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2 장

4

 

만주땅에 첫눈이 내릴 때 조국의 북변에는 아직도 마가을바람이 휘몰아쳤다.

무연한 등판을 가로질러 뻗어나간 길을 따라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달구지우에 오십고개를 훨씬 넘어선 고집스럽게 생긴 어머니와 색이 바랜 자색양복차림에 얼굴생김이 만만치 않게 생긴 30대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신파에 살다가 운곡광산 아들한테로 이사가는 어머니는 유평장거리에서 이 사나이를 우연히 만나 난생처음 먼길에 나서 고생한 이야기랑 눈물겹게 하게 되였는데 사나이가 달구지군에게 말해주어 호강을 하게 된것이다. 달구지는 운곡광산 함바집것인데 유평장에 가서 소금섬을 사싣고 오는길이고 사나이는 그 광산 사무소 회계원이였다. 이 사나이는 길에 나서 고생하는 어머니가 측은하게 여겨졌던지 달구지군과 함께 소금섬들을 옮겨 자리를 만들어주고 서너개의 보잘것없는 이사짐까지 조심조심 다루어 올려놓아주었다.

그리고 오면서는 요기를 하라고 유평장에서 사넣은 호떡이며 깨엿까지 권했다.

어머니는 너무 고맙고 마음이 들썩해져 달구지에 올라앉자 신파를 떠날 때 괴롭던 마음이며 길에 나서 외롭던 일, 자기 신상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하고 아들딸들에 대하여 말하려다가 입이 너무 헤퍼지는것 같아 목을 움츠러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인들의 입이 언제나 화단이라고 생각하며 사나이가 건네는 말에 건숭으로 대답하거나 고집스럽게 응대를 안했다.

처음 만나 그처럼 인심을 후하게 써주고 척척하게 굴던 사나이도 로친의 느닷없는 경계심에 고까운 생각이 들었는지 그쪽을 더 거들떠보지 않게 되였다. 그래서 백리길을 함께 오면서도 내내 말이 없었다.

흙먼지를 부옇게 뒤집어쓴 고산녀는 시름이 가득 실려 가맣게 빛이 꺼진 얼굴로 길가의 오막살이들이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류랑민들의 떼며 순사에게 끌려가는 《죄인》들을 바라보다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어디 가나 보이는것은 기막힌 일들뿐이고 다 남의 일같지 않았다. 이제 운곡에 가서 사노라면 어떤 모진 일이 닥칠지, 자식들의 신상에 어떤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였다.

문득 그의 무릎우에 락엽 한잎이 너울거리며 날아떨어졌다. 고산녀는 무심결에 그것을 꼭 그러쥐였다. 바싹 마른 가둑나무잎은 주먹안에서 맥없이 바스라졌다.

그는 까닭없이 가슴이 저려나 흐려진 눈을 들어 저 아득한 재빛하늘에 떠도는 락엽들을 쳐다보았다. 사납고 무정한 바람에 날려 갈곳을 모르고 떠돌다가 속절없이 흩어지는 그것들의 신세가 사람들의 신세로 여겨지며 목구멍에 가득 눈물이 괴여올랐다.

(에그, 세월두…)

옆에 앉은 사나이가 그 메아리인듯 가슴이 꺼져내리게 한숨을 내쉬였다.

《휴-빌어먹을 세월두! 어머니, 저 락엽들을 좀 보십시오. 저것들도 나무가지에 붙어있을 땐 푸르싱싱해서 아침저녁이면 이슬을 머금고 반짝거렸을테지요.

한낮엔 바람결에 살랑살랑 설레고… 한데 이제는 락엽이라 정처없이 흩어져 날려다니다가 어덴가 떨어져 아주 썩어버린단말입니다. 락엽의 신세나 사람 신세나 다를바 없지요. 아-참…》

고산녀는 어쩌면 이리도 같은 생각을 하는것일가싶어 의아한 눈길로 그를 돌아보았다.

《젊은이, 광산사무소에서 일한다고 했지?》

《예-》

《우리 세규하구는 아는 사인가?》

《글쎄요…》 하고 사나이는 밤빛이 도는 감스름한 수염이 까스르르한 턱을 손끝으로 쓸어만지며 시무룩이 웃었다.

《안다면 잘 아는 사이고 모른다면 전혀 모르는 사이겠지요. 여태 서로 통성도 못했으니까요.》

고산녀는 그의 애매한 대답속에 숨어있는 범상치 않은 곡절이 가늠되는듯 의미심장하게 머리를 끄떡이였다.

《그런가…》

사나이는 한숨을 내쉬였다.

《저는 사무소 회계로 있으니까 리하섭이라고 하면 광산에서 모르는이 없을겝니다. 세규도 그저 다른 사람들 정도로 저를 알고있겠지만 저는 세규를 잘 알고있습니다. 누구한테서 얘기를 들은적도 없지만…》

고산녀는 갑자기 가슴이 후두둑 뛰며 목안이 말라들었다.

《우리 애는… 세규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오. 배운것도 없구해서…》

그의 말꼬리는 한숨에 묻혀버렸다.

고산녀가 맏아들 지세규를 두고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된것은 작년 이른봄부터였다.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대신에 내내 농사일에만 묻혀있던 세규는 작년 3월 초순부터 갑자기 4촌형 지세경의 집에 자주 다니더니 야학에 들어 공부하고 조국광복회성원이 되였다.

