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6

 

강준호는 자리에 누운채 잡지의 기사를 읽고있었다. 새해에 들어와 개헌세력과 호헌세력사이에 보다 격렬해질 싸움을 예고하는 기사들이였다. 자기가 구류되여있던 기간에도 독재자들은 민청학련을 비롯한 많은 진보단체들을 《공산혁명을 위한 지하조직》으로 몰아붙이면서 이들이 《국가반란》과 《내란음모》를 기도하였다는 터무니없는 감투를 들씌워 류혈적으로 탄압하였다.

《유신》독재는 강력한 반항을 낳고있었다.

온 남녘땅에서 일제히 벌어진 청년학생들의 4.3투쟁, 울산조선소 로동자들의 폭동…

또 한가지 그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사변은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결성이였다.

이 단체는 재야의 정계뿐아니라 학계, 법조계, 문화언론계, 종교계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의 발기로 결성된 각당, 각파의 련합체였다.

반《유신》과 민주회복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발전시키며 대《정부》투쟁에서 민주세력간에 행동통일의 폭을 종전보다 훨씬 넓힌것이 강준호의 흥미를 자아냈다.

이제 력사는 어떻게 흐를것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강준호는 스적스적 창문가로 다가갔다.

겨울이여서인지 초저녁인데도 어둠이 짙게 비껴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눈앞에 어려왔다.

별무리들중에 유난한 빛을 뿌리는 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그러던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미 있던 별들이 자취를 감추고 대신 새로운 별들이 자태를 드러내고있었다.

창문을 향해 바싹 다가붙었다. 산뜩한 느낌이 피부에 닿았다.

《저 별들은…》 하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뇌이였다. 그는 별들을 개헌운동의 지도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비교해보았다.

강준호는 석방되여 나온 후 불편한 몸임에도 줄곧 이제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자기 생명이 다해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석방이후 혜정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심란한 기색이 되여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던 혜정은 그가 거듭 간청을 해서야 심근경색말기라는것을 알려주었다.

잘하면 1년을 더 살수 있다고 한다. 눈앞이 아뜩해졌다.

인생이란 얼마나 허망한것인가. 겨레를 위해 한생을 살아왔다지만 이룬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수십년전에 곁을 떠나간 의형제를 맺은 친구이자 성옥의 아버지인 윤세의 목소리였다.

《어차피 자네들도 내뒤를 따라오겠지. 하지만 그냥은 올 생각말게. 내 물어볼테야. 넌 지상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강준호는 기운을 내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명의 매 순간을 새로운 시작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의 상념을 깨치며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싸늘한 랭기가 확 몰려들었다. 한 사나이의 검은 형체가 작은 문을 가리우며 서있었다. 불을 켜자 외투깃사이에 들어박힌 깡마른 얼굴이 확 드러났다.

그는 서병호였다.

《강선생,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문앞에 서있던 사나이가 한발 앞으로 다가들었다.

《서병호입니다.》

《아, 당신이였구려. 그런데 국장나리께서 어떻게 우리 집에 다 오셨소?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합디까?》

강준호는 자기 집 맞은켠을 가리켰다. 어둠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그쪽에 양철로 지은 가옥이 있었다. 요시찰인물을 감시할 소임을 지닌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어있는 집이였다.

《섭섭하군요. 제가 선생을 되게 핍박한적은 없다고 보는데요. 나도 의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앞을 지나다가 여기에 선생이 살고있다는 생각이 나기에 좀 들린겁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서 인정이 헤퍼지는가 봅니다.》

《손님으로 왔다면 박대하진 않겠소. 들어오시오.》

서병호는 밖을 향해 손시늉을 해보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묵직해보이는 지함을 들여온 사나이들이 거기에서 술과 안주를 꺼내놓았다.

《강선생, 우리가 이렇게 마주앉아본지도 퍽 오랬군요. 생각해보면 감개가 무량합니다.》

《피차일반이요. 당신을 보니 사람의 앞길이란 예측할수 없는것이라는 생각이 드오.》

서병호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강준호앞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하겠노라며 다짐하던 때가 떠오른듯싶었다.

