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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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님, 전번에 이 수역에서 잡았던 특수전파를 또 잡았습니다. 꼬마르가 내보내는 전파가 분명한것 같습니다.》

온몸이 귀가 되여 피를 태우며 도청기앞에서 안절부절하던 해리슨은 흥분한김에 지휘소에 달려올라가 큰소리로 보고했다.

부처는 대뜸 입이 쩍 벌어졌다. 너무 기뻐서 함장의자에서 뛰쳐일어나 만세라도 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면서 눈치만 보던 머피도 피비린내를 맡은 맹수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처는 내부통화기로 전파탐지실을 찾아 원산앞바다에 다른 정황이 없는가를 알아보았다. 예견한바 그대로 군함은 물론이고 고기배도 한척 얼씬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추위에 군항이 얼어붙었다니 그럴수밖에북조선의 항만들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했는데 묘하게도 이런 일이 생긴것이다. 이거야말로 신의 조화다. 고맙나이다, 《자유의 녀신》이여!

부처는 서둘렀다.

《항해장, 꼬마르가 내보내는 전파를 추적해서 령해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요.》

머피는 마지못해 응하기는 했지만 조건부를 내놓았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전파장애를 놓자는것이였다. 해리슨은 대뜸 이마살을 찡그렸다.

《무슨 소리를 해? 그러면 전파도청에 지장을 받아.》

《여보, 전파장애를 놓으면서 려도앞에까지 들어가자는거야. 그다음 전파장애를 차단하고 전파도청을 하면 될게 아닌가?》

부처도 머피의 편을 들었다.

《음, 그게 좋겠소. 전파장애와 전파도청을 몇분간씩 엇바꾸어 하게. 연구사들도 측정기재를 미리 갑판에 설치하고 대기하다가 함이 기동을 멈추면 속히 시료를 뜨고 측정작업을 하라고 하라.》

부처는 이어 전송관으로 기관실에 속도를 최대로 올리라고 명령했다.

소죽은 귀신같은 레이시는 함장이 무엇때문인지 몹시 서두른다는것을 눈치채고 우정 귀찮은 투로 느릿느릿 응대했다.

《함장님, 그렇게 들볶아대면 기관에 무리가 갑니다.》

부처는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꾹 참고 차근차근 일렀다.

《이보게, 결정적인 시각이 도래했으니 솜씨를 보여주게. 최대속도로 작전수역에 들어가 기관을 공회전시키고 긴장하게 대기하다가 명령이 내리면 즉시 최대속도로 탈출해야 해. 알겠나?》

《글쎄 그러면 기관에 무리가 간다는데두요.》

레이시는 심사가 꼬였는지 계속 이런 투로 나왔다. 곰처럼 우직한 이놈이 울뚝밸을 쓰면서 태공하면 정말 난사다. 사기를 북돋아주어야 했다.

《기관장, 노상 소음과 고열속에서 일하자니 힘이 들겠지? 난 당신과 당신의 근면하고 성실한 부하들이 지금껏 단 한번의 고장도 없이 항해를 보장한데 대하여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있소.》

레이시의 심술궂은 거친 숨소리가 잠잠해졌다.

《당신들을 어떻게 표창해야 좋을는지 모르겠소.

무엇이 요구되나? 말하게, 다 들어주지.》

아닐세라 레이시는 감지덕지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함장님, 말씀만 들어도… 정말 감사합니다.》

《어서 말하게.》

《저… 이거 이젠 지랄이 날 지경으로 적적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노상 비류지냄새가 풍기고 발동소리로 소란스러운 기관실에 처박혀있는 저희들은 뭍에 내려서 며칠 허리띠를 쭉 풀어놓고 푹 쉬는게 소원인데…》

부처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임무를 수행하고 요꼬스까항에 돌아가면 즉시 당신들의 소원을 풀어주지.》

레이시는 반신반의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음, 나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돌아가기에 앞서 며칠간 함을 정비하려고 하오. 정비는 일본인들에게 맡길테니 당신은 그새 기관수들을 데리고 호텔에 들어박혀 아가씨들과 즐기든 관광을 하든 맘대로 하오. 비용은 내가 지불하겠소.》

기관장은 이제야 발동이 걸렸는지 주기관의 동음처럼 우렁차게 소리쳤다.