뒤따라 둘째아들 세천이와 딸 세옥이도 야학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세규가 걷는 길에 들어섰다.

자식들은 어느덧 기개가 높고 기품이 의젓하고 궁냥이 깊은 사람으로 되여갔다.

금년 여름 세규는 조직의 특별임무를 받고 무산근처의 운곡광산으로 파견되였다. 조직의 권고도 있고 해서 떠날 때 아들이 솔가해서 가려고 했으나 고산녀는 옹고집을 부려 신파에 남고 세옥이만 따라보냈다.

지하조직의 추천으로 십여명의 청년들과 함께 유격대로 가다가 왜놈들의 기습을 받아 객사했다는 소문도 있는 둘째아들 세천이때문이였다. 혹시 천행으로 살아난 아들이 집이라고 찾아왔다가 어미마저 없으면 어찌랴싶어 도무지 맏이를 따라 훌 떠나갈수 없었던것이다. 자식들이 다 떠나간 빈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가슴을 재로 채우며 낮이나 밤이나 둘째의 소식을 기다렸다. 고삭아 우불구불 기울어진 울바자에 까치가 앉아 울어도 어머니는 가슴을 활랑거리며 사립문밖으로 총총히 달려나가 키돋움하여 먼 동구길을 내다보았다. 밤이면 가마목에 꼬부리고 누워 한숨속에 쪽잠이 들었다가도 바람의 희롱질로 문고리가 달그닥거리거나 뜨락에서 지푸라기가 바스락거려도 둘째의 기척인가싶어 소스라쳐 뛰여일어나 문을 열어보군 했다.

까치나 바람만 죄없는 어머니를 속이며 우롱하는것이 아니였다. 세상에 돌아가는 착잡한 풍문은 더했다. 15도구치기의 바위밑에서 조선청년들의 시체가 나졌다느니, 왜놈들이 유격대로 가는 청년들을 잡아 눈을 도려냈는데 요새 장백오지의 농가들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는 소경거지가 그중의 한사람이라느니… 이런 풍문을 듣고 어머니는 집에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었다. 세상 어머니들중에서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자식 일에 무서운 이 어머니는 그럴듯한 핑개를 꾸며가지고 강을 건너 대륙의 기슭으로 넘어가 15도구치기의 바위라는 바위밑은 죄다 뒤져봤으며 장백오지의 산간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소경거지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 가도 세천의 종적을 찾을길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뭇없이 사라져 어미의 애간장을 태우고 날마다 가슴에 재만 채워주는 야속하고 부실하고 불효한 자식이건만 어머니의 사랑은 원망이나 미움으로 바꿔지지 않았다.

기쁨이나 자랑을 안겨주는 다른 자식들보다 그 자식이 더 곱고 중하게 여겨져 밤마다 가슴저린 련민에 잠 못 들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였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기다림은 쇠진해질 대신 나날이 줄기차만 졌다.

어머니는 옛풍습을 지켜 어느 하루도 둘째의 밥그릇에 찬바람이 서려돌게 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둘째의 사기그릇에 더운밥을 눌러담아 덮개를 꼭 덮어서 가마목에 고이 놓아두었다. 그 밥그릇은 지난 봄과 여름, 가을 내내 어머니의 기다림처럼 어김없이 가마목에 놓여졌다.

지난해 물건너 장백과 혜산, 갑산일대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잡혀간 뒤 왜놈들이 악을 쓰고 접어들어 지하조직의 뿌리들을 파고드는바람에 처처에서 사람들이 잡혀간다는 소식이 매일과 같이 날아들어 국경읍의 공기를 뒤숭숭하게 흔들어놓았다. 신파와 물건너의 하강구일대에서도 군경들이 미친개처럼 돌아쳤다. 밤중에 여기저기에서 총소리가 울리고 간다온다 소리없이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이 나졌다. 령북땅에 널리 알려진 고명한 정장로와 리풍우선생이 헌병대에 호출되여 문초를 당했다는 소문이 항간에 파다하게 퍼져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어느날 새벽 도천리의 강성태구장이 읍으로 바람처럼 새여들어 어머니를 찾아왔다. 구장은 《혜산사건》의 여파가 여기까지 미쳐왔는데 어머니가 집에 혼자 남아있는것이 미친개들의 눈길을 끌수 있으며 그로 하여 세규에게도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르니 차라리 집을 운곡으로 아주 이사가는것이 어떠냐고 권하였다. 그 말을 듣자 없어진 둘째 생각은 뒤로 물러나고 이번에는 맏이 걱정이 불처럼 가슴을 지지였다.

어머니는 황황히 이사짐을 꾸렸다.…

달구지는 어머니의 기막힌 사연과 한숨을 싣고 뻐걱거리며 굴러갔다.

옆에 앉은 사나이는 측은한 눈길로 고산녀를 지켜보았다.

《자식들이 다 떠나간 빈집에 여러달 혼자 계시자니 맘인들 여간 썩였겠습니까. 집을 훌 떠나지 못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런 험한 세월에는 그저 자식이 많은 어머니들 맘고생이 제일 크지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구…》

그는 눈길을 돌려 먼 하늘가를 침울하게 바라보았다.

