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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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월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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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까를 떠난지 사흘이 지나자 바다에는 다시 사방이 트이고 무한대한 파도만이 출렁이는 대양의 세계가 펼쳐졌다. 끝없이 넓은 이 바다가 후세의 사람들에 의해 인디아양으로 불리워졌다.

대양길의 첫 단계는 해협의 서쪽끝으로부터 천축국의 남단에 이르는 5 000여리의 바다길이였다.

세척의 고려배들은 맞춤하게 불어오는 동풍을 돛폭마다에 가득 안았다. 키를 넘는 노질칸에 서기도 하고 때로는 앉기도 하며 노군들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라는 말과 같이 돛이 안은 바람의 힘에 노질을 보태였다. 수십개의 노를 젓는 노군들의 어야데야 노래소리는 배의 속도를 곱절로 높여주었다.

고국에서는 상상도 못해본 뜨거운 해빛과 바다물마저 말려버릴듯싶은 열풍에 살조차 익는듯 하였으나 뒤이어 쏟아지는 소나기와 밀려오는 물안개는 그 더위를 식혀주기도 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백수십명이나 되는 고려의 배군들은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왕후와 시녀의 땀방울은 얼굴에서 내물을 이루었으며 제스스로 뛰여다니는 아라비아소녀들의 즐거움에 넘친 얼굴에도 태양이 만들어준 구리빛이 짙어갔다. 늙은이의 모습을 아예 털어버리려는듯 무함마드로인의 굽어들었던 허리도 어쩐지 펴진것만 같았다. 말라까해협을 벗어난지 열흘쯤 되여 왕륭이가 이끄는 고려배들은 천축국의 남쪽에 있는 사자국의 랑카섬에 이르렀다. 이들이 들어선 항에는 벌써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고있었다.

이 항구에서 물을 보충하였으며 남새와 여러가지 부식물들도 사서 실었다. 항구부근에는 야자나무가 무성하여 남방의 정서를 이채롭게 장식해주고있었다.

락조비낀 이국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래간만에 자연속에 자기의 생각을 잠그어보는 왕륭의 눈에 코끼리등에 올라앉은 한 불승이 부두로 오는것이 보였다.

놀라운것은 그 불승과 코끼리앞에서 무함마드로인이 걸어오는것이였다. 로인은 배앞에 이르러 손을 먼저 흔든 후 배우에로 급히 올라왔다.

그는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태자님, 놀라웁게도 고려에서 이곳의 불탑을 보려고 찾아온 승려 한분을 만났소이다. 그래서 모시고 왔소이다.》

《고려의 스님이라니?…》

왕륭은 꿈을 꾸는것만 같아 놀라서 다음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차 자기의 할바를 찾은듯 벌떡 일어섰다.

《고려스님이 오시다니… 이렇게 먼곳까지?》

왕륭이 부두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신사인이 따르며 입을 열었다.

《태자님, 이곳은 고려와 신라의 스님들이 천축의 사원들을 돌아보려고 수만리바다를 건너 들어서는 대문이며 또 우리의 선상들이 배를 타고 서천축이나 페르샤, 사라센으로 오갈 때 들리는 곳이라고 하옵나이다.》

말을 마친 사인은 제먼저 부두로 뛰여내려갔다.

왕륭이 배를 내리려는데 이미 신사인의 안내하에 고려스님이 올라오고있었다.

고려스님은 자기를 마중하기 위해 배전에까지 나온 태자앞에 머리를 숙이였다.

《나무아미타불, 수만리 이역에서 고국의 태자님을 만나뵈오니 석가님을 만난듯 반갑소이다. 소승은 구월산 패엽사에 몸을 담고있는 오엽이옵나이다, 나무아미타불.》

왕륭은 두팔을 벌리고 오엽을 껴안았다. 왕륭의 눈에도 오엽의 눈에도 맑은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대사님, 일찌기 구월산에 패엽사를 세우신 구엽대사님의 명성을 들어 이미부터 존경의 마음을 품고있었나이다.

