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8

 

《어머니!?》

집에 돌아온 성옥은 문앞에서 큰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이방저방을 열며 찾아보았다.

《어디 있어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또 나가셨구나.)

책상우에 놓인 글쪽지를 보고 성옥은 생각했다. 구태여 거기에 무엇이라 씌여있는지 알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늘 그래왔으니까.

분명 이렇게 씌여있으리라.

《어머니는 왕진간다.》

그밑에 한마디 더 써놓았을것이다.

《새벽이면 꼭 돌아온다.》

하지만 두번째 문장은 믿음성이 없다. 그 새벽은 아침이 될수도 있고 낮이나 밤이 될수도 있었다. 그래도 혜정은 완전히 불확정적인 약속을 수없이 반복하고있었다.

그것마저 습관이 되여서인지 성옥은 별로 개의치 않게 여기군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집안이 별스레 더 쓸쓸해났다.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난 성옥은 부엌으로 나갔다. 가마는 두터운 천에 싸여있었다. 뚜껑을 여니 속깊은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인듯 밥과 찬들이 얼굴에 후더운 김을 피워올린다.

이것을 느껴보는것도 습관이다. 밥보다는 딸에 대한 어머니의 정을 느껴보기 위해서이다. 다시 방에 들어간 성옥은 한숨을 내불며 의자에 가 앉았다.

책상우의 글쪽지를 집어들었다. 마치 거기에서 어떤 미지의 세계를 보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어머니를 그려보았다. 그런데 선명히 그려지지 않는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그에게는 오로지 자식의 모습에서 기쁨을 찾는 한 어머니의 모습우에 한 가정의 문턱을 넘어 어딘가 멀리를 바라보는 녀인의 눈빛이 겹쳐들군 하였다. 의미를 헤아릴수 없는 그런 눈빛이…

날이 갈수록 성옥은 자기가 어머니에 대하여 뭔가 모르고있다는 느낌이 들군 하였다.

갑자기 창밖에서 《엄마?》 하고 안타까이 부르는 소녀의 애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쭉 몸을 일으켰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가 생각하며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자기의 어린시절이 어려왔다.

자기는 지금까지 어머니에게서 따뜻한 정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서랍을 당기던 성옥은 그안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보았다.

은빛의 회중시계줄이였다. 마치 귀한 보석인듯 두손에 받쳐들었다. 금속의 산뜩한 느낌이 손에 마쳐온다. 한줄기의 은빛띠우에 달빛이 반짝이며 흐른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또 《엄마?》 하는 부름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자기의 어릴적 목소리였다.

그 시절에도 어머니는 이렇게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밤이 오면 사슴이라든가 토끼가 주인공이 되는 옛말을 들려주며 어린 딸을 잠재우고는 집을 나섰다. 딸은 잠이 깨면 어머니의 잠자리부터 더듬었다. 어머니의 자리가 비여있으면 밖으로 뛰쳐나가 목청껏 엄마를 부르며 정처없이 뛰여다니군 하였다.

하지만 어디서도 엄마의 대답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보다 다심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정이 그리웠다.

비록 밥술조차 변변히 들수 없더라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애들이 무척 부러웠다.

진종일 홀로 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아 놀다 지칠 때쯤이면 엄마가 돌아오군 했다. 그때면 저도 모르게 설음이 북받쳐 어머니에게 골을 내군 하였다.

《엄만 혼자서 어디 갔댔나?》

《왕진을 갔댔단다.》

어머니는 어린 딸을 껴안고 입맞춰주었다.

어느날엔가 엉뚱한 궁리를 해낸 그는 집을 나갔다. 그러면 엄마가 자기를 찾아올거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한시간, 두시간이 흐르도록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자 그는 터벌터벌 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또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낡은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날이면 영낙없이 집을 나서군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채깍채깍 돌아가는 회중시계를 보면 엄마가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영영 가버리지 않을가 하는 두려움에 싸이군 하였다.

