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1

갑신년

2

 

(1)

 

백두산을 떠나온 호경의 기마군사들은 패수(대동강)를 건너섰다. 마음같아서는 평양으로 들어가고싶었으나 배신적인 신라의 망동에 의해 그곳은 이미 당군의 요충지로 되였으니 당분간은 피하지 않을수 없었다. 고구려재건의 큰뜻을 품은 이 나라의 아들들이 오랑캐군 몇놈을 죽이는것으로 끝장을 볼수는 없었기때문이였다.

이러한 리유로 하여 태대형 검모잠도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마지막임금이였던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군왕으로 하는 《고구려국》을 선포할 때 그 수도를 패수이남의 한성(재령지방)에 정했던것이다.

호경은 자기의 정예마군을 거느리고 안승의 고구려국으로 들어가도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심중히 검토하고있었다.

임금이 없어 고구려가 무너진것은 결코 아니였다. 임금이 무능하고 신하들이 부패하여 선조들이 물려준 천년대국을 잃은것이였다.

이윽고 호경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다, 내 고안승을 잘 알거니 좀더 두고보자.》 이렇게 웨친 그는 걸음을 멈추려던 말에 다시 박차를 가하였다.

한성을 도읍으로 하는 고구려국이 일어섰다고는 하나 거기에 무작정 의탁할수가 없었다. 호경이 알고있는 안승은 의지가 강하지 못하고 학식도 무예도 변변치 못하였으므로 도무지 그에게는 믿음이 기지 않았던것이였다.

그리하여 호경의 마군대오는 한성고구려에로의 길이 아니라 남쪽으로 곧추 뻗은 첩첩산악길로 말을 몰아갔다.

달빛아래 서있는 키높은 나무들도 자기의 뿌리를 이 땅에 깊이 박고 서서 비바람, 눈보라에도 휘임없이 저토록 굳세건만 이 나라는 어찌하여 오랑캐가 란무하는 쑥대밭으로 되였더냐?!…

말발굽소리가 산과 들을 울리고 깊은 계곡을 지나온 강물은 넓은 벌가운데로 유유히 흘러가는데 있어야 할 집들은 모조리 무너져 페허로 되였으니 그 어디에서도 인적을 찾을수 없었다. 멀고먼 산골짜기속이나 버들방천너머의 어느곳에 한점의 광솔불빛이라도 반짝여주길 바랐으나 그만한 소원마저 이루어지지 않는것이 펼쳐진 현실이였다. 혹시나 도망쳤던 령리한 강아지 한마리만이라도 짖어주길 바랐건만 십리를 가도, 백리를 가도 풀벌레소리만이 구슬프게 울려올뿐이였다.

200여필의 치중마에 실려있는 량식이 적은것은 아니였으나 자기들이 걷는 길이 한두달에 끝날 그러한것이 아니라는데에 걸음이 빨라지는 리유가 있었다.

료동요새들이 무너져 당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평양성이 함락되여 고구려의 이름마저 사라지자 흩어진 군사들과 백성들은 뿔뿔이 갈길을 찾아 헤매였다.

항전군의 줄을 찾은 사람들은 그 대오를 따라갔으나 오도가도 못할 처지에 빠진 사람들은 오랑캐들에게 끌려가 그들의 노예로 되였다.

적국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자! 이러한 결심으로 온 일가, 온 마을이 독약을 먹고 집단자결하기도 하였다.

기회가 맞다들린 사람들은 강을 건느고 얼음산을 넘으며 멀고먼 북쪽나라로, 또 어디로 가기도 하였으며 배를 얻은 사람들은 일가식솔을 태우고 돛부터 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그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섬나라건, 무연한 사막이건 흔들리는 쪽배가 닿을수 있는 곳이 목적지였다. 아, 똑똑한 방향도 없이 돛을 단 배들은 얼마였는지…

그러나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의 노복으로 되느니 차라리 수천길바다속에 영원히 잠들고 남방의 쟝글이나 이름모를 사막에 버려지는것으로 오히려 평온한 숨을 내쉬였으리라.

