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2

부소산에 소나무 설레이다

 

팔원이… 강충에게 말하기를 만일 부소군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솔을 심어 암석이 나타나지 않도록만 하면 거기서 삼한을 통일하는자가 출생할것이라고 하였다.

(《고려사》의 《고려왕실의 세계》중에서)

 

1

 

이해에 부소고려의 대왕 호경이 자기 자리를 태자 강충에게 인계하고 사망하였다.

고구려의 대가 또다시 이어지기 시작하여 만사람은 기뻐하였건만 태후 박산신은 근심속에 잠겨있었으니 즉위한 대왕의 나이가 겨우 11살이였기때문이였다.

나이는 11살이였지만 얼굴빛은 준수하였고 맑은 눈은 만리를 내다보는듯 하였으며 키는 이미 구척에 이르러 웬만한 장년들도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으나 태후의 눈에만은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안겨왔던것이다.

걱정은 대왕이 어리다는것보다 부왕이 이어온 고구려의 대업에 있었다. 그것을 이을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랴만 바로 그 나이로 하여 부소고려의 앞길에 그늘을 지운다면 선왕은 물론이요, 동명성제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게 될것이였다.

어느날 태후는 부소고려의 원로인 연계돌을 불렀다.

대흥골로 넘어가 군사들의 교련정형도 알아보고 그곳의 인삼작황도 가늠하던 계돌은 태후궁에로 말머리를 돌렸다. 아침안개가 평나산정을 휘감은채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었으나 어느덧 말발굽소리는 우잠땅을 넘어 부소지역에서 울리였다.

연계돌은 강충을 임금으로 추대한 후 선대왕이 있을 때보다 군신간의 례의에 더욱 관심을 돌렸으니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가 군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더구나 대왕의 나이가 어린 조건에서 동명성제의 혈통을 이어나가는데서 그것이 첫째라는 자각에서였다.

연계돌이 태후의 만류를 무릅쓰고 엎드려 절을 올리자 그의 팔을 잡아일으켜 자리에 앉힌 산신은 서슴없이 근심의 문을 열었다.

장군, 우리의 부소고려국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하오이다. 그런데 부왕께서는 승천하시고 나어린 임금만 남겨놓으셨으니 앞날이 걱정이로소이다.》

계돌은 태후의 속생각을 헤아리였다.

《태후마마의 근심은 오히려 부소고려의 성업이 창창하다는 커다란 증거이니 신하의 기쁨은 한량없나이다.》

그러나 태후의 얼굴에 비낀 근심은 가셔지지 않았다.

《대왕의 아들이라 하여 임금인것이 아니라 동명성제의 참뜻을 이어야 고려왕이 아니겠소이까.》

태후의 말속에는 왕족이 아니라 해도 동명성제의 뜻을 진심으로 받들수 있는 뛰여난 사람이라야 부소고려를 맡을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의미가 깔려있는것 같았다.

계돌은 하늘이 무너지는듯 앞이 캄캄해지는것을 느끼며 바라지쪽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밝게 비치였고 만물은 그 빛을 받아 춤추고있었다.

순간 계돌은 마음속의 장막을 걷어버리는 밝은 해빛을 느끼였다.

그렇다, 동명성제는 고구려의 해이거니 그 후대가 아니라면 그 국가도 고구려이기 힘들다. 그러니 우선 나의 생각을 툭 터놓아 약해지려는 태후마마의 마음을 못박아놓아야겠다.

계돌은 땅을 짚었던 장검을 굳게 잡으며 태후앞에 다시 머리를 숙이였다.

《태후마마,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강충대왕의 나이 비록 11살이지만 키는 구척이요, 얼굴은 희고 맑은것이 빛나는 저 해와 같으며 깊고깊은 지혜의 눈빛은 만리를 내다보고있나이다. 하기에 5군 12현의 부소고려군민들은 대왕께 자기의 마음을 전적으로 의탁하고있소이다. 강충대왕을 내놓고 동명성제의 피줄을 이을분이 고구려땅 만리 어디에 또 있으며 대고구려의 위업을 완전히 이룩할수 있는 성인을 또 어디에서 찾겠나이까? 오늘부터 소신 비록 부족하오나 대왕의 옆으로 옮겨와 직접 보좌해야겠다는 결심을 아뢰오이다.》

태후는 두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념을 안하였다.

장군, 마음약한 녀인이 장군의 그러한 의지를 듣고싶어 부른것 같소이다. 장군의 그 말에 고구려의 성업이 받들려있다는것을 이젠 알았으니 저의 눈물을 용서하오이다.》

순간 계돌의 가슴에도 뜨거운 용암이 끓고 그것이 넘쳐 눈가를 적시였다.

《태후마마, 진정하옵시오. 어머니의 눈물은 강의한 아들들의 의지의 샘이나니 국모의 가슴에 끓는 념원은 부소고려의 승전의 기치마다에 물들어있을것이오이다.》

태후의 가슴도, 계돌의 심장도 높뛰고 눈물은 걷히지 아니하였으나 저앞에 휘날리는 승전의 기치는 더욱 펄럭이고있었다.