《함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레이시를 믿으십시오. 전적으로 믿으십시오!》

그에 호응하듯 주기관의 동음이 와릉와릉 높아졌다. 채 타지 못한 유증기가 섞인 시꺼먼 연기가 연통이 메여지게 뿜어나갔다. 함은 전속으로 내달려 불과 반시간어간에 령해선을 넘어섰다.

해안으로 접근할수록 안개가 짙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리고 침침한 하늘에서 싸락눈이 흩날렸다. 노한 파도가 허연 거품을 물고 날뛰였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바로 그래서 부처는 안심이 되였고 저으기 흡족했다.

배군들은 정 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이런 스산한 날에 바다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고기배 한척 눈에 띄우는게 없었다.

하긴 항만이 얼어붙었다지.

부처는 조타기곁에 놓여있는 조각상에 다시한번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자유의 녀신》이여! 이런 날씨에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어서 정말 고맙소이다.

마음이 더욱 든든해졌다. 그는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녀신》이 준 자기의 행운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함장님! 저기 섬이 보입니다.》

쌍안경으로 선수방향을 줄곧 지켜보던 슈마커중위가 어린애마냥 신이 나서 소리쳤다.

《려도가 분명합니다.》

부처는 울렁이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슈마커가 넘겨주는 쌍안경을 받았다.

구름이 통채로 내려앉은듯싶은 짙은 해무와 향방없이 흩날리는 진눈까비때문에 섬의 형체가 어슴푸레 안겨왔다.

머피대위가 엄격한 어조로 주의를 주었다.

《더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우리 함은 려도로부터 7마일 떨어진 위치까지 접근했습니다.》

부처는 그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위치에서는 작전수행중 위급한 정황이 발생해도 30분이내에 공해로 빠져나갈수 있었다.

《기관 공회전! 특수분견대와 연구사들은 행동을 개시할것! 기타 성원들은 육안감시를 할것!》

부처는 명령을 내리고 함장의자의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다. 아주 태연한 자세로 려송연을 피워물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짙은 해무와 싸락눈이 함을 가리워주는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정보실에서는 전파장애를 일단 중지하고 전파도청을 시작했다. 선미갑판에서는 더크와 해리가 바다물의 시료를 뜨고 해양자료를 관측하느라 부산을 피웠다. 려송연 한대를 채 피우지도 못했는데 해리슨의 흥분한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울렸다.

《지휘소! 특수전파를 또 잡았다. 분석해보니 꼬마르에 장비한 방향성탐지기의 전파가 분명하다.》

부처는 너무 좋아서 입이 귀밑까지 째졌다.

《좋다! 꼬마르의 기지와 척수를 알아내라.》

《최선을 다하고있다.》

《해리슨대위,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라! 난 당신을 믿는다.》

부처는 려송연을 또 한대 꺼내물었다.

해리슨의 목소리가 또 확성기에서 울렸다.

《지휘소! 수송선이 상급지휘소에 보고하는 전파를 잡았다. 방파제안에 언 얼음판을 까내는중인데 자꾸만 다시 얼어붙어서 출항을 할수 없다고 한다.》

부처는 태연히 응대했다.

《그럴거요. 대위, 마음을 푹 놓고 낚시질을 하라. 큰고기를 낚으란 말이야.》

부처는 마음이 흥그러워져서 경리장교를 찾았다.

《중위, 작전수행중인 성원들에게 따끈한 커피와 쌘드위치를 공급하라. 그들의 사기를 돋구란 말이다.

그러되 술은 한방울도 내지 말라. 술을 마시는 놈은 용서치 않겠다.》

슈마커는 륜곽이 뚜렷치 않은 려도를 촬영하려고 지휘소밖에 나가서 덜덜 떨며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고있었다. 머피는 마른 낙지를 잘게 찢어 입에 넣고 껌처럼 질근질근 씹으며 탐지기의 영상관과 해도를 번갈아보고있다.

려송연의 향긋하고 독한 연기에 휩싸인 부처는 황홀한 상념에 이끌려들었다.

장차 아름답고 풍성한 이 황금어장은 우리의 소유로 될것이다. 그때 나는 로즈와 애들을 데리고 송도원에 가서 뽀트놀이와 해수욕을 해야지.