당군에게 항거하여 끝까지 혈전을 벌리던 적지 않은 군졸들은 자기들뿐만아니라 그 성안에서 생사를 같이하던 아이들, 로인들, 녀인들까지 이끌고 힘겹게 압록수를 건느고 살수(청천강)와 패수도 건넜다.

그러한 고구려유민들은 평양이남의 옛 고구려 남부지역에 밀집되였다.

호경의 부대가 끝없이 가고있는 곳이 바로 그 지역이였던것이다. 하기에 자기 겨레, 자기 형제들을 만날수 있다는것이 이들의 일치한 마음이였으나 찾을 길이 없는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였던것이다.

《오랑캐를 치는 싸움을 어서빨리 벌리자!》

호경은 이렇게 결심하였다. 오랑캐의 비명이 울리기 시작한다면 인적 없던 곳에서도 인적이 나타날것이고 숨죽었던 산야조차 뛰쳐일어서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는 길이고 고국재건의 대통로가 아니겠는가?!

밀림의 청청한 나무갓을 지붕으로 삼고 숙영하는 군사들이 코를 고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훈훈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서 흔들리우는 나무잎사이로 저 하늘의 달과 별들이 방싯거리는것이 마치도 호경이네들의 이 지방진출을 반가와하는듯싶었다.

흰 바위우를 구우르며 돌돌돌 흐르는 수정천의 맑은 물소리가 산촌의 정서를 더해주는 속에 유정하게 들려오는 풀벌레소리 또한 고구려군사들을 어서 오라 반기여주고있었다.

새벽녘에 산정에 올라 지형을 살피던 호경은 드디여 낯익은 산발들과 정든 메부리들을 알아볼수 있었다.

험준한 산발이 병풍처럼 흘러간 평나의 우잠지경은 호경이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였다. 아버지가 반대파의 모해로 머나먼 변방의 병정으로 뽑혀가고 어머니와 아이들은 귀양지로 쫓기여왔으니 그곳이 바로 평나산의 북쪽산골이였다.

아버지의 뜻대로 호경은 경당에서 글도 배우고 무술도 련마하였다.

그 경당은 구름이 걸리는 높은 산기슭에 있었다.

지나간 10년은 고구려국은 물론이요, 이 땅의 모든 마을과 가정들에까지 험난한 세파가 밀려든 세월이여서 어디에도 기쁜 소식은 남아있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당만은 남아있을것 같아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 골짜기는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동남쪽으로 명주필을 늘인듯 한것이 바로 호로하(림진강)였다. 이 지방의 허리를 감돌아흐르는 저 강이 이제는 이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오랑캐군이 오가는 요충지로 되였을것이였다.

손채양을 하고 아침해빛에 드러나는 호로하의 은빛흐름을 바라보는 호경에게 연계돌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하, 저 강기슭을 보시오이다. 흰구름안개속에 검은 빛갈이 섞인것으로 보아 당나라군사들이 밥을 짓는것 같소이다.》

호경이 웅글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연장군, 저곳을 우리의 첫 승전터로 정합시다.》

말마디는 짤막하나 웃음을 짓고 호로하쪽을 바라보는 호경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는 계돌의 심장은 높뛰기 시작하였다.

 

강가에선 기발들이 펄럭이고 모래불에 세워놓은 창검들이 해빛에 반짝이는것이 어떻게 보면 당군의 이 부대가 위세를 뽐내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강변에 누운 놈으로, 연기를 피우며 무엇을 끓이는 놈, 벌거벗은채로 강물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는 놈들이 태반으로 실상은 해이된 하나의 무리에 불과하였다. 눈짐작으로 한 2천은 되여보이나 이곳에 자기들과 맞설 무력이 나타나지 않은것으로 하여 한껏 라태해지고 해이되였으니 그것은 정예병 몇백만도 못한것이였다.

