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1 편

제 5 장

1

 

1995년 새해 첫아침 텔레비죤에서는 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해인 1994년에 하신 신년사가 방영되였다. 박송봉은 울면서 신년사를 청취하였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중대보도가 울려퍼지던 7월의 나날들이 떠올랐다. 새벽녘에 무엇에 끌리운듯 그이의 집무실로 달려갔었다. 그런데 문이 열려있었다. 집무실은 언제부터 비여있은듯 열려진 문사이로 불빛 한점 새여나오지 않았다.

김정일동지의 방에 아직도 불빛이 있소?》

때없이 문의하시던 수령님의 음성이 들려오는것만 같아 박송봉은 흠칫 몸을 떨었다. 이 방에 불이 꺼져서는 안된다, 수령님께서 돌아오시다가 불이 꺼진 창문을 보시면 걱정하실게 아닌가!…

박송봉은 거의 환각상태에 빠져들었다. 무슨 정신에 문을 열고 들어섰던지 그리고 어떻게 스위치를 찾아 헤매였던지…

갑자기 어둠속에서 그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불을 켜지 마시오.》

순간 번개불이 펑끗했다. 박송봉은 비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걸치신채 창가에 서계시는 그이를 뵈왔다. 아니, 느끼였다.

《미안하오, 혼자 있고싶었소. 나까지 눈물을 보이면 인민들의 마음이 약해질가봐… 혼자 조용히 수령님을 추억하고싶었소.》

눈물마저 마음놓고 흘리실수 없는 그이!

박송봉은 오열이 북받쳐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부터 박송봉은 자기 부문에 주신 수령님의 유훈을 분류별로, 건별로 기록해놓은 종이접이를 늘 품고다니며 아래 일군들을 신칙하고 계발시키느라 집에서 잠을 자본지가 아득했다.

어제 그는 수령님을 잃고 처음으로 맞는 4월 15일에 즈음한 행사에 참가하고 밤늦게 집에 들렸다. 그런데 부름종소리만 듣고도 그가 왔다는것을 알고 달려나오던 안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가 나왔다. 그때에야 순환기질병으로 늘 고생하던 안해가 며칠전에 병원에 실려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언제 입원했냐?》

《사흘전입니다.》

《무슨 다른 말은 없었느냐?》

《아버지한테는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운전사와 한참 수군수군하더니 차에다 면회물자를 실어놓았다. 안해가 입원해있다는 병원가까이를 지나갈 때 운전사가 자꾸만 곁눈질하는것을 못 본체하고 련하기계로 내처 달려왔다. 수령님의 생전에 CNC공작기계를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은 이곳 종업원들의 가슴에도 한으로 남아있었다.

박송봉은 생산현장부터 돌아보았다

하모니카모양의 길고 폭이 좁은 공간에는 좌우벽을 따라 새로 만든 줄방전가공반이며 각종 정밀기계들이 늘어서있었다. 좀더 가느라니 외바라지를 낸 크지 않은 휴계실이 한칸 있었다.

《어디 갈것없이 여기서 이야기하는게 어떻소?》

박송봉이 따라선 사람들에게 물었다.

새로 온 지배인과 김경조, 리정은 창문아래 자리를 잡았고 온덕수와 어깨를 어기치고 앉은 최수광은 퍼리끼레한 양말목이 자꾸만 흘러내리는것 같아서 그것을 손으로 감싸쥐고있었다.

박송봉은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수령님께서 지난해 7월 6일에 주신 유훈이요.》

벌써부터 목이 메여왔다. 그러나 애써 감정을 누르며 밑줄을 그은 부분들만 따라가면서 전달하였다.

《무엇보다도 전력문제를 빨리 풀어야 하겠습니다. 전력은 철도운수와 함께 인민경제의 선행관입니다. 전력생산을 앞세워 전기를 넉넉히 대주어야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시 생산을 정상화할수 있습니다.…》

그는 돋보기도 없이 읽었는데 사실은 다 외우고있었다.

《선박공업부문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선박공업부를 내온지 오래되였지만 그동안 나라의 선박공업이 별로 발전한것이 없습니다. 내가 선박공업부에 큰 짐배를 100척 무을데 대한 과업을 준지 여러해 되였으나 아직 그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모두가 부어낸 쇠덩이들처럼 묵묵히 앉아있었다.

