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1 편

제 5 장

2

 

련하기계에서 넘겨받은 설비들을 선박수리공장에 이관하고 련동시험까지 끝냈을 때 박송봉은 장군님께서 걸어오신 전화를 받았다.

《박송봉동무, 지금 당장 나에게로 오시오.》

차를 달리는 동안에도 그이의 쇠소리가 섞인듯 한 음성이 먼 폭풍소리처럼 그냥 귀가에 맴돌았다. 박송봉이 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한것은 낮고동이 울릴무렵이였다. 대기실에서 시계를 들여다보며 기다리고있던 일군이 그이의 분부가 계셨다면서 박송봉을 안내하였다. 복도를 따라가다가 계단을 등지고 방향을 꺾자 살림방만 한 홀이 나졌다. 정면에 목란꽃부각을 한 밤색문이 보였다.

《이곳에 계시오?》

《예, 벌써 반시간이 지났습니다.》

문은 한뽐가량 열려있었다. 옷매무시를 바로잡고 막 문을 당기던 박송봉은 전기에라도 감전된것처럼 흠칫 손을 가드라뜨렸다.

무겁게 거닐고계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뵈왔던것이다.

회의실안이였다. 그것도 그저 회의실인것이 아니라 수령님께서 지난 7월 6일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신 바로 그 회의실이였다.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그때처럼 좌우벽에는 지도가 걸려있었고 화분에서는 청청한 종려죽이 아름을 크게 잡고 자라고있었다. 그때와 다른것이 있다면 고요뿐…

그이의 음성조차 나직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이께서 열려진 문을 손수 닫으시였다.

《그럼 말해보시오. 련하기계를 어떻게 했다구?》

《실은… 선박공업부에서 당장 배무이를 해야겠는데 기관생산이 걸렸다고 제기해오기에 련하기계동무들과 토론을 하고…》

《토론을 했다고?》

그이의 음성은 흥분으로 하여 떨리시였다.

수령님의 유훈관철을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했겠는데 누가 반대하겠소. 섭섭하오. 다름아닌 동무가 어쩌면 그럴수 있소? 자, 여기 이 문건들을 좀 보시오. 어서 읽어보시오!》

그이께서는 가까운 탁자에서 손이 가닿는대로 몇개의 문건을 그에게 집어주시였다. 영문을 모르고 받아읽던 박송봉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문건들은 모두 1994년 7월 6일에 하신 수령님의 유훈과 관련되는것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당장 원유발전소를 건설하겠으니 타빈제작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를 확보할수 있게 자금을 수백만외화단위나 배려해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한두해사이에 복선철길을 늘이겠다고 손을 내밀고있었다.

《너무해.…》 하고 그이께서는 조용히 뇌이시였다.

《너무하단 말이요. 난 사실 이 문건들을 받아보았을 때까지도 이다지 가슴아프지는 않았댔소. 그 몇몇 사람들이 기우뚱거린다 해도 내곁에는 연형묵이, 박송봉이 이런 굵직한 사람들이 억척같이 서있다고 믿었기때문이요. 그런데 동무는 사람의 믿음에 어쩌면 이렇게까지 아픈 상처를 낼수 있는가? 어디 좀 말해보시오.》

장군님! 제가 그만…》

박송봉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련하는 지금 요람에 앉혀놓고 잠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아기요. 우리가 걸음마를 떼주고 밥술을 떠먹이면서 품에 껴안고 키워야 할 옥동자란 말이요. 련하의 보호자는 나요, 김정일이요!》

련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것을 분명히 자신의 피줄과 련결된 생명체로 생각하고계시였다. 그이와 뜻을 같이한다는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마음을 아는것이다.

기뻐하시는것, 아파하시는것, 바라시는것, 꿈꾸시는것, 지어 감추고계시는것까지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이와 한피줄을 잇고 한심장의 피를 받으며 사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수 있다.

《동무들이 수령님께서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교시만을 유훈으로 생각하는것은 잘못된것이요. 내가 기록영화〈위대한 생애의 1994년〉에 수령님의 육성록음을 수록하려고 다시 들어봤는데 그 교시에는 앞으로 전망적으로 집행해야 할 과업들이 제시되여있었소. 하지만 당중앙위원회 제6기 21차전원회의에서 하신 교시는 우리가 당면하게 집행해야 할 유훈이요. 동문 그 교시의 골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인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인민이요.》 그이께서는 긍정하시였다. 《그런데 지금처럼 일을 망탕하면서 당의 혁명적경제전략관철에 혼란을 조성한다면 수령님의 권위는 물론 사회주의도 고수할수 없게 되오.》

조용히 문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책임서기였다.

그는 잠시 문가에 서있다가 약간 숙인 자세로 다가왔다.

장군님,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성원들이 도착했습니다.》

《알겠소. 오늘 정치국회의는 여기서 합시다.》

잠시후 참가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시는 한편 박송봉에게 지시하시였다.

《오늘 토론될 문제는 내가 다 이야기했으니 동무는 이길로 련하설비들을 되돌려주고 오시오. 밤이 열둘이라도 기다리겠소.》

박송봉은 대답조차 변변히 올리지 못하고 돌아나왔다.

차에 오르자 그는 돌덩이처럼 웅크리고있다가 종시 격해지는 마음을 누를수 없어 모자채양을 끄당겨 눈두덩을 덮어버렸다.

왜서인지 눈물이 걷잡을수없이 흘러내렸다.

씻고싶지 않았다. 입술을 타고 흘러드는 쩝쩔한 눈물맛은 몽당바지에 헝겊으로 발을 가리우고 《네가 박길의 아들이란 말이냐?》 하고 부르시는 수령님의 옷자락을 적셔드렸던 그 눈물맛과 꼭같았다. 잊고있었던 눈물이였다. 그래서 당하는 아픔이였고 그래서 더 흘리고싶은 눈물이였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란 그였다.

그가 세살땐가 길가에서 놀고있는데 웬 수염이 더부룩한 마차군이 다짜고짜 말발구에 걷어싣고 어데론가 달려갔다. 기겁한 그는 때자욱이 알룩달룩한 손으로 얼굴에 광대를 그리며 울어댔다.

어느 골깊은 오두막에서 한 녀인이 달려나왔다.

그를 덥석 그러안더니 뼈마디들이 앙상한 몸을 쓸어보며 눈물을 흘리였다. 어린 송봉으로서는 자기를 위해 그토록 슬피 울어주는 사람을 처음 보게 된 날이였다. 눈물을 그치자 녀인은 그의 손에 사탕을 쥐여주었다. 그것을 받아쥐고는 겁에 질려 달아나려는 송봉의 귀쪽을 쥐여 당기며 마차군이 말해주었다.

《네 엄마다, 너를 낳아준 엄마란 말이다!》

어머니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막돌처럼 버림받던 몸이 어느분의 손에서 이만큼 사람이 되였길래 벌써 그것을 잊는단 말인가. 박송봉이, 어디 말해보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모자채양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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