멀지 않은 산우에서 적병들의 실태를 직접 확인한 호경은 소년시절에 이 지방을 편답하며 새겨두었던 큰길, 작은 길은 물론 산발과 골짜기들까지 다시한번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치중마들은 대피시키고 다시 만날 장소를 약속하였다.

호로하에 저녁안개가 감돌고 흐르는 강물이 초원의 정적속에서 잠이라도 청하려는듯 흐름을 멈출듯말듯 할 때에 산으로부터 우뢰성이 터지며 난데없는 기마군사들이 질풍같이 덮쳐들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장검이 번개를 일으키고 칼날에서 휘파람소리가 일어날 때마다 적병들의 머리가 툴렁, 툴렁 떨어져 모래불에 딩굴고 모가지를 잃은 몸뚱이들은 두어번 퍼들쩍대다가 썩은 나무통처럼 나자빠졌다.

강가에 버려진 놈들의 송장은 오륙백은 실히 넘어보였다.

고구려의 기마군은 순간에 적을 들이치고 군마와 치중마들까지 걷어가지고 어둠이 깃드는 산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때늦게 정신을 차린 당군병졸 수백이 그뒤를 쫓으려 했으나 기마군사들이 바람같이 사라진 산속에서는 비오듯 화살만 날아왔다.

고구려군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차린 적장이 졸병들을 수습하여 추격에로 내몰았다. 칼을 들고 창을 쥔 당군무리에는 바지도 제대로 입지 못한 놈들이 많은데다 맨발인 놈들은 셀수 없을 정도이다보니 그런 공격서렬로는 나무그루터기와 돌뿌리가 많은 산으로 쉽게 전진할수 없는것은 당연한것이였다.

고구려기마군이 등성이에 오를무렵 해는 이미 서산에 들고 땅거미가 내리고있었다.

그러나 적장은 한줌밖에 안돼보이는 고구려군을 단숨에 잡아쥘듯 마음만 앞서 병졸들을 내몰았다.

《따르라, 고구려군은 얼마 되지 않으니 모조리 잡아서 찢어죽여 오늘의 패배를 복수하라.》

적장의 칼부림에 허우적대던 몇몇 병졸의 목이 떨어져나가자 공격서렬은 드디여 뜨적뜨적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때였다.

고구려군이 사라진 북쪽산이 아니라 동쪽과 서쪽의 량쪽릉선으로부터 난데없는 불덩어리가 서서히 마주 날아오다가 당군의 머리우에서 교차되자 가뜩이나 겁에 질려있던 놈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놈들은 누구나 입을 딱 벌린채 다물줄을 몰랐으며 적장놈까지도 어쩔바를 몰라 눈알만 데룩거렸다.

또다시 두개의 불덩어리가 나타나더니 혼비백산한 놈들의 서렬우에서 교차되였다.

《살별이다!》

《하늘의 변괴다!》

적병들은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귀신이 아니라 화공이다. 이놈들, 정신차려라.》

적장의 호령소리가 울렸으나 적병들의 정신은 이미 불덩어리를 따라 날아가버리고 허울만 남은 뒤여서 정신을 차린다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도망치는 군졸들의 머리우로 칼날을 휘두르던 적장은 사태처럼 무너져내리는 졸병들을 멍하니 바라다보는 수밖에 없게 되였다.

그날 적장은 머리를 싸쥐고 의문에 잠기였다.

《고구려군은 두개의 부대였는가, 하나의 부대였는가?》

그러한 의문은 호경에게조차 풀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은것이였으니 당군으로서는 더더구나 풀수 없는 의문이 아닐수 없었다.

고구려군은 승전의 쾌감에 잠기여있었으나 자기들의 뒤를 막아준 신비한 화공대가 누구네들이였는지 알수 없는것이 풀수 없는 문제거리였다. 하지만 명백한것은 어디엔가 자기편이 또 있으며 습격전을 계획한 미지의 화공대에 앞서 자기들이 먼저 당군을 때렸다는 그것이였다.