《지금 선박공업부문에서는 몇년내로 수령님의 교시를 기어이 관철하자고 불이 붙었소. 그런데 제일 걸리고있는것이 바로 기관생산이요. 정밀가공설비들이 모자라서 애를 먹고있단 말이요.》

박송봉은 다음말이 쉽게 나가지 않아 그쯤 두리뭉실하게 꼬리를 죽여놓고는 《내 말뜻을 알만 하오?》 하고 물었다.

《우리 줄방전가공반을 내주자는 말씀입니까?》

김경조가 그의 요구를 명백히 하였다.

《강요하는건 아니요, 호소하오. 우리가 수령님을 잘 모시지 못한것만 해도 그 죄를 헤아릴수가 없는데 이제 또… 그 유훈을 관철하지 못한다면 하늘아래 머리를 들지 못할거요. 설비는 배무이과업을 수행하는 동안만 이관하는것으로 합시다.》

김경조가 일어섰다.

《그러지 않아도 수령님 생전에 드릴수 있는 기쁨을 드리지 못한것 같아 한이 됩니다. 론하고말고 할게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하루빨리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고봐야지요.》

《리정동무는 할말이 없소? 앉아서 이야기하오.》

리정은 한쪽무릎을 박은채 박송봉을 바라보았다.

《늦게나마 수령님께 드리는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고맙소. 동무들, 고맙소!》

박송봉은 진정으로 인사를 하고싶었다. 당분간이라고는 하지만 속으로야 얼마나 아쉽겠는가.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련하기계의 전재산과도 같은 설비들을 내놓은것이리라.…

박송봉은 사흘후 설비를 인계받으러 자기가 직접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갔다. 공장에서는 이날부터 이관준비를 서둘렀다. 밤작업을 할때면 의례 있군 하던 장현국의 걸죽한 롱담도, 흥타령도 없었다. 정작 설비를 내주자니 마음들이 별내졌던것이다.

사흘후 공장사람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설비가 실려나갔다.

리정은 나도 떠날 때가 됐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야지 돌아가서 할일은 또 얼마나 많을텐가.

그러다가 문득 공장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리정은 공장대학 등교시간을 기다려 정림이를 만났다. 마침 효은이도 곁에 있었다. 공장에 찾아오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처녀꼴이 다 잡혔다. 첫 상봉의 인연이 있어서인지 그는 정림이를 몹시 따랐다. 지금은 둘다 공장대학에서 공부하고있었다.

《정림이, 래일 영화구경가지 않겠나?》

다음날은 공장휴식일이였다.

《영화요? 형님이 오늘 별스러운데?》

《별스럽긴, 읍에 새 영화가 들어왔다는데 효은이도 같이 가자.》

《야! 좋네.》 효은이가 먼저 환성을 질렀다.

정림이도 싫지 않은지 얼굴에 웃음이 벙글거렸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셋이서 읍으로 떠났다. 효은이는 흰 물방울무늬가 다문다문 박힌 달린옷을 입고 나섰다. 처녀의 몸에서는 싱싱한 젊음이 약동했다. 그는 물살 세찬 산골개울에서 자유로이 갈개며 자라난 등이 푸른 물고기처럼 생신하고 깨끗했다.

영화관에서 표를 석장 샀다.

리정은 정림이와 효은이에게 좌석번호가 나란히 찍혀있는 표를 나눠주면서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으라고 하였다.

《인차 들어오지요?》

《응, 그래.》

리정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영화관앞에 꾸려진 소공원으로 갔다. 긴의자에 앉았다. 그의 집에 걸려있는 그림에서처럼 무성하게 자란 은행나무가 넓다랗게 그늘을 던져주고있었다.

리정은 이곳에 영화관람을 오는 사람들을 위해 네거리사진관 사진사가 이동봉사를 나온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넓은 채양모자를 쓰고 목에다 사진기를 건 녀인이 나타났다. 몸이 굉장히 좋은 녀인은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있었다.

목에 건 사진기끈은 살에 푹 박혀 보이지 않았다.

《수고하십니다. 사진을 한장 찍어야겠는데요.》

《아유, 숨이나 좀 돌리고 봅시다. 내 이 비만증때문에…》

녀인은 리정이 앉았던 긴의자에 물러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독사진을 찍으시려고요?》

《아니, 내가 아닙니다. 이제 저 영화관에서 나옵니다.》

《영화관에서요?》

《이제 저 출입구로 달린옷을 입은 처녀와 안경을 낀 총각이 한쌍 나오는데 미리 초점을 맞추고있다가 제꺽 찍어주십시오. 좋기는 그들이 눈치를 채기 전에, 생활적으로 말입니다.》

《호호, 이건 뭐 탐정사진이라도 찍으시는건가요?》

《둘이 서서 찍으라고 하면 어색해할것 같아 그럽니다.》

《사진사 20년에 별난 사진을 다 찍게 되누만요.》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리정이 생각했던대로 정림이와 효은이는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계단에 서서 리정을 찾느라고 한동안 두리번거렸다.