구엽대사께서 바로 여기 남천축에서 패엽에 불경을 써가지고 오신것이 패엽경으로 이름지어지고 사원의 이름마저 한산사패엽사로 부르게 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그런데 오늘에는 구엽대사님의 제자이신 오엽대사님께서 또다시 여기에 오시였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나이까?》

《나무아미타불, 태자께서는 과찬의 말씀을 마시오이다. 소승은 고려국에 머리를 둔 불승으로서 구엽대사의 뒤를 이어 부소고려의 불가를 중흥시키고저 스승께서 이미 밟으신 길을 따라 석가님의 고국행을 했을뿐이옵나이다.》

《아, 고맙소이다, 오엽대사.》

그들은 수만리 지경밖에서 뜻밖에 만난 한겨레인것으로 하여 뜨거운 격정속에 상봉의 순간을 보내였다.

오엽대사는 남천축에 이르렀던 우리 나라의 불승은 이미 수십명을 넘으며 일부는 페르샤를 거쳐 불림(수리아)에까지 갔었다고 하였다.

오엽대사는 쓸쓸한 빛을 얼굴에 나타내며 자기의 말을 계속하였다.

《념주와 바리대로 살아가는 우리같은 불가의 인생들에게야 배가 있겠나이까, 수레가 있겠나이까? 오직 석가님의 학문인 불경과 불가의 세계가 이 세상 어디에까지 퍼져있는가를 알고싶어 천축땅을 밟고 그곳을 지나 불림에도 이르렀을뿐이옵나이다. 그들은 하나와 같이 말도 통하지 않는 수십개 나라와 수백 종족을 만나고 그들의 시주를 받아 구복을 달래며 만리에도 이르고 10만리도 돌았나이다.

이렇게 세상을 돌고돈 사람들은 승려들뿐이 아니오이다. 우리 승려들이 불가의 세계를 밟아보았다면 상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세상을 돌았소이다. 하기야 그들은 우리네들처럼 구걸할 일도 없었고 거지와 같이 내쫓기울 구실이 없었소이다.

상인들은 바다를 건늘 때는 이토록 훌륭한 배를 탔고 사막을 횡단할 때는 락타를 탔으니 소승들이 걸을 때 하늘을 난셈이 아니겠소이까? 허허… 그런데 태자께서는 소승처럼 석가님의 고향을 돌아보실 의향도 아니실터인데 어찌 이토록 먼길을 오셨나이까?》

왕륭은 그저 나라의 일을 보기 위하여 이곳까지 왔으며 또다시 큰 바다를 건느려 한다고 말하였다.

오엽대사는 제일이기라도 한듯 신심에 넘쳐 말하였다.

《만리대양을 넘어도 자기의 배에서 자기의 돈을 가지고 자기의 밥을 먹으며 가는 길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소이까?

고구려의 배들도 일찌기 중원과 천축을 거쳐 이 세상의 끝이라는 아라비아나 에티오뻬스(해빛에 탄 사람의 나라라는 뜻. 오늘의 에티오피아.)에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수많이 전해오고있소이다.           

만약에 궁중이나 사원에서처럼 그 상인들에게도 남겨놓은 글이 있었다면 왜 그 상인들의 이야기가 빠짐없이 기록되지 않았겠나이까.

하기야 상인들이 만리창파를 헤치며 이 세상 끝까지 배를 몰아간것은 자기의 장사속을 채우기 위한것이였으니 그 속내를 써서 세상에 고할수도 없을것이요, 그것이 기록된 그런 글들이 나올수도 없었겠지요. 허허허…》

왕륭과 사인은 오엽대사를 따라 크게 웃었다.

왕륭은 오엽대사에게 금화로 푼푼하게 시주를 하고 만리 고행길을 부디 건강히 넘어 고국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오엽은 어느 고마운 사람의 시주로 코끼리를 타고 오가던중 고국의 배와 사람들을 만난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며 야자나무숲속으로 사라졌다.

왕륭의 가슴에도 오엽의 모습은 뚜렷이 남았다.

겨레의 장사배들이 이 길을 헤쳤고 해빛에 탄 사람들의 나라에까지 오갔다는 대사의 이야기는 만리항로에서 피곤에 잠긴듯싶던 부소고려의 배군들의 온몸에 기운을 돋구어주었다.

특히 겨레의 장사배들이 만리항로를 헤치며 다닌 사실을 적은 글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해졌을것이라며 허거픈 웃음을 짓던 오엽대사의 모습을 왕륭은 더더욱 잊을수 없었다.

그 웃음은 먼바다길을 헤치는 왕륭과 배군들에게 그 어떤 목적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큰 힘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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