이러한 자부는 오륙백의 적군을 살상한 오늘의 승리에 더하여져 호경이네 부대를 기쁨으로 끓게 하였으며 사나이들의 용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당군은 호로하에서의 패배를 이를 갈며 복수하려 하였다. 그들은 고구려의 기마군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공포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꿈에조차 칼춤을 추며 들이닥치는 고구려군으로 하여 문뜩문뜩 깨여나군 하였다.

수백마리의 까마귀떼들이 모여들어 당군진지를 떠나지 않고 에도는 바람에 병졸들은 모두 죽을 징조라고 한탄하였다.

어느날 당군의 장수 리근행은 고구려의 기마군이 패강(례성강)의 하류에 진을 치고있다는것을 알아내였다. 그는 앞상을 쾅- 친 후 뽑았던 장검을 다시 절거덕! 칼집에 집어넣었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골탕먹여? 이번에는 뼈다귀마저 부스러뜨려 가루로 날려버릴테다.》

그는 드디여 보복전을 결심하였다.

원래 그가 거느린 부대는 3만이 넘었으나 이제는 2만밖에 안되였다.

그때 부대의 주력은 왕봉하(한강)쪽에 보내고 자기는 호위대로 2000명만 데리고있었는데 며칠전에 500명나마 잃었으니 통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천하무적의 장수이노라고 자처하는 그에게 있어서 고구려군 100여명은 눈아래로 보였으며 또 남아있는 자기 병졸 1400명만 하여도 고구려군의 14배에 이르니 부딪치기만 하면 삭정이 꺾듯이 해치울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이때 옆에 있던 부하장수가 고구려군의 무력이 500으로 늘어났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14대 1이 3대 1의 형세로 변한것이였다.

바로 이때 언덕너머에서 개미떼같은 행군서렬이 나타났다. 순간 고구려군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하였으나 기발을 보니 자기 휘하의 군사들이였다.

《후유- 하늘이 나의 뜻을 알아주는구나.》

리근행은 두손을 모두어 하늘을 우러른 후 자기앞에 정렬한 수하장수들에게 명령하였다.

《보군 1만은 한나절동안 휴식을 하고 인차 따르도록 하라. 마군은 이제 곧 나를 따르라.》

눈앞에 얼른거리는 고구려군사들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자기의 보복안이 순간에 물거품으로 될것이였다.

추격대가 장단에 이르렀을 때 강가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10여기의 고구려기마군사들이 허겁지겁 말우에 올라 서쪽으로 달아났다.

리근행은 꼬리를 놓치지 않을셈으로 벌판을 먼지로 뒤덮으며 자기의 기병무리를 질풍같이 내몰았다. 선봉대의 다음으로 내닫는 좌군들속에 비단휘장을 젖힌 수레우에 팔자수염을 비틀어올린 리근행이 앉아있었다.

벌판만이 무연할줄 알았던 강변이였는데 산발들이 연방 나타나며 앞을 막았다. 하지만 수레는 작고 큰 고개들을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하며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리근행에게 부하장수가 우려하는듯싶은 어조로 물었다.

《고구려군이 올가미를 치는게 아니오이까?》

리근행은 그의 물음에 호탕하게 웃는것으로 대답하였으나 실상은 자신도 긴장해있는것을 남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였다.

《대장군, 산세를 다시 보았더니 골짜기들이 크지 않아 복병은 없을듯 하오이다. 저놈의 기마대가 본대에 소식을 전하기 전에 짓쳐들어가면 모조리 잡을듯 하오이다.》

그의 말이 옳은것이였지만 이미 다 알고있으니 참견 말라는듯 머리를 외로 꼬았던 리근행은 한참후에야 머리를 천천히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무중생유>를 잊지 말라.》

《예, 명심하겠소이다. 진실속에 거짓이 있고 거짓속에 진실이 있다는 병법과 계략을 어찌 잊겠소이까.》

리근행은 흥하고 코방귀를 뀌며 조잘대는 너의 입은 계집의 새빨간 주둥이와 비슷할지 몰라도 장수로서는 적합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전번 호로하에서의 대패는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숲을 벗어나자 나지막한 등성이를 낀 마을이 나타났는데 거기에 몰켜있던 기마군사들이 말을 끌어내고 올라타는 등 복닥소동을 일으키는것이 보였다. 장단에서 도망친 10여명의 고구려기마군, 또다시 나타난 눈앞의 복닥소동? 저것이 허상인가 아니면 실체인가?