그때 사진사가 샤타를 눌렀다.

《정림이! 여기야, 여기!》

정림은 달려오자바람에 왜 들어오지 않았는가고 야단이였다. 리정은 갑자기 대답이 급해서 《응, 여기 오래간만에 사진사아주머니를 만났기에 얘기를 좀 하느라고…》 하고 둘러쳤다.

《자, 이 표를 건사하라구.》

《무슨 표게요?》

《사진표야. 이자 둘이 영화관에서 나오는걸 찍었지.》

그러자 효은이가 막 야단했다. 사진을 찍은 그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보기 흉하게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것도 기념이지. 찾는건 정림이가 찾으라구.》

그날 점심은 국수집에서 크림까지 받쳐서 먹었다.

돌아오는 길이 더 즐거웠다. 정림이와 효은이에게 떠나간다는 말은 차마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리정은 이틀후에 떠났다. 새벽에 조용히 떠났다.

김경조와 온덕수가 공장밖까지 따라나와 그를 바래워주었다.

다만 한사람에게만은 솔직해야 했는데 다름아닌 합숙관리원이였다. 리정에게서 호실열쇠를 받아들 때 녀인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래, 작별이다. 문열고 들어서면 회칠을 한 천정에 목이 꼭 끼운 전등알이 먼저 보이고 장판안료를 바른 두칸짜리 신발장이 어느때나 기다리던 방, 도금이 벗겨진 시계추가 뚝딱뚝딱 시간을 세여가고 소박한 미학관을 가진 합숙녀인이 달력에서 오려낸 그림들을 벽장에 붙여놓은 집, 거기서 10분이면 가닿던 나의 공장!…

나의 공장이라구?! 아니다. 그것은 벽장에 오려붙인 그림처럼 들여다볼수는 있으되 그가 직접 들어설수는 없는 그런것이였다. 그는 다만 동원된 연구사였다. 외견상 들어와있기는 했지만 그 《그림》속에만은 영원히 들어설수 없는 그런 사람이였다.

녀인이 비음이 콱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주 오시라요. 에그, 정이라는게 참…》

그들은 공장밖 아카시아나무가 늘어선 길에서 작별했다.

얇은 봄외투를 걸친 리정의 모습은 별로 추워보였다.

《이거라도 두르고 가지요.》

온덕수가 자기 목도리를 벗어주려고 하였다.

《괜찮습니다. 이 날씨에 목도리는 무슨…》

김경조가 먼저 닁큼 리정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작별하기요. 리별이 아니라 작별이요. 》

《예, 또 만나게 되겠지요.》

리정을 뒤좌석에 태운 김경조의 승용차가 먼 어데선가 때아닌 쥐불놓이를 한듯 가물가물 떠도는 연기발을 헤치며 달려갔다. 길녘 아카시아나무에 반쯤 헐리운 새둥지가 걸려있는것이 보였다.

(저것들도 다 떠나갔는가?)

제동이 걸리면서 몸이 앞으로 콱 쏠렸다. 차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림이와 효은이였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선 리정은 마주 달려오는 정림이를 두팔로 꽉 그러안았다.

잦고 후더운 입김이 그의 목덜미로 날아들었다.

《이렇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요?》

《미안하다. 일이 그렇게 됐구나.》

리정은 효은에게로 돌아섰다.

《저… 평양 가면 우리 집에 가보셔요.》

《그래, 가보지.》

《이건 우리가 준비한건데 기념으로 받으시라요.》

정림이가 종이로 몇겹 싼 길고 얄팍한 물건을 내놓았다.

리정은 차에 올라 그것을 펼쳐보았다.

포장지를 두겹 벗기니 《련하기계》라고 쓴 낯익은 상표가 나졌다. 줄방전가공반으로 글자를 따내고 도금까지 입힌 금속상표가 차창으로 흘러드는 해빛을 번쩍번쩍 반사시키고있었다.

리정은 입속으로 가만히 외워보았다. 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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