고산녀는 부드러운 동정의 말에 울컥 치미는 설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어머니한테 아들이 또 있다지요?》

《있기는 있소마는 부실한 녀석이라우. 집을 나간지 오랜데 감감무소식이요.》

《어디로 갔게요?》

《글쎄… 어디로 갔는지?…》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어리였다.

《요새 늙은이들은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바람이 난 녀석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그르다고 할수야 없지요. 하긴 세상에 바람인들 오죽이나 많겠습니까. 사랑바람, 투전바람, 돈벌이바람, 무슨무슨 운동바람, 혁명바람… 이 바람들이 다 한창 나이의 가슴들에 불을 달만한것들이지요. 어머니의 둘째아들도 난봉군이 아닌 이상 좋은 바람이 들어 집을 떠났겠으니 과히 창피스럽진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젊은이는 우리 집 래력을 다 아는것 같구려.》

리하섭은 허거프게 웃었다.

《제가 뭐 아는게 있습니까. 요즘 세상에선 남의 일을 너무 알아 화를 입는 경우도 있답니다. 저는 그저 세규 그 사람이 저하구 신세가 비슷한것 같아 여겨봤을뿐이지요.》

《원래 여기 태생인가?》

《아닙니다.》

《그럼 다른데서?…》

《세규가 여기 오기 한달전에 혜산에서 왔습니다.》

어머니는 살륙의 피로 얼룩진 그 고장 이름에 소름이 끼쳐 눈이 휘둥그래졌다.

《혜산이라구?》

《예.

《어떻게 돼서 여기로 오게 됐게?》

《아… 묻지 말아주십시오.》

《집에 어머니가 앉아계시는지, 맘고생이 막심하겠구만.》

리하섭은 그 말에 대답하지는 않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였다.

《처지가 같게 여겨지면 통성도 하고 서로 의지하며 지낼게지 왜 여태 그러구있었나?》

《제 원래 줄난놈이기도 하려니와 가까이 지내는게 피차에 해롭지 않을가싶어 삼가해왔습니다.》

《하긴 그렇기도 하이.…》

달구지채를 힘겹게 끄는 검정황소는 흙먼지구름이 덮쳐들어 주둥이를 쳐들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고 늙수그레한 달구지군은 세상사가 다 을씨년스러운듯 고삐를 감아쥔 손을 허름한 덧저고리소매에 찔러 팔짱을 끼고 걷다가 바람을 둥지고 돌아서 뒤걸음질쳤다.

달구지군이 바람결에 시큼한 탁배기냄새를 날리며 노래가락을 건드러지게 뽑아넘겼다.

 

    탁배기야 탁배기

    령너메서 마신게

    령 넘어와 용을 쓰누나

    세월아 세월아 어서나 흘러가라

    고달픈게 인생사라

    머리만 뱅글뱅글

    에-어루와 데루와

 

달구지바퀴는 힘겹게 굴러가고 노래가락은 차차 눈물에 젖어 흐려졌다. …

광산이 있는 골짜기는 물부터 달랐다.

골바닥을 따라 트레트레 흐린 물이 여러 가닥으로 번지여 개버들과 잡관목들밑을 주절주절 흘러내리며 음산한 기운을 풍기였다. 재빛에 진흙빛이 섞인 그 물은 이 세상의 물같지 않았다. 어찌보면 사람의 고혈이 그대로 녹아내려 흐름을 이룬것 같기도 했다. 고산녀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막돌을 깔아 쇠테바퀴가 우당탕거리는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골안이 갑자기 넓어지며 산기슭에 촘촘히 들어앉은 게딱지같은 집들이 보였다. 태반이 동기와를 이은 납작납작한 귀틀집이거나 널판자집이고 짐승의 우리나 다름없어보이는 움막집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굴뚝들은 어느것 하나 같지 않고 각가지였다. 곧추 올리뻗은 통나무굴뚝, 엇비스듬히 세운 네모난 널굴뚝, 밑굽이 빠진 독을 엎어놓은것, 집안에 세운것, 집뒤에 세운것, 가마니를 둘둘 말아 세워놓은것…

이고장 사람들의 고달픈 살림살이와 어수선한 마음이 그대로 비껴있는듯 한 그런 굴뚝들에서는 어설픈 저녁연기가 그물그물 피여올랐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저 웃쪽의 산중턱과 산기슭에 시꺼먼 굴구멍들이 숭숭 뚫려있었다. 그 구멍들이 토해놓은 버럭무지가 골바닥에 하얗게 흘러내렸다.

달구지가 마을복판에 들어서자 이집 저집의 문들과 삽짝뒤에서 얼굴이 누렇게 뜬 아낙네들이 고산녀를 내다보았고 막돌덩이같은 조무래기들이 와르르 달려나와 달구지군을 에워싸고 왁작 끓어번졌다. 조무래기들은 그를 《함바집삼촌》이라고 부르며 장에서 사온것을 좀 달라고 조르면서 깡충깡충 뛰여올랐다. 달구지군은 탁배기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덧저고리주머니에서 강냉이튀운것을 듬뿍듬뿍 쥐여내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그것이 천하 별맛이여서 코물과 함께 입에 쓸어넣고 좋아라 벅적 끓어번지는가 하면 형이나 누나한테도 맛을 보이자고 움막집으로 달려갔다. 모든 아이들에게 《삼촌》인 달구지군은 그것들을 바라보며 세상 시름을 다 잊은듯 껄껄 웃어댔다.