명사십리의 눈부신 백사장에 화판을 세우고 출렁이는 물결우에 둥실 떠있는 저 려도를 풍경화에 담아야지. 려도곁에 《푸에블로》호를 꼭 그려넣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나의 공적을 잊지 않게 된다. 함장인 나의 수표가 있는 그 풍경화는 후날 수만금의 가치를 가질수도 있다. 그러면 더 바랄게 무엇이랴.

부처의 달콤한 공상을 탁 깨뜨리며 해리슨이 다급한 어조로 보고했다.

《함장님, 구잠함이 날리는 전파를 잡았습니다.》

부처는 그 말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건 무슨 소리야? 항구가 얼어붙었는데 쇄빙선도 아닌 구잠함이 어떻게 나올수 있어?》

《이건 원산항쪽이 아니라 남쪽인 압룡단 앞바다에서 발신하는 전파입니다. 구잠함이 장비한 전파탐지기가 내보내는게 분명합니다. 전파가 점점 더 세지는게 심상치 않습니다.》

부처는 후다닥 뛰쳐일어나 전파탐지기앞에 서있는 머피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된거야? 눈을 감고있어?》

머피는 코살을 찡그리며 대수롭지 않게 비양조로 대꾸했다.

《해리슨이 괜히 야단을 치는겁니다. 영상막엔 아무것도 나타난게 없습니다. 》

부처는 영상막을 긴장하게 주시했다. 얼핏 보기엔 별다른게 없는것 같았다. 자리를 뜨려는데 목표지시선이 돌아가다가 남쪽으로 16마일정도 떨어진 깨알같은 흰점을 겨누고 멈춰섰다.

탐지수가 내부통화기로 보고했다.

《지휘소! 목표지시선으로 가리킨 점은 지금 우리를 향하여 35속도로 매우 빨리 다가오고있다. 신형구잠함인것 같다.》

이게 뭐야?!

부처는 눈앞이 아찔했다. 왕청같이 남쪽해상에서 구잠함이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것이다. 구잠함의 속도는 《푸에블로》호보다 세배나 빨랐다. 무장장비도 간단치 않았다. 이제 기껏 30분내에 공해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상어처럼 달려드는 구잠함을 피할수 없게 된다. 빨리 탈출해야 한다. 부처는 다급히 명령했다.

《기관 전진!》

공회전을 하던 기관에 부하가 걸리자 선체가 부르르 떨렸다.

《조타수! 공해로 침로를 돌리라!》

조타수가 부랴부랴 타륜을 돌리는데 부처는 재차 기관실에 명령했다.

《전속으로!》

레이시가 즉시 명령을 받아물지 못했다.

《빨리 기관회전수를 최대로 올리라!》

《함장님, 갑자기 그러면 기관에 무리가 갑니다.》

부처는 눈을 흡뜨며 고함을 쳤다.

《명령대로 하라! 우린 구잠함에게 발견됐다.》

《알았다!》

주기관의 회전수가 급기야 올라갔다. 연통으로 미처 타지 못한 유증기가 섞인 검은 연기가 타래쳐올랐다. 주기관은 재채기를 하더니 푸르륵 꺼졌다.

《야! 빨리 기관을 살리라! 어서!》

부처는 기관실에 독촉하고 무전실을 열었다.

《해군제독에게 빨리 알리라! 그래, 긴급전문을 내가 불러주지.

해군제독각하,

우리 함은 북조선령해에 들어갔다가 순찰중인 구잠함에게 발견되여 추격을 받고있다.

함의 좌표는 려도로부터 7. 6마일, 북위 39도 17. 4분, 동경 127도 46. 9분. 우리의 안전을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주기 바람.》

전파가 즉시 도꾜만과 사세보항에 날아갔다. 답전을 기다리는 부처는 막 피가 마르는것 같았다.

멈춰섰던 주기관이 재채기를 하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15분이 지나서야 답전이 왔다.

 

함장 앞.

빨리 공해로 탈출하라. 단속을 당하는 경우 시간을 끌면서 정황을 알리라. 아마 당신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것이다. 대아메리카의 장병들답게 당당하게 처신하라.

 

부처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였다.

글쎄 그러면 그럴테지. 우리를 누가 감히 건드릴수 있단 말인가. 설사 구잠함이 단속을 해도 나는 응하지 않을테다. 마스트에 성조기를 올리면 네놈들은 깜짝 놀라 얼른 비켜서겠지.