《난 가끔 선생이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좀 고통스러울 때는 있어도 선한 일만 하고계시니 마음은 편하겠지요. 또 아무 권력도 가진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난 선생의 앞날에 대해서 내다본바가 있었습니다.》

《그것 참 대단하구려. 하긴 뭐 이상할것도 없지. 직업이 그런거니까.》

《하긴 그렇습니다. 제가 불쾌할수도 있지만 리해해주십시오. 그래도 전 선생의 신상에 대해 많이 왼심을 쓴답니다.》

《고맙소. 뿐더러 영광이요. 중앙정보부의 보호를 받는다니 말이요.》

서병호는 상대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강준호가 왜인들에게 붙어먹던자들을 몹시 경멸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박정희라는 인물을 아예 사람취급조차 안하는것도 왜왕에게 충성을 서약한자가 뻔뻔스럽게 《대통령》감투를 쓰고있다는 그때문이였다.

분을 삭이려는듯 서병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기도 했지만 자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였다.

그는 밥상머리를 슬슬 쓸어만지며 살뜰한 어조로 물었다.

《몹시 앓으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좀 어떻습니까? 나도 나이가 드니 가끔 저승이 지척이라는 생각이 들군 합니다. 건강에 각별히 류의하셔야겠습니다.》

서병호는 강준호의 잔에 술을 부었다.

《어서 듭시다. 옛적에 엄석씨의 집에서 선생과 술을 마시던 생각이 나는구만요. 선생의 술실력이 대단했더랬지요. 난 그때 선생과 함께 일해보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서로 다르게 흘렀지요. 내가 일생에 제일 아쉽게 생각하는건 선생 같은분과 함께 일해보지 못한겁니다.》

술 한잔을 단숨에 들이킨 서병호는 한숨을 꺼지게 내쉬며 괴로운 인상을 지었다.

《나는 때로 자기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심한 회의를 느끼군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했던가고 자문해봅니다. 쉽게는 대답하기 힘든 철학적질문이 아닐수 없지요. 그 물음은 나를 구슬픈 허무의 시궁창에 사정없이 처박군 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저도 민족을 위해, 인간을 위해, 정의를 위해 살자고 마음먹은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선생과 운명을 함께 할수 없었던것은 나름의 신조가 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5.16과 유신을 온몸이 방패가 되여 옹호해나선것도 실은 그때문이였습니다.》

서병호는 말을 끊고 강준호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그가 자기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그것이 한갖 자기 위안이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론 모든것을 걷어치우고 초야에 묻혀 살고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원망을 받으면서도 륙진을 개척하여 국경의 안정을 이룩한 김종서장군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대를 사는 인간의 사명이 어디에 있는가 고민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생존하자면 거국일치하여 안보를 지키고 경제중흥에 힘써야 합니다. 허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야당과 재야세력들, 대학생들과 백성들은 타성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고집하고있습니다. 국제정세가 어떻게 흐르든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쳐오든 전혀 관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어 어떤자들은 과격한 언동을 일삼으면서 용공리적행위도 서슴지 않고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정체를 감춘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부지리를 줄뿐입니다.》

서병호는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다음말을 생각해보았다. 지금이 중요한 대목이였다. 그가 찾아온 진짜목적은 동호에 대한 강준호의 태도와 그들이 현재 어떤 관계를 맺고있지 않는가를 타진하는데 있었다.

《혹시 강선생은 동호라는 청년을 아시는지요?》

서병호는 포크로 자기앞의 안주를 찌르며 물었다.

《아오. 우리 집에 자주 다니군 했지.》

《저도 그를 좀 아는데 참 아까운 청년이더군요. 헌데 젊은 혈기에 무분별한 운동에 뛰여들었습니다. 분명 뒤에서 사촉한자가 있었습니다. 간첩단이 그에게 손을 댔을겁니다. 내 눈은 못 속입니다. 실지 그 증거가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문제인가를 아실겁니다. 그런데 어제, 놀라지 마십시오. 어제 동호가 강선생을 만나 어떤 편지를 전달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강준호는 피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국장, 각본은 미끈한데 지내 비약했소.》

강준호를 살펴보던 서병호는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는 직업적인 륙감과 상대방의 표정을 통해 그들간에 자기가 우려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어떤 사건이든 비약한것처럼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서병호는 아리숭한 한마디를 던지고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저도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생을 믿기때문입니다. 말이 빗나가는것 같군요. 그 이야기는 이만합시다. 선생에게 긴히 알려줄것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공식적으로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에서는 선생에게 사회통합을 주관하는 어떤 자문단체장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성격의 관직 같은것을 하나 권하려는것 같습니다. 선생 같은분들과 계속 엇서는것이 불편하기도 하겠지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선생이 유익한 일을 더 많이 할수 있는 기회가 될수 있다고 봅니다.