리하섭은 달구지군을 아이들에게 맡겨두고 자신이 직접 소를 몰아 산벼랑밑의 납작한 귀틀집마당으로 달구지를 들여세웠다.

문창호지가 없어 세멘종이를 바른 방문이 벌컥 열리며 세옥이 기겁하여 달려나오고 어머니는 허겁지겁 달구지에서 기여내렸다.

모녀는 부둥켜안고 눈물부터 쏟았다.

《엄마!》

《이것아, 살아있었구나.》

세옥이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너무 기쁘고 너무 반가와 응석받이처럼 흑흑 느껴울었다. 그러다가는 야드르르한 능금볼로 이슬을 굴리며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방긋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젖을 주고 사랑을 주던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딸은 나이가 나인지라 갈라져있는 몇달사이에 환하게 번지여 보슴털이 보르르한 뒤덜미의 살결도 분처럼 하얗다.

고산녀는 이젠 어떤 사나이의 팔뚝에 놓일지도 모를 그 뒤덜미며 탐스럽게 실팍한 어깨를 쓸어만지며 눈물을 짰다.

《이것아, 못 보는줄 알았더니… 오래비는 어째 보이지 않니?》

《일 나갔어요.》

그러다가 고산녀는 내내 다리를 까드리고 달구지에 앉아온 탓에 발바닥이며 종다리가 못 견디게 자려나 허물어져내리듯 주저앉았다.

세옥이는 어머니를 부축해서 퇴마루에 앉혀놓고 발이며 다리를 주물렀다.

《엄마두, 온다는 기별이나 하구 떠나지 않구.》

《일이 그렇게 됐다.》

고산녀는 딸의 이마에 흩어져내린 윤나는 머리칼을 손등으로 쓸어올려주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들 모녀는 너무 반갑고 기뻐 법석을 떨면서 리하섭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있다가 달구지를 돌려세울 때에야 그를 알아보았다. 리하섭은 어느새 바가지들이 매달린 보짐들을 퇴마루에 내려놓고 소금까지 한바가지 듬뿍 떠서 짐옆에 놓아두었다.

고산녀는 펄쩍 놀라 일어나며 딸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얘야, 인사 올려라. 내 저 사람 아니였더면 상기두 유평어방에서 어물거리거나 초기를 만나 중도에 쓰러졌을게다.》

세옥이는 순식간에 얼굴이 앵두빛이 되며 치렁치렁한 머리태를 볼록한 가슴앞으로 쓸어만져내리며 수줍게 인사하였다.

처녀의 그런 자태에 눈이 부신듯 리하섭은 실눈을 짓고 미소를 머금으며 머리를 끄덕 숙여보였다. 그리고는 저으기 난처한 얼굴로 고산녀에게 말을 건넸다.

《어머니, 말씀이 너무 과합니다.》

《여보게, 그런 소리 말게. 내 잊지 않겠네.》

《앞으로 의지하며 같이 지냅시다.》

《고맙네, 고마우이.》

모녀는 퇴마루앞에 가지런히 선채 멀어지는 달구지를 지켜보았다.

《너 여태 저 사람을 모르고 지냈니?》

《판판 모르는 초면 로친네를 존대하구 보살펴주는것만 봐도 례절있고 인정깊은 사람같구나. 말하는걸 봐두 속궁냥이 여간 깊지 않더라.》

세옥이는 겁을 잘 타는 토끼처럼 눈이 올롱해서 그의 뒤모습을 지켜볼뿐 대꾸를 안했다.

세규는 캄캄하게 어두운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오지 않았다. 결의형제를 무은 로동자들중의 다섯 의형제를 데리고 왔다. 그들은 나이 차례로 어머니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자기 이름을 대고 친자식으로 여겨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어머니앞에 빙 둘러앉아 다정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국수 열두그릇을 게눈감추듯 먹어치운다는 소문까지 낸 대식가에 힘장사인 황득범이와 성미가 불같은 리정수가 단짝이 되여 벅적 떠들며 광산의 우스운 이야기들을 엮어내리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웃음판이 되였다.

의형제들이 돌아간 다음 세옥이는 어머니와 오빠에게 자리를 펴주고 웃목에 올라가 누웠다.

어머니와 오빠는 가마목에 앉아 오래동안 신파이야기를 하였다.

세옥은 눈을 내리감았으나 종잡을수 없는 불안감에 가슴이 울렁거려 잠들지 못하였다. 그래서 속눈섭을 파들파들 떨며 가마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람은 너하구 아직 통성도 못했다면서 우리 집 일에 무척 마음을 써주는것 같더라. 너는 그 사람을 좀 아니?》

《예.… 뒤에서 수군수군 돌아가는 말을 들어보면 혜산쪽에서 지하조직에 망라되였다가 지난해 〈혜산사건〉이 터지자 몸을 피해 무슨 연줄을 타고 여기로 와서 취직자리를 얻은것 같습니다.》

《글쎄 어딘지 좀 이상하더라.》

《모르지요. 동지들을 위험속에 내버리고 제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온 겁쟁이가 아닌지… 처신하는걸 보면 뜻이 깊은 신중한 사람같기도 한데.》

《내야 아니? 맑은 속인지 시꺼먼 속인지는 몰라두 속은 깊은 사람이더라. 예전에 너의 할아버지는 사람 됨됨은 늙은이 대하는걸 보문 안다구 했다.》

《두구볼 일이지만 만약에 그런 사람이라면 리하섭이란 이름도 본명이 아닐겁니다.》

《에그, 세상이 험해지긴 험해졌지. 제 이름도 못 가지고 사는 판이니…》

세옥이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그 사람이 몇달전부터 이 집에 생긴 기이한 수수께끼의 임자가 아닌가싶어서였다.