 

꽈릉! 꽈릉!

구잠함은 순간도 쉴새없이 폭음을 울리며 계속 고속으로 내달렸다. 짙은 안개와 흩날리는 진눈까비로 하여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것 같았다. 함이 파도를 헤쳐나가는지, 구름을 뚫고나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럴 때 기관이 말썽을 부리면 난사다.

엄장석은 전투항해를 지휘하면서 기관에 몹시 신경을 썼다. 기관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니 발목을 상해서 수색조에 망라되지 못한 부함장이 생각났다. 부함장은 그런대로 지금 해도실에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고있다. 그러나 기관이 고장나서 절름발이가 되면 함은 전투임무를 수행할수 없다.

이것은 함장을 비롯한 수십명에 달하는 승조원들이 전투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락오자로, 패배자로 된다는것을 의미한다. 그건 상상조차할수 없는 수치다. 그 무엇으로써도 변명할수 없고 만회할수 없는 죄악이다.

《기관상태가 어떤가?》

엄장석은 벌써 세번째로 물었다.

이것은 고속항해를 계속할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였다.

웬간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권중섭이지만 지금은 어지간히 급한지 가쁜숨을 몰아쉬며 바란다면 좀 더 견지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고속항해시간은 엄격히 제한되여있다. 고속으로 달리면 기관이 과부하를 받아 지나치게 가열되기때문이다.

하기에 지금 기관실에서는 보조적인 랭각장치를 사용하는것도 부족해서 모두들 찬물에 적신 걸레로 기관본체를 식혀주노라 비지땀을 흘리고있었다.

《전대장동지, 아무래도 속도를 좀 떨구어야 할것 같습니다.》

김철진이 함장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응대하려는데 탐지분조장의 보고가 내부통화기에서 울렸다.

《지휘소! 려도로부터 7마일정도 떨어진 곳에서 기동을 멈춘 선박을 발견함!》

엄장석은 얼른 보조지시기의 영상판을 바라보았다. 화면이 선명했다. 지금까지 신경질이 날 정도로 애를 먹이던 전파장애가 없어졌던것이다. 콩알만 한 크기로 보이는 려도의 근처에 좁쌀만 한 점이 또렷했다.

김철진은 자기가 예견했던바 그대로여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럴테지. 전파장애가 없어진걸 보니 저놈이 전파도청을 본격적으로 하는것 같소.》

최정식대좌도 동감을 표시했다.

엄장석은 아직 그렇게 단정하기엔 이른것 같았다.

《전대장동지, 만약 저것이 우리가 찾고있는 정체불명의 선박이라면 려도 코앞에까지 감히 들어올수 있겠습니까?》

《저놈은 우리 군항이 얼어붙어서 군함들이 출항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제멋대로 볼장을 보고있을거요. 빨리 침로를 돌리시오.》

《전투침로로!》

함장의 명령에 따라 조타수가 잽싸게 타륜을 돌렸다.

엄장석은 기관실에 대고 가혹하게 요구했다.

《적함을 발견하고 함은 전투침로에 들어섰다.

속도를 더 올릴것!》

《알았다!》

권중섭은 기관의 회전수를 최대로 올렸다. 불덩어리가 된 기관을 식히노라 땀투성이가 되여 애쓰는 기관수들, 마치도 그들의 높뛰는 심장이 그대로 추진기를 돌리는것만 같았다. 구잠함은 검은 연기를 뿜으며 폭풍쳐 내달렸다. 배머리에서 부서진 파도가 아우성치며 물보라로 흩날렸다.

박철호는 수색조를 선발하여 갑판에 대기시키고 조원들이 바친 당원증을 넣은 함을 안고 나는듯이 지휘소에 달려올라갔다.

《전대장동지, 수색조는 전투준비되였습니다.》

김철진은 정치부함장이 넘겨주는 함을 받아서 뚜껑을 열고 당원증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음, 동갑이도 들어갔구만. 그런데 수뢰초소장과 수뢰수가 다 수색조에 들어가면 방사폭뢰발사기는 어쩐다는거요?》

《수뢰장동무가 맡았습니다.》

《어쨌든 형길동무는 고려해야 하지 않을가? 인차 해군대학에 가야 할텐데

전대장은 혈혈단신인 김형길이 적함수색전투과정에 혹시 잘못될수도 있기에 마음을 쓰는것이였다.