만약 또다시 달아난다면 실체를 가리운 허상에 가까울것이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대오를 정비하고 기마진을 치는것이였다.

리근행에게는 그들의 행동이 가소롭게만 여겨졌다. 얼마 되지 않는 인원으로 자기들과 맞서려는 그 용기에는 감탄까지 할 정도였다.

《임금도 없고 국호도 없지만 고구려인의 의지는 살아있구나!》

이렇게 머리를 끄덕이던 리근행은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저들의 대장이 누구라더냐?》

《예. 저들 대장의 이름은 호경이라 하옵나이다. 료하격전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고 이어 압록수와 패수까지 넘어 이곳에 이른 가련한 신세만은 피할 길이 없었으나 칼부림이 대적할자 없고 용맹과 지혜 또한 뛰여났다 하오이다.》

부하장수의 말이 끝나자 리근행이 동정하는 투로 또다시 입을 열었다.

《호경이라? 그 이름 고구려땅에서도 알려져있는바이고 내 북부에서 싸울 때에도 의기와 용병술이 놀라옵다는 말을 들었다만 오늘은 거느린 수하가 일만도 아니요 수백이라 하니 가련하구나. 허나 그 의기만은 장하도다.》

리근행이 이렇듯 웅얼댈 때 허공을 헤가르는 아츠러운 소리가 《핑-》하고 울리더니 등뒤의 아름드리나무에 《딱!》하고 한대의 화살이 박혔다.

리근행은 군졸이 뽑아온 화살대에 감긴 종이말이를 펼쳤다.

《리근행은 들으라!

고국을 반역한 아비의 덕으로 너는 적국의 벼슬을 얻었다.

투구엔 금빛이 란무하고 칼집에는 은피복을 하였다만 너의 배속에 깊이 스민 반역의 검은빛이야 어떻게 감출수 있으리오.

네가 지금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는데 고구려는 여전히 건재해있으며 이미 나라의 법이 내린대로 네놈의 목에는 칼날이 떨어질것이다. 너희 족속들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저주를 받을것이로니 네 목이 떨어진 후에도 이를 명심할지어다. 고구려장수 연계돌.》

근행은 몸을 부르르 떨며 종이장을 찢어버렸다.

원래 반역자란 어느 편에서도 곱게 보지 않는 법인지라 리근행은 부하들에게 자기를 반역자로 보여주기가 싫었던것이다.

고구려의 유명한 장수인 연계돌을 리근행이 모를리 없었다.

원래 고구려의 본토배기인 연계돌의 집안은 장수가문으로 소문이 났지만 말갈족출신인 리근행은 처지가 달랐다.

말갈족은 고구려인들속에 섞이여 함께 살았으나 성미가 포악하고 신의가 없는자들이 있어 사람들의 믿음을 배반하는 일이 많았다.

리근행의 아비는 고구려의 록을 받으며 벼슬도 하였지만 항상 불만을 품고있다가 적국으로 도망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리근행도 그의 아비도 자기의 고국을 멸망시킨 적국의 앞잡이로 되였다.

당나라도 리근행에게 벼슬은 주었지만 역시 반역자의 루명만은 벗겨주지 않았다. 리근행이 지금 거느린 3만대군의 병졸 하나하나가 모두 고구려를 배반한 말갈의 망나니패들이였다.

그러니 당나라조차 리근행을 제편으로 여기는것이 아니라 겨우 반역무리들의 우두머리쯤으로 치부하며 리용하고있는것이였다.

