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3

 

이튿날부터 재봉대는 녀대원들의 군복을 제작하는 한편 부대들에서 모아온 낡은 군복들을 수리하였다.

재봉대귀틀집은 수리할 군복을 맡기러 오는 대원들로 매일 흥성거렸다.

녀대원들은 그들속에서 고향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전에 함께 싸운 동지들의 소식도 들어 기쁨에 설레이며 군복수리를 다그쳤다. 그중에서도 서영순의 얼굴이 눈이 띄게 생동해졌다.

그러나 최정덕이만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기색이였다. 주력부대속에 들어오자 자기만이 할수 있다고 자처해온 일들이 다 없어졌던것이다. 각 부대들에서 군복을 빨리 수리하라고 장작도 패오고 손재간있는 대원들을 보내여 재봉기에 기름도 쳐주고 석유등잔도 만들어주고 보초까지 서주어 그가 남자구실을 하지 않아도 되였던것이다. 최정덕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군복수리를 해야 되겠으나 여느 재봉대원들처럼 바느질솜씨가 고운것도 아니고 또 그런 일은 마음에 성차지도 않았던것이다.

최정덕은 정붙일 일이 없는 사람처럼 뚝한 얼굴로 방복판에 우두커니 서있는 때가 종종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가 측은하게 여겨지시여 군복접수와 수리개소들에 따르는 분류작업을 맡겨주시였다.

그러자 최정덕은 다시 이전의 기세를 회복하였고 책임성이 지나쳐 군복수리를 빨리 해보자고 엉뚱한 꾀로 차례를 뛰여넘으려는 대원들한테 곧잘 혼뜨검도 내주었다. 그러다나니 웃음거리도 생기고 다툼질도 더러 생겼다. 며칠이 지나서부터 그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가셔졌다. 수리해달라고 들어오는 군복들이 팔굽이나 무릎이 꿰진 정도가 아니고 처참하게 찢어진것들이 많았기때문이다. 탄알에 구멍이 숭숭 뚫어진것, 포탄이나 수류탄 파편들에 앞가슴이나 뒤잔등이 험하게 찢어진것, 피가 거멓게 말라붙은것들… 그런 군복들은 여기 남패자로 모여온 사람들이 어떤 혈전의 길을 헤쳐왔는가를 보여주는것이였다.

어느날 저녁무렵 최정덕은 수리할 군복들을 한아름 안아다가 김정숙동지앞에 내려놓고는 그옆에 앉아 울분을 터뜨렸다.

《가슴이 떨려 못 견디겠소. 그저 내가 남자라문 기관총수가 돼서 저 왜놈들을 몽땅 쓸어눕히겠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가 안아온 군복들을 말없이 한벌 또 한벌 뒤져보시였다.

《정숙동무, 나는 재봉대일을 그만둘가 하오. 사령관동지께 직접 찾아가 전투부대에 보내달라고 하겠소.》

《정덕동무, 깊이 생각해봐요. 동무가 가면 재봉대에 기둥이 빠지는거나 같아요. 힘든 일이 생기면 우리 녀대원들이 모두 정덕동무한테 의지하지 않아요. 가슴에 불이 인다고 하나하나 다 가면 재봉대일은 누가 하겠어요. 왜놈들과 싸우는 마음으로 바느질을 차근차근 배우라요. 녀성들의 손길이 없으면 유격투쟁도 못해요. 우리 혁명군과 같은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는…》

최정덕은 눈물이 그렁해서 그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숙이, 그저 속이 끓어 해본 소리겠지 하구 생각하오.》

《알아요.》

그가 나가서 얼마 안되여 밖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정덕의 목소리였다.

《아-니, 세상에 원, 이런 너절한걸루 우리 군복을 맨들자구요?》

《어찌겠소. 천은 없지, 또 이 동문 이건 절대 입지 않지, 보다싶이 집에서 입고 떠난 바지저고리를 그냥 입고다니오. 김일성장군님의 군대가 너펄거리는 바지저고리를 걸치고 다닌다면 세상이 뭐라 하겠소.》

남자의 석쉼한 목소리가 정덕이를 설복했다. 그 목소리가 매우 귀에 익었다.

《몸에 맞게 잘 해입혀보자고 내가 직접 데려왔소. 동무, 접수해주오.》

《정숙동무한테 물어보구서 결정합시다.》

《아니, 정숙동무라니 어느 정숙이말이요?》

김정숙동무지 누구겠소.》

김정숙동무가 여기 있소?》

오중흡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였다.

그이께서와 오중흡이 손을 마주잡고 어찌나 반가와하는지 최정덕의 얼굴에도 미소가 넘치였다.