박철호는 형길의 심정을 담아 절절히 토로했다.

《그 동무가 오늘의 이 순간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그는 출항을 앞두고 군항에 남아서 대학입학준비를 하라고 권고하는 기관조장에게 이번 해상경비근무에 나가지 못하면 자기가 일생을 두고 후회할 그런 일이 생길것 같다고 했답니다.》

김철진의 얼굴에 대견해하는 빛이 어렸다.

《그때 벌써 이런 정황이 생길걸 예견했단 말이지.》

《예, 그 동무만이 아닙니다. 우린 누구나 다 그렇게 예견하고 마음의 탕개를 바싹…》

해도실에서 거북한 기침소리가 났다. 박철호가 말허리를 끊고 해도실안을 들여다보니 해도작업을 하던 부함장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굳어져있었다.

김철진은 마감으로 파란색표지를 한 맹원증을 펼쳤다.

거기엔 학생복차림으로 찍은 오해남전사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지금보다 더 애티가 나고 약해보였다. 김철진은 미타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 동무가 꽤 해낼가? 구대원과 바꾸는게 좋을것 같구만.》

《장길준동무는 포초소를 지켜야 합니다.》

《하긴 포화력으로 적함을 제압하는게 중요해.》

《해남동문 신대원이지만 각오가 높습니다. 그는 주문진해전에서 위훈을 떨친 어뢰정대원의 아들입니다. 나는 그 동무의 탄원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김철진은 흐뭇해서 그래 우리 동무들이 어떻소? 하고 자랑스레 묻는 눈길로 최정식대좌를 바라보았다. 그도 대견해하는 기색이였다.

탐지수가 다급히 보고했다.

《지휘소! 목표가 공해쪽으로 움직인다!》

최정식은 예비지시기를 바라보았다.

예견한대로 단속을 하면 즉시 엄중한 사태가 벌어질수 있었다. 적들이 저들의 간첩선을 구출하려고 해상과 공중으로 덤벼들면 무자비하게 쳐갈겨야 했다.

최정식은 즉시 결심을 내렸다.

《적함이 공해상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나포해야 하오. 지원세력이 덤벼들수 있으니 난 비행대를 부르겠소. 전대장동문 어뢰정대를 부르시오.》

《알겠소.》

어뢰정대와 비행대를 부르는 전파가 날아갔다.

공교롭게도 수십년만에 처음 보는 강추위로 항만이 얼어붙어서 어뢰정들은 부두에 갇혀있었다.

해병들이 단정을 타고 도끼와 정대로 얼음장을 까고 배길을 여는데 깨진 얼음장들이 혹심한 추위에 다시 얼어붙군 했다. 방파제밖에서 떠돌던 얼음장들도 해풍에 떠밀려 파도를 타고 련속 부두쪽으로 들어오니 과연 난사였다.

배길을 채 열지 못했는데 어뢰정중대를 호출하는 전대장의 명령이 무전으로 날아왔다.

이미 출항준비에 만전을 기자고 보조기관을 돌려 주기관을 덥히면서 명령을 기다리던 어뢰정들은 즉시 꽈르릉!- 하고 발동을 걸었다.

따웅!- 따웅!-

어뢰정들은 다투어 폭음을 울리며 성난 호랑이들처럼 울부짖었다. 배기관으로 뿜어나온 검푸른 연기가 삽시에 어뢰정부두를 뒤덮었다. 흡사 대화재가 난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지독한 연기속으로 편대장이 달려와 소리쳤다.

《배길을 채 열지 못했는데 주기관을 돌리면 어쩌자는거야? 연기때문에 얼음을 까는 동무들이 숨을 쉴수가 없어!》

지휘소에서 전화모의 끈을 조이던 중대장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명령을 받았으니 출항해야지요.》

《내 말하지 않았나, 배길을 채 열지 못했다구.》

《그래도 출항해야 합니다. 분초를 다투는 긴급정황입니다!》

편대장이 벌컥 화를 냈다.

《여보! 그러다간 어뢰정들을 다 깨먹어! 당신이 그 책임을 지겠나? 군사재판을 받고싶어?》

편대장과 중대장은 지독한 배기가스속에서도 피대를 돋구어 옥신각신했다. 이때 무전수가 지휘소로 올라오는 수밀문을 열고 소리쳤다.