혹 지조인으로서 력사의 평가라는걸 생각하실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케네디대통령을 도와 정부에 참여한 하바드대학의 교수들이나 드골정권의 문교상이 된 프랑스작가 앙드레 말로를 보십시오. 그들을 변절자로 악평하는 사람은 없는줄로 압니다. 그외에도 세계에는 재야의 지식인으로 출발하여 성공한 정치인들이 많다고 저는 알고있습니다.》

《서국장,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요. 그들이 자기 체면을 유지할수 있은것은 정부에 참여해서도 자기 소신을 어느 정도 지킬수 있었기때문이요.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 말이요. 프랑스에서 드골이 나치스협력자들을 처벌하고있을 때 이 땅에선 김구선생이 암살당했소. 리승만이 친일분자들을 정권에 끌어들인 후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이 처형되였소? 하지만 현 집권자는 선임자를 훨씬 릉가하는 죄인이요. 그러니 내 어찌 그들과 손잡을수 있겠소?》

《섭섭하긴 하지만 리해는 됩니다. 인생의 사연이 인생의 진로를 만드는것이니까요. 그야 어쩔수 없지요. 헌데 살아보느라니 사람이 말년에 이르면 천국에 가까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전 종교신자는 아닙니다만 요즘 자주 용서와 화해라는 말을 생각해보군 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있다면 용서를 청하며 모든 사람들과의 화해속에 눈을 감고싶어진단 말입니다. 하물며 선생이야 큰 경륜을 지니고 살아오신분이 아닙니까. 제 마음을 받아주시는셈 치고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공직을 맡으실수 없다면 하다못해 공로상이라든가 년금이라도 드리고싶습니다.》

《공로상이라?》

강준호는 껄껄 웃었다.

《당신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요. 정보부가 상을 준단 말이지. 참 덕망이 높으시오.》

서병호는 제손으로 잔에 가득히 술을 붓고 단숨에 들이켰다.

《흥분하셨군요. 하지만 신중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우리 정부를 그토록 혐오할 리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서 말해봅시다. 선생은 우리를 역적이요 뭐요 하고 비난하고싶겠지요? 그렇지만 력사는 우리를 리해해줄겁니다. 선생이나 나나 우리 세대에게는 뼈에 사무치는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사실말입니다. 그때 일본의 지배는 필연적이였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유미렬강의 동방정복이 본격화되자 아시아에서는 동양평화론이 류행했습니다. 조선과 일본, 중국이 힘을 합쳐 유미렬강의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거지요. 하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방문명을 받아들여 강자로 등장한 일본은 이 어리석음을 비웃듯 서방과 경쟁적으로 식민지쟁탈의 각축전장에 뛰여들었습니다. 너절하게 같은 아시아나라들의 령토를 침략하면서 서방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구원하는 성전이라고 자국민들을 기만했지요. 결국 아시아는 일본의 야망으로 무참한 피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후진아시아의 운명이였습니다. 아시아는 모든것을 재구축해야 합니다. 주변국가들이 급속히 체제를 일신하고 새롭게 재건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새로운 세계체제속에서 생존하자면 빨리 전근대적인 락후성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에 의거해서 국정을 이끄는것은 이런 의지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합니다. 로마의 철학가인 세네카는 말했습니다. <운명은 희망하는자는 데리고 가며 희망하지 않는자는 끌고 간다.>》

제 말에 스스로 만족하여 그냥 내리엮던 서병호는 강준호의 경멸하는듯 한 눈빛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서국장, 궤변이요. 당신은 자신을 기만하고있소. 인간은 목장의 짐승이 아니요. 일찌기 루쏘는 행복한 인간사회건설을 위해서는 미덕을 향한 열망에 기초한 의지적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바 있소.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설사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도 행복은 마련될수 없는거요. 더우기 우리는 국토가 량분된 상태에 처해있소. 당신들의 이른바 민족중흥이 과연 진정으로 민족의 복리를 위한것인가? 이는 량심적으로 생각해볼 문제라고 보오. 정치로선이란것이 동족과의 대결, 민중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유하는데 목적을 둔것이라면 그 정부는 심판을 받아야 하오. 정치인이라면 민족과 민중의 운명을 두고 가슴아프게 여길줄 알아야 하는거요.》

《이야기가 잘 안되는데요. 선생은 어쩔수 없군요.》

서병호는 강준호에게 다시 술을 권하였다.