오중흡의 옆에 아주 헐어진 조선바지저고리차림을 한 중키의 청년이 어정쩡한 얼굴로 서있었다. 그 청년은 어딘지 모르게 몸이 허약해보이나 눈에서는 정기가 빛나고있었다.

오중흡이 그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동무한테 군복을 해입혀야겠는데 천이 있어야지. 그래 유격대군복으로 고쳐달라고 이런 협화복을 가져왔는데 어디 접수해주오.》

그러자 최정덕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걸루 어떻게 우리 군복을 맨듭니까? 인민들이 색갈만 봐도 싫어하는 천인데…》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이 들고있는 협화복을 잠시 여겨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정덕동무 말이 옳아요. 군복이야 왜놈들 총을 빼앗아 쓰는것과는 다르지요. 얼마나 사정이 딱하면 이런걸 다 들고왔겠어요. 나한데 여벌로 간수해둔 군복감이 있는데 그걸로 짓자요.》

《있소?》

《있어요.》

《됐구만!》

오중흡은 너무 기뻐 청년의 잔등을 툭 때렸다.

《보라구, 이렇다니까! 이 친구야, 왜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 서있는건가. 고맙수다, 허리를 굽석 꺾어 절하라구.》

청년은 녀성들에게 그러기 점직한듯 얼굴이 벌개져 고개만 약간 숙여보이고는 인차 외면했다.

그래서 오중흡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초면이 돼서… 이름은 지세천이요. 장백에서 입대시킨 동무요. 첫 군복이 아니겠소. 몸에 맞게 좀 잘 만들어주오.》

최정덕은 대원을 아끼는 중대장의 심정이 비로소 가슴에 젖어드는듯 눈빛이 따뜻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째서인지 청년의 이름이 귀에 설지 않아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시다가 오중흡에게로 돌아서시였다.

《그럼 몸을 재야겠군요.》

《그렇게 해주오. 사령부로 가던 길이 돼서 나는 먼저 가보겠소.》

지세천은 방안에 들어와 숱한 녀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된 속에 서서 몸을 재게 되자 얼굴이 벌개져 눈길을 어디에 두었으면 좋을지 몰라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 대신으로 쓰는 노끈을 늘여 몸을 재면서 그가 너무 수집음을 타기때문에 별로 말을 건네지 않으시였다.

청년이 인사를 하고 떠나간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다시 그 이름이 미심쩍어 밖으로 따라나가시였다.

청년은 벌써 골바닥에 내려가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달려내려가 청년을 불러세우시였다.

《동무 이름이 지세천이라구 했지요?》

《예

《신파쪽에 친척이 없어요?》

《제 집이 신파근처에 있습니다.》

《그럼 지세경이라고 몰라요?》

《제 사촌형입니다.》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 반가와 그의 손을 덥석 잡으시였다.

《나를 모르겠어요?》

《압니다. 신파조직에서 저희들을 유격대에 추천해보낼 때 물방아간에 나와 만나주시지 않았습니까.》

그이께서는 고삭은 지붕에 덮인 나지막한 물방아간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왜 모르는척 했어요?》

청년은 뒤더수기를 쓸어만지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군복도 못 입은 주제에… 면목이 있습니까. 추천 받아가지구 떠난지 언젠데, 정말 창피해서 죽겠습니다.》

《앉자요. 어디 앉아서 좀 이야기하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지세천이와 나란히 락엽이 덮인 진대나무에 걸터앉으시였다.

《어떻게 돼서 아직 군복도 못 얻어입었어요?》

그이께서는 측은하면서도 분한 생각도 없지 않아 이렇게 물으시였다.

《나는 언제봐야 신수가 나쁘지요.》

《그때 떠나서 인차 입대하지 못한게지요?》

《내 일이 그렇게 척척 헐하게 되면 신수가 나쁘다구 하겠습니까?》

《그럼 그사이 어디 있었어요?》

《어디가 뭡니까.》

지세천은 그때 유격대로 찾아가던 청년들이 왜놈들의 매복에 걸려 인솔자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자기는 이틀동안이나 추격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후 한달이상이나 유격대를 찾아 산속을 헤맸습니다. 날감자두 파먹구 산전막에 들려 밥동냥두 하면서… 내 재간에 인솔자없이 어디서 유격대를 찾겠습니까. 하는수없이 집으로 돌아가자구 산속에서 나와 압록강을 넘자다가 나루터에서 잡혔습니다. 옷주제가 너무 험하구 팔다리에 긁힌 자리가 많아 순사놈 의심을 샀던겝니다. 뭇매질에 코피가 터지면서두 유격대로 찾아가는길이였다는 말은 안했기때문에 다행히 무한령도로공사판에 끌려가게 됐습니다. 거기서 댓달 고생하니 천하에 무서운게 없었습니다. 죽든살든 유격대로 가보자. 이렇게 맘먹구 도망쳐 산속을 헤메다가 줄이 있어야 헐할것 같아 도천리 강구장한테로 찾아갔습니다. 가보니 강구장내외는 잡혀가고 없었습니다. 너무 허망해서 밭속에 숨어앉아 이궁리저궁리 하는데 한때 동아일보지국장을 하던 리풍우선생이 유격대와 무슨 연줄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일이 피뜩 떠올랐습니다. 세상일에 밝고 덕망도 높은분이니 친절하게 도와줄게다 생각하고 밤중에 찾아가니 선생도 잡혀가고 없었습니다.》

