 보아주셨다고 온 강계땅이 들썩해요.》

장군님께서?!…》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갈듯 요동쳤다. 뼈를 저미는 아픔이 온몸을 누볐다. 눈물이 불쑥 솟구치며 두볼을 적셨다.

그러니 모두가 장군님을 뵈왔겠구나. 아버지도 기동예술선동대동무들도… 그런데 난 지금 뭘 하고있을가? 혹시 내가 공연무대에 나섰더라면 장군님께 정말 걱정을 끼쳐드렸을가?…

선옥은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이를 악물었다. 끝내는 침대에 쓰러져 소리내여 흐느꼈다.

이윽해서야 마음을 진정한 선옥은 더는 그대로 누워있을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라든 자기는 공장의 주인이였다. 장군님의 체취가 어려있는 공장에 가서 로동계급의 본분을 다하는것이 옳았다.

짐을 차곡차곡 싸는데 입원실을 나섰던 담당간호원이 또다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동그스름한 얼굴이 환희에 넘쳐있었다. 다짜고짜 선옥의 성한 손목을 잡아당기며 출입문을 가리켰다.

《왔어요. 선옥동지를 데리러 왔어요.》

무슨 소리인지 통 내용을 알수 없었다. 하면서도 어떤 비상한 흥분이 심장을 압박했다.

때마침 입원실로 공장초급당비서가 들어섰다. 숨이 턱에 닿아 간신히 몰아쉬고있었다. 너부죽한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선옥아, 어서 가자. 어서! 어버이장군님께서 지금 너를 기다리고계신다. 저 찬눈을 다 맞으시면서… 기다리신다.》

《!…》

선옥은 영문을 알수 없었다. 망연한 눈길로 당비서를 바라보았다. 담당간호원이 무엇이라 말했지만 귀에 닿지 않았다. 당비서는 울고있었다. 흡흡 느끼며 선옥의 손을 잡아흔들고있었다.

《…공장을 현지지도하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우리 공장의 전체 로동계급과 함께 공훈합창단공연을 관람하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로동자들을 빠짐없이 다 참가시키라고… 입원생활을 하고있는 선옥이도 움직일수 있으면 꼭 데려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선옥은 도대체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꿈이야기를 듣는듯 했다.

《당비서동지, 절 놀래우자고 그러지요?》

당비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두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선옥아, 정신차려라. 언제 그럴새가 없다. 장군님께서 지금 저 찬눈을 맞으시면서 기다리고계신단 말이다.》

선옥은 현훈증이 일며 몸을 비칠했다. 장군님께서 찾으신다는 소리가 귀전에서 맴돌았다.

《자, 옷을 입어요.》

간호원이 헤덤벼치며 선옥의 팔에 옷소매를 꿰여주느라 애를 썼지만 그는 여전히 망연한 자세였다.

《도당책임비서동지가 너에 대해 다 말씀드렸다. 평양에 있는 네 애인에 대해서까지 죄다 말씀올렸단다.… 장군님께선 사연을 들으시고 평양의 애인을 여기 강계땅으로 불러주시였다. 그리고 선옥이를 평양에 데려다가 치료받게 하자고 긴급대책까지 세워주셨단다.》

아니, 정말이지 꿈이야. 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놀라운 사실이 나의 신상에 닥쳐올수 있어?…

당비서는 그의 손목을 잡아끌며 계속 재촉했다.

선옥은 언제 거울앞에 서볼 겨를도 없이 입원실을 나섰다. 간호원이 목수건을 가져가라고 소리쳤으나 듣지 못했다. 당비서를 따라 어떻게 공장의 문화회관에 당도했는지 알지 못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일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계시는 모습이 뽀얀 눈발속에 안겨왔다. 눈물이 왈칵 났다. 비상한 충동에 떠받들리며 온몸이 둥 떠오르는듯 했다. 그이를 만나뵈온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언제면 자기에게도 그런 행운이 차례질가 소원하던 순간이 불원간 닥쳐온것이다.

《아버지장군님!-》

처녀는 달려갔다. 눈발을 더위잡듯 한팔을 허우적거리며 어푸러질듯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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