어느날에는 엄마 몰래 회중시계를 감추었다. 그러고는 되게 경을 치르었다. 서럽게 울다가 잠들었던 성옥은 잠결에 엄마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였다.

살며시 눈을 뜬 그는 자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있는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있는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조용히 흐느끼며 울고있었다.

왜 그럴가, 엄마가 나때문에 우는것일가. 내가 곱다면서 왜 그렇게 성을 냈을가.

날이 밝자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다.

《성옥아, 엄마에겐 이 시계가 꼭 있어야 한단다. 이 시계는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시계다. 알겠니?》

성옥은 그 말의 뜻을 알수 없었지만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어머니는 시계줄의 은고리를 벗겨내여 딸의 손에 쥐여주었다.

《엄마가 그리울 때면 이걸 보며 기다려라. 네가 이 시계줄을 쥐고있으면 엄마는 멀리 갔다가도 기다리는 너를 생각하며 꼭 돌아온단다.》

성옥은 엄마가 준 은시계줄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한 그였다. 그렇게 동심의 끈을 늘이며 엄마를 기다려온 그였다.

그런데 다 자란 지금에 와서는 왜선지 왕진을 간다는 어머니의 말에 다른 의미가 있었던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군 한다.

성옥은 남편잃은 녀인들의 모성애가 남달리 강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자식의 모습에서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을 보기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기 딸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것 같다는 슬픈 생각이 감겨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뒤돌아보면 지금의 성옥이와 거의 같은 나이에 벌써 어머니는 외로운 녀인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벽에 걸려있는 한장의 사진에 눈길을 주었다.

어머니와 강준호, 엄석 그리고 자기가 어느 추석날에 함께 찍은 사진이였다.

아버지와 젊었을 때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던 강준호와 엄석은 추석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군 하였다.

혜정과 성옥이로서는 고마운 일이였다.

그래서인지 혜정은 강선생의 신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각별한 관심을 돌려왔다.

다만 의문스러운것은 이들중 누구도 자기에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였는가를 똑똑히 말해주지 않는것이였다.

성옥에게는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였을가 하는 의문이 자주 들군 했다.

자기가 어느 뼈를 물려받았는지, 자기 몸에 어떤 피가 흐르고있는지 알고싶어하는것은 인간의 본능인것이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알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혜정은 언제 한번 명백히 말해준적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어느날 성옥은 끝내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게 되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가 뜻이 높은분이고 의로운 일을 하시다가 잘못되였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떻게 무슨 일로 돌아가셨는지 말씀해주지 않았지요? 난 알고싶어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분이였는지…》

혜정의 얼굴에는 매우 심중한 기색이 어리는것이였다. 아마도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지 망설이는것 같았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어려운 결심을 내린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너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네가 대학에 입학한 후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으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려 하였지만 너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 될가봐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넌 그분의 자식이다. 이젠 자식으로서 마땅히 아버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넌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가고 물었지? … 너의 아버지는 사형수였다.》

뜻밖의 말에 성옥은 몹시 놀랐다.

《그래, 아버지는 민중의 참된 삶과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싸우다 희생된분이였다.》

주름잡힌 혜정의 얼굴을 바라보던 성옥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는 그날 온종일 때식도 잊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창백한 얼굴로 앞에 나타난 성옥이가 한 말은 전혀 뜻밖의것이였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어머니, 과연 그런 희생과 고통을 꼭 겪어야만 하는걸가요?》

순간 혜정의 얼굴에서 피기가 사라져가는것을 성옥은 미처 보지 못했다.

자기가 무심결에 던진 이 한마디가 어머니의 가슴에 어떤 상처를 준것인지 그는 세월이 퍼그나 흐른 뒤에야 알게 되였다.

그날 저녁 성옥은 혜정을 기다리다가 지쳐 끝내 먼저 잠들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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