《그만하겠소.》

《건강이 과히 좋지 못하군요. 한잔도 못하시다니요?》

저 혼자 술을 마신 후 주위를 둘러보던 서병호의 눈에 《너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고 쓴 액자가 비껴들었다. 김옥균의 휘호를 모방한 액자였다. 오래전에 강준호를 따르는 청년들이 그에게 선물한것이였다.

서병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매력적이면서도 당돌해보이는 처녀가 방안에 들어섰다.

성옥이였다. 퇴근길에 어머니의 병원에 들렸다가 강준호에게 전해주라는 약을 가지고 오는 길이였다.

《강준호선생의 변호인이 왔구만.》

서병호가 알은체를 하며 자기를 소개하였다.

성옥의 얼굴에 일순 긴장한 빛이 스쳐갔다.

《걱정하지 마시오. 난 오랜 친지분과 회포를 나누던 참이요. 지금도 법정을 휘젓고있는가요? 그 제노라 하는 판, 검사들이 당신 같은 젊은아가씨앞에서 쩔쩔매는 모양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소.》

성옥의 변호활동에 대해 자상히 알고있는 서병호였으나 짐짓 모르쇠하며 태연하게 주어섬겼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철창속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고있는것을 생각하면 전혀 즐겁지 못합니다.》

《그래,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이요. 법무부가 무법부라는 소릴 듣고있소. 이제는 력사도 어지간한데 어째서 아직 원시적법적용이 그치지 않는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요. 민주국가의 징표는 법치주의이며 법정은 국가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요.》

《그런데 아직도 법정이 국민의 합법적인 정치활동의 권리를 억누르는 공간으로 되고있다는것은 개탄할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때문에 변호사선생은 긍지를 가져야 하오. 닭이 알을 품는건 껍질속의 병아리를 깨우기 위해서요. 그런데 그것이 병아리자체의 성장이 결합되여야 가능한것처럼 미개상태의 법체제도 선생 같은 법조인들의 노력이 있고서야 개선의 전망이 보이는게 아니겠소.》

《과찬의 말씀입니다.》

서병호는 음충맞은 웃음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강준호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섰다.

성옥이 그를 바래주었다.

외투를 걸치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서병호는 성옥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선생을 잘 돌봐드리오. 병보석이란걸 명심하시오. 그게 문제요. 강선생이 여생을 편히 지내자면 변호사선생과 같은 리지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의 방조가 꼭 필요할거요. 내 말뜻을 알겠소?》

그의 입가에 진지한 어조와는 판판 다른 랭소가 비껴있었지만 성옥은 그것을 감촉할수 없었다.

서병호는 부하들과 함께 집앞에 세워둔 승용차에 올랐다. 차는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어둠속으로 내달렸다. 언덕을 핥으며 내려온 스산한 바람소리가 그뒤를 따랐다.

마당가에 서서 멀리 사라져가는 차의 불빛을 바라보며 성옥은 서병호가 찾아온 진짜목적이 무엇이였겠는가 생각해보았다.

《서국장이 동호에 대해서 묻더구나. 아마 저 사람들이 내가 동호와 련계를 가지고있지 않는가 타진해보려고 왔던것 같다.》

등뒤에서 강준호의 근심어린 목소리가 울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성옥은 놀랐다. 역시 강준호다운 예리하고 정확한 판단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동호에게 다가들고있는 위험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과거보다 더 가혹한 보복이 가해질것이다. 성옥은 그에게 무엇인가 방조를 주어야 하지 않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머리를 짜보면 그를 도울수 있는 여러가지 방도들이 나질것 같았다.

동호의 태연히 웃는 얼굴이 어두운 밤하늘가에 어리여왔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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