이튿날 이른새벽이였다.

부소군의 남문인 령통문앞으로는 평나의 수천수만골짜기들에서 샘솟아 모인 벽계수들이 흘러와 폭포수를 이루며 쾅쾅 쏟아져내리고있었다.

폭포의 울림소리를 북소리로 여기고 그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기는듯 세사람의 걸음이 쿵쿵 지심을 울렸다. 그것은 점점 가까와지더니 령통문옆에 있는 집채같은 검은 바위앞에서 멎었다. 그들은 운무의 수레를 타고내려온 하늘나라의 신선들인가 아니면 혹시 그것을 타고 신선세계로 오르려는 사람들인가?!

그러나 그들은 내려온 사람들도 아니요, 오르려는이들도 아닌것 같았다.

그때 한사람이 앞으로 썩 나서며 9척장검을 뽑아드는데 주위에 모였던 안개가 한필의 명주인듯 휘감겼다.

장검을 쥔 사나이는 소년대왕 강충이요, 뒤에 있는 두사람은 태후와 계돌장군이였다.

걱정많은 태후를 위하여 연장군이 조직하고 소년대왕 강충이 직접 나섰으니 이제 벌어질 일은 무엇이겠는지

30척이 넘는 검푸른 바위는 강충을 내려다보며 비웃는듯 한데 소년대왕은 안개속에서도 번개가 이는듯싶은 장검날을 휘익- 휘두르고있었다.

이제 분명 푸르고 거만한 저 바위가 두동강이 나든가 손에 잡힌 장검이 산산이 부서져 실망의 조약돌속에 나딩굴터이니 어느쪽이 두개의 모습으로 변하며 또 누가 하나의 실체를 유지할것인가?!…

폭포수의 굉음이 더욱 높아지고 골짜기를 지나온 한줄기의 음산한 바람이 바위를 부르르 흔들었다. 그와 함께 드디여 고함이 터졌다.

《야-앗!》

땅을 울린 그 소리가 잠시후 하늘우에 이르더니 번개불이 솟구치며 우뢰소리가 《쾅!》울렸다.

안개속에서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조차 않고 오관산을 울린 웨침과 우뢰성은 평나산과 부소산에 부딪치며 산울림을 몰아왔다.

태후와 연계돌은 번개불빛이 퍼진 후에 울린 우뢰성과 그뒤를 따르는 연기인지 운무인지를 보았을뿐 주위를 분간할수 없었다.

한참후에야 연기인지 안개인지의 장막이 열리더니 쩍 버그러져 두토막으로 갈라진 바위가 눈에 띄웠다.

산과 같은 바위가 둘로 쪼개졌으니 장검은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며 하나로 남은것이였다.

얼어붙은듯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던 태후가 갑자기 살아난듯 팔을 벌렸다. 그리고 대왕을 향하여 허둥지둥 나가다가 왜서인지 멎어섰다.

이때 강충이 머리를 숙여 태후에게 례를 표시하였다.

아니, 임금도 누구에게 절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응당 머리를 숙여야 하였다. 임금의 피줄은 부왕으로부터 이어졌지만 그 몸은 어머니가 낳아주었거니 어머니 없이 어떤 아들이 있으며 겨레가 있으랴!

그래서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그것은 뗄수 없는 음양을 이루는것이라고 생각하며 계돌은 감격이 앞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대왕, 태후가 공연한 근심을 하였소.》

박산신은 감격에 사무쳐 태후의 존엄조차 잊은듯 강충앞에 허리를 굽혀 절을 하려고 하였다.

순간 연계돌이 태후앞에 나서며 떨리는 소리로 부르짖었다.

《대왕마마, 고맙소이다. 이 신하의 마음은 황공하기 그지없소이다.》

계돌의 웨침소리가 이산, 저산으로 메아리쳐가는데 태후가 정신을 잃은 녀인처럼 또다시 대왕앞으로 나가 절을 하려는듯 두손을 모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왕 강충이 급히 다가서며 어머니의 손을 마주잡았다.

대왕은 어머니의 얼굴을, 태후는 대왕의 두눈을 들여다보는데 두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피였으나 분명 눈물자욱도 있었다. 그러나 그옆에 서있는 연계돌은 어깨며 수염이 다 떨고있었다.

《태후마마의 존안에 웃음이 피여 만시름이 사라졌사오니 이는 부소고려의 기쁨이요 환희옵나이다.》

아침해가 떠오르고있었다.

붉고 뜨거운 해가 자기의 수만해발을 펼치며 강충의 얼굴도 어루만져주었다.

흰 명주필을 걷어가지고 멀리로 날아가는 안개의 무리도 태후의 근심이 사라졌으니 자기들은 사라지노라고 의미있게 손을 흔들고있었다.

그해에 강충은 성거산묘옆에 호경사당을 세우고 그 이름을 개성암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하여 평나산엔 부소고려의 5대제단이 마련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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