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2 장

1

 

교외의 어느 깊은 산골짜기로 한 사나이가 흰 목수건을 둘러감은 처녀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고있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선채 눈덮인 수림을 둘러보던 두사람은 용기를 내여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한걸음 옮기기도 어려웠다. 눈이 무릎을 치는데다가 눈밑의 왁새풀이며 잡풀들은 도저히 밟을수가 없게 미끄러웠다.

사나이는 길옆에서 주어든 소나무가지에서 잔가지들을 툭툭 쳐낸 후 지팽이를 만들어 처녀에게 들려주었다. 처녀는 그것으로 길가에 늘어진 나무가지들이며 풀대에 덮인 눈을 쳐내며 나아갔다. 예로부터 사람이 드나드는 산에는 어디나 이런 길들이 있기마련이였다. 아마 이 길은 사냥을 위해 산에 오르던 어느 인간이 처음으로 낸 길인지도 모른다. 이 땅과 더불어 살아온 인간들의 고단한 삶의 력사가 남긴 자취런듯 구불구불 뻗어오른 오솔길이다.

《앗, 선생님 주의하셔요!》

앞서 나가던 처녀가 그만에야 중심을 잃고 넘어진 사나이를 향해가며 소리쳤다. 그의 방조를 받으며 힘겹게 일어선 사나이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천리길도 내처 걷던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람.》

이들은 창혁의 묘를 찾아가는 성옥과 강준호였다. 성옥은 창혁이 세상을 떠나간 날이면 강준호와 함께 여기로 오군 하였다. 사실 어제 라지오로 밤새 폭설이 내릴것을 알리는 일기예보를 듣고 성옥은 혼자 길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러나 강준호는 그럴수 없노라며 부득부득 길을 나선것이였다. 성옥은 이 산행이 선생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더 막으려 하지 않았다. 오솔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자 펑퍼짐한 공지가 나졌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눈속에 봉분들이 묻혀있는것이 보이였다. 봉분들이 렬지어 서있는것으로 미루어 이곳이 묘구역이라는것을 대뜸 알수 있었다.

강준호는 숨이 찬듯 한참동안 심호흡을 하고나서 사방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소리쳐불렀다.

《여, 동갑이! 어디 있나?》

하지만 산발들에 부딪치며 퍼져나간 그 목소리는 메아리로 되돌아올뿐이였다. 성옥의 손에서 나무가지를 받아든 그는 구새먹은 나무를 힘껏 두드렸다. 그래도 화답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강준호는 여기저기를 막대기로 짚어보며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약간 우묵 패여들어간 곳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손에 들었던 지팽이를 들어 냅다 뿌려던지였다.

한찰나 허공을 긋는 소리가 《휙?》 하고 울리더니 날아간 막대기는 눈속에 삐죽 내밀린 굴뚝같은것을 정통으로 때리였다. 그러자 당장 소동이 일어났다.

《어이쿠.》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고함소리가 튀여나왔다.

《대체 어떤 놈들이냐?》

강준호는 상체를 뒤로 젖히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곰이요.》

그리고는 계속 웃어대며 그리로 다가가 눈속에 묻힌 문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도저히 인간이 사는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토굴집안에서 술냄새며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냄새가 범벅이되여 풍겨나왔다.

강준호를 따라 그곳으로 다가서던 성옥은 그만 코를 싸쥐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가?

그래도 제법 훈훈한 기운이 느껴졌고 싸늘한 대기속으로 흰 김이 퍼져올랐다. 성옥은 슬그머니 그안을 들여다보았다. 낡은 노전을 깐 토굴안에서는 한사람이 누덕누덕 기운 모포를 뒤집어쓴채 딩굴고있었다.

《어서 일어나라는데, 날이 밝았어.》

그제서야 그 사람은 누데기모포를 헤치고 일어나 앉으며 호통을 뽑았다.

《누구라구? 산에 왔거든 정숙해얄게 아냐? 무뢰한들 같으니라구. 조상찾는 례법도 모르느뇨?》

짐승털가죽으로 지은 등거리를 걸치고 꺼꺼부정한 자세로 이쪽을 바라보는 그 모양은 도저히 이 세상사람 같지 않았다. 언제 깎아보았는지 길다랗게 드리운 머리카락엔 짚검불이 붙어 건들거리고 그사이로 정기풀린 눈이 흰자위를 번뜩이며 사위를 두리번거리고있었다. 이어 한바탕 기지개를 켠 그 사람은 괴성을 한마디 지르고는 방바닥에 나딩구는 술병을 들어 주둥이가 목젖까지 닿도록 입안으로 쑥 들이밀었다. 하지만 빈 병이였던지 인차 내던지고는 입을 쩝쩝 다시며 눈을 쑥쑥 비벼댄다. 그리고는 다시 토굴입구에 서있는 두사람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영낙없이 귀신의 모양이였다.

묘지기 삼년에 귀신을 닮는다더니…

더럭 겁이 난 성옥은 잔뜩 몸을 옹송그리며 강준호의 뒤에 바싹 붙어섰다.

《동갑이, 내가 왔다니까.》

강준호는 《귀신》앞으로 썩 다가서며 소리쳤다. 그제서야 《귀신》의 눈이 정기를 띠고 반짝이였다.

《아이쿠, 이거 반가운 손님이 왔구만. 미처 못 알아봐서 안됐수다. 어서 들어와 몸이나 녹이시우.》

《그러세. 성옥아, 너도 이분을 알지? 여기 묘들을 돌보는분이다. 이리 들어오거라.》

강준호는 허리를 굽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옥은 여기서 몇번 그를 본적이 있었다. 또 강준호로부터 그에 대한 말도 많이 들어왔었다.