《편대장동지! 01번이 호출합니다! 초단파로 공개통화를 하잡니다.》

중대장이 서둘러 전화모를 벗어주었다. 편대장은 그걸 받아 미처 머리에 쓰지 못하고 수화기는 귀에, 송화진동판은 목에 가져다대고 소리쳤다.

《새매 1번이다!》

도합 수만마력에 달하는 주기관들의 동음이 너무도 요란해서 통화를 하려면 목청껏 소래기를 질러야 했다.

김철진전대장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렸다.

《왜 꾸물대는가? 빨리 출항할것!》

《배길을 채 열지 못했다.》

땅계류를 앞세우고 나올것! 어서!》

편대장은 귀가 번쩍 열려서 무릎을 탁 쳤다.

하도 정황이 급하다나니 미처 그 생각을 못했던것이다.

《알았다!》

그의 명령에 따라 주로 군수물자를 싣거나 부리우는 2호부두에 있던 수송선이 부랴부랴 출항준비를 갖추며 계류바줄을 올렸다.

수송선은 땅크나 장갑차를 해안에 부리울 때 배머리에 넙적하게 붙은 육중한 철문을 통채로 자빠뜨린다. 그러면 철문이 바다와 기슭을 련결하는 든든한 발판으로 된다. 그 발판으로 땅크나 장갑차가 상륙한다. 이처럼 설비되지 않은 임의의 해안에도 쉽게 계류할수 있어 일명 《땅계류》라고 부른다. 어뢰정승무원들은 코대가 높은지라 나막신처럼 투박하게 생긴데다가 속도가 느린 《땅계류》를 하찮게 여겨왔었다. 그런데 정작 비상정황이 발생하자 《땅계류》가 어뢰정대의 선두에 서게 되였다.

수송선은 얼음을 까낸 배길을 따라 방파제를 에돌다가 미처 까지 못한 커다란 얼음판과 맞다들렸다. 즉시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쾅! 하고 넘어진 철문에 부딪치자 얼음장은 즉시 산산쪼각이 났다.

도끼와 정대따위로 얼음장을 까노라 역사질을 하던 해병들은 황급히 단정을 옆으로 비켜세웠다.

수송선은 다시 철문을 들어올렸다가는 떨구어 얼음장을 까면서 계속 앞으로 나갔다. 어뢰정중대의 기정이 쇄빙선과도 같은 《땅계류》의 뒤를 바투 물고 조심조심 미속으로 따라갔다. 그뒤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대렬정들이 따라섰다.

어뢰정들은 속도가 빨라서 자칫하면 서로 부딪칠수 있었다. 하기에 아무리 긴급해도 50메터이하로 접근할수 없었다. 수송선의 된타격에 산산쪼각이 나서 흩어지거나 물속에 잠겼던 얼음덩이들이 앙심을 품었던지 기를 쓰고 떠올라 다시 모여붙기 시작했다. 대렬정의 갑판수들은 앞을 가로막으며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얼음장을 좌우로 밀어제끼노라 삿대로 밀며 안깐힘을 썼다. 하지만 얼음덩이들이 서로 달라붙는 속도는 충돌위험때문에 어쩔수없이 거부기걸음을 하는 대렬정들보다 빨랐다. 대렬정들은 밀려드는 파도를 타고 련속 겹쌓이며 달라붙는 얼음장들때문에 끝내 전진을 멈추었다.

다행히도 《땅계류》의 뒤를 바투 문 기정이 가까스로 방파제끝을 에돌아 얼어붙은 항만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전속 앞으로!》

미속으로 전진하던 어뢰정이 사나운 파도를 박차며 배머리를 번쩍 들었다. 날카로운 배머리에 갈라져 산산쪼각난 파도는 하얀 물보라가 되여 뒤로 흩날렸다. 고속추진기들이 힘차게 돌아가는 배꼬리에서도 물보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어뢰정은 마치 커다란 갈매기나 날치로 변하여 억센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듯싶었다.

어느새 진눈까비가 멎고 짙은 안개도 설피여지기 시작했다.

《지휘소! 선수방향 선박발견!》

감시대에서 감시병이 웨쳤다. 김철진은 쌍안경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공해로 내빼는 선박의 형체가 저 멀리에서 륜곽적으로 어슴푸레 안겨들었다.