지난 여름 어느날 새벽 세옥이 아침밥을 끓일 나무를 안아들이려고 마당가의 나무가리로 나가니 한 나무단속에 자그마한 종이꾸레미가 감춰져있었다. 그속에 광산마을에 귀한 비누가 들어있었다.

그런 일은 드문히 있었다. 어떤 때에는 신, 로동장갑 혹은 밀가루나 후추가루 혹은 백지묶음같은것도 들어있었다.

세옥이는 그 물건들을 쓰면서도 정체모를 그림자가 자기네 생활에 지꿎게 다가든다는 께름직한 생각에 밤에 혼자 있을 때면 문을 안으로 꽁꽁 닫아매였다. 세규는 그를 위로하며 이것은 이 광산지구에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 그 어떤 동정자가 숨어있다는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 사람이 그 동정자가 아닐가?)

 

×

 

세규와 세옥이는 어머니가 광산마을에 정을 붙이고 소식없는 세천의 생각은 될수록 덜하게 하려고 무척 마음을 썼다.

하루는 황득범이와 리정수가 매돌을 둘러메고 콩자루에 서슬병까지 들고 찾아와서 어머니에게 속이 출출하여 그러는데 순두부를 앗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스스럼없는 부탁에 친혈육간의 정을 느낀듯 얼굴에서 그늘이 가셔지고 눈에 정기가 살아올랐다.

고산녀는 순두부를 맛있게 앗아놓을테니 저녁에 일을 끝내고 동무들을 다 데리고 오라고 선선히 말하였다.

그들이 돌아가자 어머니는 콩을 서너줌씩 두리반상에 펴놓고는 잘디잔 돌이며 모래알들을 말끔히 골라냈다. 그런 다음 미지근한 물에 콩을 담갔다. 콩은 하루동안에 잘 퍼졌다. 저녁에 황득범이와 리정수를 비롯한 다섯명의 청년들이 세규를 따라 집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그들 결의형제들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콩망질을 한다, 장작을 패서 안아들여 부엌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물을 길어들인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온 집안이 활기에 넘친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들썩해졌다.

어느덧 솥에서 문문 피여오른 뜬김이 천장밑에 뽀얗게 서려돌고 방안에는 단란한 가정의 따뜻한 화기가 돌았다.

순두부가 다 되였을 때 그들은 두리반에 빙 둘러앉아 어머니가 사발에 철철 넘쳐나게 떠주는 순두부를 정신없이 퍼먹었다. 리정수는 눈이 시꺼매서 뜨끈한 순두부를 후후 불면서 맛스럽게 퍼먹었고 황득범은 사발채로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순두부물을 욕심스럽게 들이키기도 하고 숟가락질도 하였다.

고산녀는 가마목에 한 무릎을 세워짚고 앉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둘째아들 세천의 생각이 치밀어 얼굴빛이 캄캄해졌다.

잃어진 둘째에 대한 생각,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을 도려내는듯 한 참기 어려운 아픔이였으며 피를 말리우는 그리움이였다. 순두부를 다 먹고난 결의형제들은 세규를 따라 웃방으로 올라가 무엇인가 수군수군 의논하였다. 어머니는 인차 가마목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세옥이는 등불을 끄고 어머니곁에 한동안 누워있다가 움쭉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빠가 웃방으로 올라갈 때 망을 봐달라고 눈짓했기때문이다.

세옥이는 더운 방에서 밖으로 나왔는지라 얼굴이 시원해졌다. 그는 포대기를 쓰고 굴뚝께로 가 벽에 붙어서서 마을의 동정을 살폈다.

산기슭을 에돌아 촘촘히 들어앉은 집집의 방문들이 등불빛에 벌겋게 물들여졌다. 이집저집에서 밥투정을 하는 아이들의 칭얼대는 소리, 솥을 부시는 소리,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아낙네의 푸념질소리들이 들려왔다. 마을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고달픈 생활의 소음속에 잠겼고 행길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저 웃쪽 쯔루하라광업회사 출장소어방에서 웬 주정군이 불러넘기는 노래가락이 처량하게 들려올뿐이였다.

 

    석탄 백탄 타는데…

 

그래도 세옥이는 마음을 잠시도 늦추지 못하였다. 그는 집둘레를 한바퀴 돌아보고 와서도 나무가리나 울바자밑의 움침한 어둠속에서 밀정의 눈이 이쪽을 노려보는것 같아 눈이 점점 또릿해졌다. 그는 정신을 바싹 가다듬고 집주변을 살펴보는가 하면 바람에 지푸라기가 굴러가는 소리에도 귀를 강구었다.

세옥이는 이따금 방문옆으로 다가가 안에서 하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였다.