《아니, 그게 사실인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서 바위돌이 굴러떨어지는듯 한 충격에 얼굴이 해쓱해지시였으나 누긋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사실이 아닌걸 말하겠습니까. 에참, 기막혀서… 눈앞이 캄캄해지니 어머니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어머니한테로 돌아가자, 이렇게 마음을 돌려세우구 길을 가다가 웬놈이 뒤따라와 집쪽으로 못 가고 압록강을 건느다가 다시 추격을 당했습니다. 장백현 팔도구 뒤산에서 잡혀 끌려가다가 유격대 소부대한테 구원됐습니다.》

《숱한 고생을 했구만요.… 그게 어느 소부대일가?》

《리동걸이란 동지가 책임자였습니다.》

《아니, 동걸동무가?》

《잘 압니까?》

《알지 않구요.》

《그 동지는 내 은인입니다.》

《그때 신파에서 같이 떠난 다른 동무들은 어떻게 됐어요?》

《내가 잡힐 때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후 어떻게 됐는지 알수 없습니다.》

《집에는 누가 계셔요?》

《어머니, 형, 녀동생 이렇게 세식구가 있습니다.》

《형님은 성함을 어떻게 부르던가요?》

《지세규라고 합니다. 녀동생은 세옥이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지세경의 영향밑에 조직에 망라되였던 듬직하고 말이 적던 그 농민청년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시였다. 그러나 세옥이는 잘 생각나지 않으시였다.

지세천은 무릎을 쓸어만지며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집을 떠난지 언젠데 아직 이 꼴입니다.》

《너무 조급해 말아요. 내가 직접 군복을 말궈서 잘 만들어주겠어요. 세천동무는 여기서 신파조직을 대표해서 싸우는거나 같아요. 세천동무가 잘 싸워야 추천해보낸 조직도 면목이 서지 않겠어요.》

《신파조직을 대표할게 뭡니까. 여기선 내가 장백에서 입대했다구 모두 장백동무… 장백동무 하고 부릅니다. 아주 별명이 되고말것 같습니다.》

《그러면 뭐라나요.》

그이께서는 한동안 머리를 수굿하고계시다가 가슴을 울렁이며 물으시였다.

《세천동무, 그후 신파쪽 소식은 못 들었어요?》

《예… 한마디두 얻어듣지 못했습니다.》

지세천이를 떠나보낸 김정숙동지께서는 진대나무에 도로 앉아 한손으로 불덩이같은 이마를 싸쥐고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이마를 짚은 손등에 흘러내린 몇오리의 머리칼이 바람결에 한들거렸다. 골짜기치기 어디서인가 갈가마귀들이 청승맞게 기승을 부리며 울어댔다.

그이께서 재봉대귀틀집에 돌아오시니 재봉기앞에 앉아있던 서영순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정덕이 황황히 다가와 꽛꽛한 손으로 그이의 이마를 짚어보고 혀를 찼다.

《어디 아파요?》

《아니…》

《쯧쯧… 열이 있구나.》

최정덕은 방아래목에 모포를 펴놓고 어서 누우라고 하면서 부엌아궁으로 나가 불을 지피였다.

그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대원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까지도 주무시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둠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천장만 쳐다보시였다. 지세천의 이야기에서 알게 된 소식들은 모두 청천병력과도 같은것이였다. 잘 위장되였던 강성태구장의 체포, 중간계인사로 공인되고 합법적지위가 공고할뿐아니라 든든한 배경도 가지고있는 리풍우선생의 체포, 이 두 사건만 련결하여보아도 도천리일대와 신파지구에서 벌어졌을 사태의 륜곽이 뚜렷이 떠오르시였다. 우로는 강성태, 먼 변두리에서는 리풍우까지 체포되였으니 하강구와 그 대안 국내의 모든 조직들이 굵은 줄기에서 잔뿌리까지 다 드러난것이 아닌가. 거기서 《혜산사건》과 같은 참사가 벌어진것이 아닌가. 그이의 눈앞에 하강구와 신파지구의 마을들, 조국광복회조직을 꾸리느라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닌 길들이며 조직에 망라되여 친동기간처럼 가까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목숨을 걸고 7개월동안이나 애쓴 일이 다 파탄되였는가?