분별을 잃은 리근행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연계돌 이놈, 겨우 호경의 부하에 불과한 네가 감히 나를 반역무리, 망나니패의 두목으로 여기고있는것 같은데 이러나저러나 나는 당나라 3만군사의 장수이다.》

리근행은 번쩍이는 검을 높이 들었다.

《고구려놈들을 쫓아라!》

당군의 병졸들이 파도마냥 밀려나갔다.

연계돌의 통첩문에 머리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된 리근행은 자기가 항상 되뇌이던 《무중생유》마저 까마득히 잊고말았다.

수천의 당군기마병들이 대지를 박차며 달려나가자 몇 안되는 고구려군사들은 저항자세를 집어던지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한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잡아라!》

리근행의 고함소리는 추격병들을 더욱 부추겼다. 이들이 나지막한 야산을 넘어서니 검푸른 바다가 격랑을 일으키고있었다.

바다는 쾅쾅 울부짖는데 고구려군은 오도가도 못하게 된 가련한 처지에서 벗어날 길을 몇척의 쪽배에서 찾으려는 모양이였다.

흔들리는 쪽배우에 올랐다가는 내리고 다시 오르며 아우성이였다.

리근행은 코웃음을 쳤다.

그 배에 올라야 몇명이 오를것이며 너희 몇이 우리 당군의 칼날을 일시 피한다 한들 바다가 일으키는 저 물기둥은 어떻게 피하려느냐?

고구려군은 드디여 쪽배를 내버리고 황급히 배수진을 치기 시작하였다.

리근행은 껄껄 웃으며 부하장수에게 뇌까렸다.

《허허허… 배수진이라? 죽기 전에 하는짓이로다.

앞에는 무적당군의 칼날, 뒤에는 노호하는 바다이니 새가 아니고서야 어찌 빠질수 있으랴! 으하하하! 으하하하!

저자들을 모조리 칼탕쳐 물고기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라!》

당군의 2천기마대는 산병선을 이루고 고구려의 배수진을 짓부실듯 달려갔다. 1진에 500, 2진에도 500, 3진, 4진도 500으로 꼬리를 물었다.

함성이 터져 폭풍이 되고 그 폭풍은 대지를 뒤흔들었건만 말발굽뒤에서는 먼지 하나 보이는것이 없었다.

해빛아래에서 그림자가 없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는 말이 있다.

달리는 말발굽뒤에 먼지가 일지 않았으니 말도, 그것을 몰아간 기마군사들도 그림자 없는 허상-귀신들이였을가?

그러나 리근행은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고구려군이 펼친 계략에 적괴수는 분별을 잃었고 그것이 바로 허와 실을 갈라볼수 없게 만들었던것이다.

1진으로 달리던 500의 당군기마병들이 왜서인지 아우성을 치며 말밑으로 떨어졌다. 말들조차 대부분 쓰러지거나 멎어버렸다.

리근행은 놀라운 사실앞에서 배수진을 가리키던 금채찍을 저도 모르게 거두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것이였다.

무너진 1진우에 2진이 덮치며 쓰러지고 3진이 또다시 공중잡이를 하면서 날아떨어졌다.

그 계선은 지옥의 기름가마인듯 당군만을 꼭뒤잡이하여 엎어놓고 제쳐놓으며 땅속으로 끌어당기니 지옥사자의 솜씨인들 이보다 더하랴.

그러나 4진으로 달려들던 무리들은 말의 속도를 늦추는데 성공하였으나 그들도 수렁창에 빠져 허우적대고있었다. 다만 앞진의 무리들은 수렁속으로 아우성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사라지고말았으나 4진이 떨어진곳은 초입이여서 허리치는 감탕을 헤치고 기여나올수 있었던것이다.

1, 2, 3진이 사라진쪽으로는 화살 한대 날아오는것이 없었으나 수렁을 헤치며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4진의 《검둥이》들에게로는 화살이 비발쳤다.

그러나 4진의 500명 《검둥이》들속에서는 화살세례에서 벗어난 이삼백이 도망치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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