누구인가가 근심에 짓눌린 목소리로 지난해만하여도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면서 왜놈들을 족쳐대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근자에는 어디로 갔는지 그 소식조차 알수 없는데 왜놈들이 떠들어대는것처럼 괴멸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실패를 본것이 아닌가고 말하였다. 뒤따라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에서 왜놈들이 처처에서 유격대를 《토벌소탕》했다는 보도를 읽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하늘에서는 쪼각달이 시꺼먼 구름장들속을 헤염쳐가고있었다.

《유격대가 국경일대로 나와 총소리를 울릴 때엔 까투리처럼 대가리를 구겨박고 숨도 제대로 못 쉬던 형사, 순사나부랭이들이 요새는 제 세상이노란듯 돌아치며 사람잡이를 한단 말이요. 혜산, 갑산, 삼수, 여기 무산땅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소. 정말 가슴에서 불이 일어!》

황득범의 피타는 목소리였다.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따금 마른 기침소리가 났다.

이윽고 세규오빠의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련락선도 와닿지 않는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기긴 생긴것 같소. 이렇게 감감할수 없는데… 그러나 우리 혁명군이 〈괴멸〉이요, 뭐요 하고 떠벌이는 왜놈들의 악선전에는 침을 뱉아야 하오.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한두번만 들어왔소? 나는 지금 혁명군부대들이 저 만주땅깊이 들어가 어느 험산준령에서 왜놈들과 계속 싸우고있으리라고 믿소.

그런데 우리는 혁명군소식이 감감해진데다가 왜놈들의 체포소동이 심해지니 너나없이 좀 움츠러들었단 말이요.》

리정수의 격한 목소리가 울렸다.

《움츠러들구뭐구 모여앉으면 가슴만 앓았지 뭐 한게 있소? 중일전쟁이 터진후 왜놈들이 학생복단추까지 구리로 못 만들게 단속하는것만 봐도 얼마나 급해맞았는가 알수 있소. 태업만 잘 조직해도 저놈들한테 큰 타격을 줄수 있는데 어쩔지 모르고 움츠러들어… 젠장…》

갑자기 저 웃쪽 동광구쪽에서 사람들의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웬 아낙네의 가슴을 찢는듯한 통곡소리가 터져올랐다.

세옥의 눈에 끔찍스러운 참경이 비쳐들었다. 그는 화들화들 떨며 그쪽을 바라보다가 방문에 대고 소리쳤다.

《오빠!》

처녀의 어깨를 덮었던 포대기가 발밑에 흘러떨어졌다.

지세규와 그의 동무들이 문을 차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온 광산마을이 발칵 뒤집혀졌다.

밤일을 나간 광부들의 안해들이 종주먹을 부르쥐고 동광구쪽으로 정신없이 올리뛰였다. 뒤따라 광산마을의 모든 남정들과 아낙네들이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집에 혼자 남은 어린것들의 바스라지는 울음소리, 기겁한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이 수라장속에서 삽시간에 동갱마구리에서 락반사고로 6명의 광부들이 즉사했다는것이 사람들의 입과 입을 거쳐 알려졌다.

사고현장은 분명히 동갱이였다. 그러나 얼이 빠진 아낙네들은 그쪽으로만 달려가지 않고 다른 광구앞으로도 밀려가 남정들의 생사여부를 알아보자구 와글와글 끓어번졌다.

제정신이 아닌 아낙네들은 앞을 다투어 울음섞인 목소리로 혹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여기서는 무사해요?》

《쌍가매 아부지를 못봤소?》

《차돌이 애비는 일없어요?》

남편들의 안녕을 기원하여 부르짖는 녀인들의 목소리는 구슬프기 그지 없었다.

어떤 광구에서는 버럭밀차를 밀고나왔던 광부가 여기는 무사하니 모두 안심들 하고 돌아가라고 부드럽게 일러주는가 하면 다른 광구에서는 왜놈광구장이 녀인들앞에서 느물거리며 흰소리를 줴치는것이였다.

《어- 여기는 무사해. 남편이 그리도 중한가? 나라에 바친 남편이 제건줄로만 여기다간 황국신민이 못된다. 지금 제국은 전쟁에 들어갔다. 전쟁에서는 죽음이 있을수 있다. 여기도 전장이야. 돌아가라.》

사고현장인 동광구앞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되였다.

남정들과 아낙네들, 숱한 사람들이 밀려들어 붐비는 속에서 갱마구리에서 끌어내온 시체들을 붙잡고 고인의 안해들이 통곡하고있었다. 허물어져내린 암반에 짓눌렸던 피투성이 시체들은 어찌나 처참한지 누가 누구인지도 분간할수 없었다. 그러나 안해들은 인차 제 남편의 표적을 알아내여 정신없이 달려들어 시체들에 매달렸다. 어떤 녀인은 시체의 앞가슴을 잡아흔들며 목놓아우는가 하면 다른 녀인은 주먹으로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한 아낙네는 숨진 남편쪽에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시체옆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제 가슴을 박박 찢었다. 그래서 저고리고름이 다 떨어져나가고 치마조끼까지 찢어져 허연 젖가슴이 드러났는데도 부끄러운줄 몰랐다. 그러다가 풀어헤친 머리칼을 움켜잡고 캄캄한 밤하늘을 향해 얼굴을 젖히고 사람소리 같지 않은 야성으로 절규하였다.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한구들 둬두고 제혼자 가면 어찌오. 아이고- 눈이 새까만 저것들을 어떻게 먹여살리라오- 이게 무슨 세상이요. 하늘에 신령님이 계시면 나까지… 나까지… 저 새끼들까지 다 데려가주시오. 비나이다-》

한 아낙네는 실성한듯 두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쓸어만지며 다정한 목소리로 끝없는 이야기를 속삭였다.