그는 쌍안경을 함장에게 넘겨주고 물었다.

《그 선박이요?》

구잠함이 해상경비근무에 진입한 날 우리 령해쪽으로 접근하려다가 꼬리를 사린 정체불명의 선박을 념두에 둔 질문이였다.

《예,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가까이 접근하여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자세히 살펴보기요.》

구잠함은 그제서야 속도를 떨구며 정체불명의 선박 가까이에 접근하였다.

선박의 형체가 비교적 선명히 안겨왔다.

눈짐작에 배수량은 천톤정도일것 같았다. 수직에 가까운 배머리와 바구니모양으로 둥그런 배꼬리, 철갑으로 가리운 중갑판, 두개의 마스트… 선체의 모양과 갑판상구조물들에서는 고티가 풍겼다. 그러나 두개의 마스트와 상갑판, 조타실우에는 각이한 형태의 안테나들이 수십개나 설치되여있었다. 그래서인지 선박은 촉각을 잔뜩 세운 음흉하고 교활한 맹수를 련상시켰다.

구잠함이 선박의 선수쪽으로 에돌 때 배머리에 흰색으로 큼직하게 쓴 영문으로 된 자호가 보였다.

 

GER2

 

외국선박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자호를 영문자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그건 문제로 되지 않는데 국적을 알리는 표식이 없는게 수상했다. 엄장석은 신호수에게 국적을 문의하는 신호기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신호수가 기류함에서 국제기류신호법에 따르는 해당한 신호기들을 꺼내 기줄에 련결하여 마스트에 올렸다.

한편 부처는 《푸에블로》호의 가까이에 접근하여 주위를 한바퀴 돌고있는 구잠함을 주시하며 려송연갑을 꺼냈다. 려송연을 한대 뽑아물고 라이터로 불을 달았다. 남아메리카의 토색이 짙은 향기를 풍기며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담배연기속에 해군제독의 부얼부얼한 얼굴이 나타났다. 해군제독은 부처에게 《푸에블로》호가 북조선해안 3마일까지 접근해도 된다는 법적담보를 주고 이렇게 부언했다.

《북조선해군이 당신들의 머리칼 한오리만 건드려도 나는 이 무쇠주먹으로 북조선을 무자비하게 답새겨서 미국의 힘이 어떤것인가를 톡톡히 알게 해주겠소.》

그 법적담보가 은을 내겠는가?

어쨌든 저들이 단속하려는 함선이 대아메리카의 함선임을 알게 된다면 서뿔리 덤벼들지는 못할것이다. 전대지휘부에 보고하고 결론에 따라 행동하겠지. 전대지휘부에서도 자체로 결심을 내릴수 없으니 함대사령부에 보고할게고 거기서는 해군사령부에, 또 거기서는 총참모부에 보고해야 할것이다.

결심채택은 총참모부가 하게 될테니 그때까지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을 효과있게 리용하여 빨리 공해로 빠져나가자.

슈마커가 겁에 질린 소리로 보고했다.

《함장님, 저놈들이 우리에게 국적을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부처는 태연히 지시했다.

《응답신호를 하지 말고 사진이나 찍으라.》

슈마커는 눈이 퀭해졌다.

《어서 구잠함을 촬영하라. 지금이야말로 중위가 학수고대해온 좋은 기회가 아닌가.》

《예. …》

그제서야 슈마커는 목에 매달려 가슴팍에서 데릉거리는 사진기케스에서 사진기를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기를 들고 촬영을 하려던 그는 손이 떨려서 그만 사진기를 떨구었다.

탁!

사진기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에 몸이 황소같은 조타수는 물론이고 태연한체 하던 머피까지도 와뜰 놀랐다.

《빌어먹을 자식!》

부처는 사진기를 구두발로 차버렸다.

《구잠함이 앞을 가로막으면 에돌면서 계속 공해로 나가라, 조타수! 정신을 바싹 차려!》

곁에서 슈마커가 징징 우는소리를 했다.

《함장님, 저쪽에서 빨리 국적을 밝히랍니다. 응하지 않으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답니다.》

부처는 구잠함을 노려보다가 하는수없이 뇌까렸다.