그이께서는 눈물을 삼키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못 견디게 저려나 어둠속에서 몸을 뒤채기며 신음소리를 내시였다. 도천리를 떠날 때 따라나오며 눈물짓는 사람들의 손을 뜨겁게 잡고 한 말이 지금도 귀전에 쟁쟁하다.

《여러분, 장군님께서 왜놈들을 쓸어눕히며 조국으로 쳐나올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때 장군님을 모시고 다시 꼭 오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그때 사람들은 이 말을 다 믿었다. 그날을 눈앞에 그리며 감격의 눈물을 머금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 사람들이 오늘은 어떻게 되였을가. 이밤 철창속에 피투성이 되여 쓰러져있는 국내동지들의 머리에 내가 떠올랐다면 나를 두고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사령관동지, 신파로 다시 가게 해주십시오. 저 혼자서라도 가겠습니다!)

락엽이 밟히는 소리가 바스락바스락 고요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떻게 밖으로 나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며 발길이 가는대로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귀안에 메아리치고 숨이 문득문득 막히며 목이 칼칼하게 말라들었다.

마가을의 차거운 달빛이 괴괴한 수림속에 흘러들어 서리가 내린 나무가지들이며 골바닥의 락엽들이 유난스럽게 반짝거렸다.

한참 걸어가시던 그이께서는 얼굴을 간지럽히는 산뜩산뜩한 감촉에 흠칫 놀라 멎어서시였다.

골바닥에 푹신하게 깔린 락엽들이 일순간에 살아움직이는듯 야릇한 소음을 내고 거뭇거뭇한 나무그루들에 흰 반점들이 촘촘히 찍혔다가 거멓게 녹아내리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머리를 한껏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시였다.

밤하늘에는 가녁이 희부연 구름장들이 성글게 널려있는데 거기로부터 눈이 날아내리는듯 했다. 구름장과 구름장사이로 쏟아져내리는 환한 달빛속에서 수많은 눈송이들이 빙글빙글 엇갈려돌아가며 반짝이다가 곧추 날아내렸다.

사뿐사뿐 얼굴에 내려앉는 눈송이들은 순식간에 녹아 비통한 그 무엇처럼 볼을 따라 줄줄이 흘러내렸다.

엄혹한 만주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써늘한 기운이 수림속을 휩쓸며 그이를 휘감아버렸다. 선뜩한 랭기와 함께 들이닥치는 이름할수 없는 절박감과 초조감에 그이께서는 가슴이 얼음덩이처럼 굳어지시였다.

(아, 겨울… 어찌나!)

김정숙동지께서는 허둥지둥 앞으로 더 걸어나가시다가 나무줄기들사이로 사령부귀틀집의 불그레한 뙤창이 바라보여 주춤 멎어서시였다. 지붕끝에 뭉툭하게 두드러진 굴뚝에서 뜬김같이 허연 연기가 환한 달빛속으로 그물그물 기여올랐다. 이윽고 뙤창이 열리고 불빛이 흘러나오더니 조용한 말소리가 나고 뒤따라 하모니카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사령관동지께서 뙤창을 열고 첫눈이 내리는것을 내다보시다가 전령병에게 하모니카라도 좀 불라고 이르신것인가. 들리는듯마는듯 간간이 들려오던 하모니카소리는 갑자기 설음에 흐느끼듯 떨면서 애절한 가락으로 번지였다. 《사향가》의 가락이였다. 그 노래는 고향과 조국이 그리워질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저미며 생명처럼 귀중한 모든것을 망각의 안개속에서 떠오르게 하여 눈앞에 펼쳐보이기도 하고 위안과 애무의 부드러운 손길처럼 쓰라린 마음을 쓸어만져도 주고 볼에 젖은 눈물도 말려주며 상념속에 늘 흐르던 가락이였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

 

김정숙동지께서는 곁에 선 강대나무에 쓰러지듯이 의지하며 터슬터슬한 그루를 안으시였다.

(아, 어째 저 노래를…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북방으로 들어가게 된게 아닌가.

그날 장군님 앞에서 왜 심정을 다 털어놓지 못했던가!)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시정의 깃을 펴고 달빛과 눈송이들의 회오리속을 누비며 유유히 날아돌던 가락은 갑자기 절통한 웨침으로 터져 이국의 밤하늘에 아득히 날아올라 하늘가 저 멀리 조국산천에 석별을 고하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가슴터지는 격정에 나무를 꽉 그러안으며 얼굴을 숙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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