《여보, 여보 내 잘못했소. 장쇠 아부지, 다시는… 내 다시는 술때메 싫은 소리 안할게 한번만… 한번만 눈을 뚸줘요. 이 못난게 밉구 싫어 아주 가버린대두 내 권하는 술 한잔만 마셔보구 가주. 웃는 얼굴로 권하는 술을 한번만 들어보구… 여보… 내 인차 남양집에 가 술을 꿔올게…》

아낙네는 움쭉 일어나 술 얻으러 가려는듯 둘러선 사람들속을 비집고 나가려고 하였다. 여러 남정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러자 아낙네는 주먹으로 앞가슴을 쾅쾅 치며 놓아달라고 소리쳤다.

빽빽이 들어서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속에서 녀인들의 흐느낌소리가 터져올랐다. 모두 그 아낙네의 정상이 기막혀 그리고 이런 참담한 운명이 래일에는 자기들한테도 덮씌워지리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에 그리도 슬피우는것이였다. 그러나 남정들의 얼굴에서는 눈물 한방울 찾아보기 어려웠다. 험하게 이그러진 광부들의 얼굴은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피진 눈들에서는 울분과 분노가 타끓었다. 그들은 입들을 꾹 다물고 시체들을 묵묵히 지켜보는것이였다. 무엇인가 엄청한 일이 터질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운에 공기마저 선뜩 얼어붙는듯 했다. 그 기운을 제일 날카롭게 느끼고있는것이 시꺼먼 광구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코수염 기른 왜놈광구장과 사무소에서 달려올라온 직원들이였다.

광구장놈은 얼굴빛이 표표해서 광부들과 그들의 아낙네들을 둘러보다가 손을 홱홱 저으며 곡마단구경거리도 아닌데 어서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광구앞에 둘러선 사람들은 성벽처럼 끄떡 움직이지 않고 시체들과 그옆에서 통곡하는 녀인들을 지켜보았다.

그놈은 부아가 터져올라 늘 메고다니는 렵총을 와락 벗어 하늘에 대고 공포를 쏘며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물러가라! 쏘기 전에 물러갓!》

그놈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설레이는 사람들속에서 황득범이 놈을 요정낼 기세로 욱 달려나가려는것을 지세규가 꽉 붙잡았다.

황득범은 이를 부드득 갈며 몸부림쳤다. 그의 눈에서 시퍼런 섬광이 펑끗거렸다.

세규는 함께 달려온 동무들을 이끌고 내려가고싶었으나 제일 가녁에 되는대로 눕혀놓은 임자없는 시체때문에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소년광부의 시체였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여 그 용모를 알아볼수 없고 팔다리는 모두 부러져 아무렇게나 늘어졌다. 아마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품팔이를 하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이 광산에 흘러들어왔을것이다. 세규는 어느 누구도 울어주거나 눈물을 뿌려주지도 않는 소년광부의 얼굴에 저고리라도 벗어 덮어주려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단추들을 끌렀다.

그러는데 웬 양복쟁이가 소년에게로 주춤주춤 다가섰다.

리하섭이였다.

세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단추를 끄르다 말고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지켜보았다.

리하섭은 소년의 시체옆에 웅크리고 앉아 책보만한 보자기를 툭툭 털어 얼굴에 덮어주고 거적때기우에 되는대로 던져진 팔다리를 바로잡아놓았다.

광부들이 시체들을 들것에 옮겨눕혀서 마을쪽으로 운반해내려갈 때 리하섭은 소년의 시체를 서슴없이 들쳐업고 담가행렬의 뒤를 따랐다. 내리드리운 소년의 다리가 넝마처럼 너덜거렸다.

머리를 풀어헤친 아낙네들이 담가채에 매달려 따라가며 탁 쉬여버린 목소리로 통곡하였다. 그 소리가 골짜기에 처량하게 메아리쳐 온 세상에 종말이 온듯 하였다.

이튿날 아침 지세규는 어수선한 기분으로 북갱에 올라갔다. 북갱은 그의 일터였다.

어둠침침한 광구가 사람들의 목숨을 마구 삼켜버리는 죽음의 아가리처럼 느껴지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광구앞에서는 황득범, 리정수를 비롯한 광부들이 일들어갈 차비도 별로 하지 않고 서성거리고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해보였다. 모두 지난밤의 참사에 대하여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황득범은 굵직하게 만 담배대를 입귀에 물고 간데라불을 손질하다가 세규에게 아침인사로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는 분명히 웃어보이려고 한것 같았으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볼편이 어색하게 씰룩거렸다.

리정수는 울기가 오른 얼굴로 세규에게로 다가왔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듯 그의 눈에는 피가 져있었다.

정수는 아침인사도 없이 손을 내저으며 기염을 토했다.