《그럼 수로측량선이라는 기발을 올리라. 안개때문에 항로를 헛갈려 본의아니게 여기에 들어왔는데 곧 공해로 나갈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하라.》

슈마커는 그 지시가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함장님, 저쪽에선 우리에게 어느 나라 배인가를 묻고있는데…》

《돌대가리같으니… 동문서답하면서 시간을 끌란 말이다!》

《아… 알았습니다.》

슈마커는 덤벼치며 지휘소밖으로 나갔다.

《무전수! 해군제독에게 빨리 함재기들을 보내달라고 하라! 공중지원을 받아야 우리 함이 안전하게 공해로 나갈수 있다. 그런데 왜 꾸물거리는거야. 빌어먹을!》

무전수가 쌍욕을 먹으며 부랴부랴 전건을 두드렸다.

머피는 미타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먼곳에 있는 여기에 공중지원을 해줄수 있을가요?》

《응, 해군제독이 즉시 출동명령을 내리면 함재기들은 15분내에 여기로 날아들거요. 그러면 구잠함따위는 문제로 되지도 않아.》

부처가 배포유한 소리를 하는데 응답신호를 하러 나갔던 슈마커가 기겁을 하며 지휘소에 뛰여들었다.

《함장님, 국적을 빨리 밝히랍니다. 응하지 않으면 사격하겠답니다.》

최후통첩이였다.

방사폭뢰가 대여섯발만 날아와도 《푸에블로》호는 흘수선아래의 선체가 갈가리 찢겨져서 바다속에 처박히게 된다. 그 광경은 상상해보기조차 끔찍했다.

머피는 간담이 서늘해서 함장을 쳐다보았다.

함장은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부러울 지경으로 태연자약했다.

《정 요구하면 성조기를 올리라구.》

슈마커가 신호수에게 소리쳤다.

《성조기를 올릴것!》

성조기가 해풍에 펄럭이며 마스트에 우쭐우쭐 오르기 시작했다.

부처는 마스트쪽으로 돌아서서 속으로 행운을 빌며 성조기에 거수경례를 했다. 그리고는 입속으로 노래 《내리워지지 않는 성조기》를 불렀다.

그러자 언몸이 녹듯 불안과 초조감으로 나약해지던 속내에 내심 확신이 생기며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군함을 타고 대서양과 태평양, 인디아양을 돌아치며 성조기를 날려왔다. 어느 나라 함선이든 우리가 날리는 성조기를 보면 쩔쩔 매고 기를 펴지 못했다. 《까리브해위기》때에는 제노라던 쏘련군함들도 우리앞에선 꼬리를 사리기에 급급했지. 이 세상이란 그렇게 돼먹은거다. 그러니 북조선도 례외로 될수는 없을테지.

이렇게 생각하니 성조기에 새겨진 13개의 줄과 50개에 달하는 별들이 각별한 의미로 안겨왔다.

나는 다름아닌 미합중국의 장교이며 함장이다.

나를 감히 건드리는건 미합중국을 모욕하는것으로 된다. 그러기에 미합중국은 나를, 우리 함을 건드리는자들을 누구든지 용서치 않을것이다.

배심이 든든해진 부처는 태연히 함장의자에 앉아 려송연에 불을 달고 위엄있게 웨쳤다.

《모두 들으라! 이제 곧 함재기들이 날아와 우리를 지원해줄것이다. 모두 미합중국의 장병답게 싸우자! 전투준비! 기관총 사격준비!》

구조물뒤에 몸을 숨기고 눈치를 보다가 함장의 위엄있고 자신만만한 구령에 용기가 나서 재빨리 기관총좌지를 차지한 시몬은 부리나케 발사준비를 했다. 선미갑판으로 나가는 통로의 한쪽벽에 설치한 무기고에로 승무원들이 한꺼번에 왁 밀려들었다. 저마다 먼저 무기를 잡고 장탄을 하려고 덤벼치는통에 그만 혼잡이 벌어졌다.

부처는 얼른 허리춤을 더듬었다. 권총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권총을 차고다니기 시끄러워서 함장실의 탁상빼람안에 넣어둔 생각이 났다. 거기엔 장탄한 권총이 한자루 더 있었다.

함장의자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다시 앉았다.

아무리 해도 사태가 함장이 총질을 해야 할 막다른 지경에까지는 이를것 같지 않았다. 그도 그렇지만 함이 공해로 탈출하는 결정적인 시각이여서 자리를 뜰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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