《우리 갱이 동광구보다 나은게 뭐요? 동발도 안 세우구 두더지처럼 파들어가기만 하는데 이건 그냥 덫밑으로 기여들어가는게란말이요. 젠장, 오늘 허물어져내릴지 래일 꽈르릉 할지 알게나 뭐요. 동발이나 세우구 일을 시키라고 하기요.》

그의 절규가 무엇을 호소하고있는지 불을 보듯 명백하였다.

파업! 지난밤 세규의 마음속에도 틀어쥔 주먹처럼 억세고 단호한 이 말이 거듭 떠올랐었다. 그러나 이 아침 력량이 준비되지 못한채 판을 벌렸다가 헛된 피만 흘리게 될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황득범이 담배를 안타깝게 들이빨다가 정수에게로 다가가 가래같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꾹 눌러주었다.

《여보게, 맘같아서는 저 사무소구 뭐구 다 짓모구싶네만 어찌겠나, 힘이 없으니 참아야지.》

《에익!》

정수는 화김에 제 가슴을 쾅 두드렸다.

세규는 간데라를 들고 말없이 광구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에 천근무게가 실렸다. 그의 뒤로 황득범이 따르고 다른 광부들도 줄레줄레 따라섰다. 정수는 머리를 떨구고 단숨을 몰아쉬다가 제일 마감에야 내키지 않는 걸음을 떼였다.

그들은 광구앞에서 약속이나 한듯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세규도 득범이도 정수도… 그들에게는 어느덧 갱으로 들어서기전에 그렇게 하는것이 습관으로 된것이였다.

어둠침침하고 습한 갱속에 들어서자 발자욱소리들이 저벅저벅 울렸다.

석수에 젖은 울퉁불퉁한 암벽들이 악몽속에서처럼 번들거리며 뒤로, 뒤로 흘러지나갔다. 굴천장이 점점 낮아져 사람들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엉기적엉기적 걸어나갔다. 수많은 주검을 내며 동맥을 찾아 뚫고들어간 굴은 미궁속과 같은 아득한 나락으로 경사져내리기도 하고 급하게 치달아오르기도 했다. 어디라없이 굴바닥은 석수가 흘러 질쩍거렸다. 악취를 풍기는 감탕물이 정갱이를 넘는데도 있었다. 썩은 동발목에서 풍기는 곰팡이냄새와 사람들의 땀이며 온갖 배설물들이 섞은 고약한 냄새가 뒤섞인 후끈한 공기때문에 숨쉬기가 가빠졌다. 갱이 바싹 좁아진 《오소리굴》구간에 이르자 그들은 무릎걸음으로 기여나갔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수가 목덜미며 얼굴로 줄줄이 흘러내렸다.

세규는 숨을 헐썩거리며 득범의 뒤를 따랐다.

저앞쪽 어둠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며 안깐힘을 쓰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앞에서 비켜달라는 절망적인 소리가 울렸다.

《오소리굴》을 따라 기여나가던 그들은 한쪽 암벽에 붙어섰다. 황득범이 간데라불을 내들고 저앞의 어둠속을 비쳐보더니 무엇을 봤는지 소스라쳐 놀라며 비껴섰다.

세규도 그를 따라 비켜섰다.

앞에서 네명의 광부가 거적때기에 둘둘 만것을 끌어내오고있었다. 사람의 시체가 분명했다. 그들은 무릎걸음을 치며 거적때기의 터슬터슬한 가녁을 움켜잡고 앞으로 잡아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하였다. 그들이 끙끙 힘을 쓸 때마다 시체가 앞으로 무겁게 끌려나왔다. 땀내와 피비린내가 《오소리굴》에 가득찼다.

황득범이 물었다.

《이게 누구여?》

《전라도 홀애비요.》

《뭐?》

《천장에서 바위돌이 떨어져서 정수리를 짓모았소. 돈을 벌면 고향으로 간다고 늘 말하더니 에익, 이젠 편안히 됐지.》

《어허- 기막힌 일두!》

세규는 다가오는 시체를 지켜보았다. 무슨 보자기같은것으로 꽁꽁 싸맨 머리가 둘둘 만 거적때기밖으로 약간 내밀었는데 그것이 딴딴하지 않고 흐물흐물해보였다. 그리고 뒤쪽에서는 종다리가 거적밖으로 드러났는데 시체가 움직일 때마다 그것들이 되는대로 너덜거렸다.

세규는 그 거적송장이 지푸라기같은 터슬터슬한것으로 다리를 쓸어만지며 자기앞을 지나갈 때 암벽에 붙어서 숨도 쉬지 못하였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었다. 이윽고 세규는 얼굴로 줄줄이 흘러내리는 석수물을 훔치고는 다시 기여나갔다.

저앞 어둠속에서 누구인가 황소의 울음같은 소리로 노래를 떼기 시작하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피눈물이 푹 배인 목소리이다. 지나친 절망끝에 얼이 빠져 부르는 노래같기도 하다.

세규는 어둠속에서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몸부림쳤다.

(이러다간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겠다.…)

그는 머리와 어깨를 암벽에 짓쫏기도 하면서 오소리굴로 점점 깊이 기여들어갔다. 앞에서는 황득범이 가고 뒤에서는 리정수가 따라왔다. 그들은 가슴속에 터져오르는 증오와 원한과 오열을 씹어삼키며 묵묵히 기여들어갔다. 어둠속으로, 어둠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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