4. 19때 아들을 잃은 사람이였다. 나어린 고등학교 학생이였던 아들은 봉기자들과 함께 중앙청으로 전진하던중 경찰저지선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아 절명하였다고 한다. 일찌기 안해를 잃고 애지중지 키워온 외아들이였다. 그처럼 사랑하던 아들을 제손으로 묻고 며칠을 통곡하며 밤을 새운 그는 여기에 아주 떨어지고말았다. 불쌍하게 살다 죽은 아들을 홀로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아들을 빼앗은 그 땅으로 다시 내려가 살고싶지도 않다고 했다. 아들과 또 그처럼 죽은 애젊은 령혼들을 돌보며 살고싶은것이 그의 심정이였다. 그러다 죽으면 그곁에 묻히는것이 소원이였다. 그는 해마다 이날과 추석때면 꼭꼭 여기를 찾는 강준호를 창혁의 아버지로 알고있었다. 하여 서로 동병상련하며 허물없는 사이로 되여버린 그들이였다.

묘지기는 그들앞에 화로를 놓아주었다.

《작년엔 어째 못 왔더랬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네.》

묘지기는 동갑이의 해쓱해진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근심스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대체 어찌된건가, 염라국에라도 다녀왔소? 이런 참, 내 도장도 받지 않고 갔으니 염라대왕이 받아줄거나 뭐요. 그것도 다 절차가 있는 법이라니까. 그래 염라대왕께서 뭐라 합디까?》

《도장도 안 받아왔노라 노발대발하며 퇴짜를 놓더군. 그리구는 내 등을 떠박지르며 내려가거들랑 묘지기더러 어째 입국신청도 않은 사람을 마구 올려보내느냐고 욕하더라고 전해달라더군.》

《허, 그것 보라니… 점잖은 량반이 새치기를 하면서 남을 욕먹여서 되겠소?》

묘지기는 눈이 없어지게 웃어댔다.

《몸을 잘 돌보셔야겠수다. 선생이 훌 떠나면 내 갑갑해서 이노릇도 다 해먹는거 아니겠소. 그리고 저기 저애들이랑 얼마나 섭섭해하겠소?》

그는 토굴밖의 묘들을 가리켜보이였다. 두사람이 그렇게 롱절반, 진담절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꽁꽁 얼었던 몸은 퍼그나 훈훈해졌다.

《슬슬 나가볼가?》

제 먼저 토굴을 나선 묘지기는 눈무지를 헤치고 싸리로 엮은 비자루를 지팽이처럼 짚으며 걸음을 옮기였다. 처음 오는것도 아니였건만 성옥은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이 하나하나의 봉분밑에 어제날 새파랗게 젊었던 생명들이 잠들어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몹시도 떨려났다.

꽤 많은 봉분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4. 19때 숨진 청년들이며 그후 통일운동과 민주화투쟁과정에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묻혀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애젊은 청년들이 차디찬 땅속에 묻혀있는것인가. 누구보다 열정에 넘쳐 민주와 통일을 부르며 불의의 폭정에 도전해나섰던 정의로운 청춘들이 여기에 잠들고있었다.

나름의 생각에 잠긴채 묘지기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성옥은 느닷없이 터져나온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이녀석들, 어서 썩썩 일어나지들 못할가. 기척!》

묘지기로인이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을 쳐들고 묘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을 점호하듯 묘비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걸죽한 롱을 쏟아내기도 하는 그 모양은 저승사자를 련상케 하였다.

그들은 어느덧 창혁의 묘앞에 이르렀다. 묘지기로인은 비를 들어 묘비며 묘잔등에 쌓인 눈을 털어내였다. 한참동안 묘를 둘러보던 강준호는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앞에 한두번만 온것이 아니였지만 묘를 보는 감정은 매번 같지 않았다. 처음은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것이 억울하고 분해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하지만 나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보다는 그앞에 지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다는 생각으로 더 괴로와하였다.

이 젊은 나이의 인간이 피흘리고 목숨바치며 바란것은 인간의 자유와 삶의 권리였고 민주와 통일이였다.

분렬과 파쑈라는 이 사회의 질병을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못난 조상들이 상처입은 후대들을 위로하며 제술을 부어야 하는 비극을 언제 가면 끝장낼수 있단 말인가.

《창혁아, 이녀석아! 아버지가 왔다. 이렇게 눈이 많이도 내렸는데 아버지가 누이동생이랑 같이 그 험한 길로 고운 꽃을 들고 찾아왔구나.》

묘지기의 넉두리에 성옥은 눈굽이 짜릿해났다.

창혁의 얼굴이 생시처럼 떠오르면서 강준호가 그를 데려온 사연이 되새겨졌다.

언젠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아버지를 잃은 후 어머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겨우 세살밖에 안된 성옥의 오빠가 아버지를 찾으며 집을 나갔다. 그렇게 울면서 떠난것이 영리별이 되고말았다. 강준호는 친구의 가정이 당한 불행을 보다못해 그 어린 자식을 찾아나섰다. 사람들을 통해 수소문하기도 하고 자기가 직접 다니기도 하면서 몇년세월을 헤매였지만 허사였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것은 부산기관구에서였다. 그는 로동자들의 쟁의가 거세게 일어났던 그곳 형편을 알려고 거기로 갔었다.

철도로동자들과 경찰사이의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력력한 현장을 둘러보고 기관구마당을 지나던 그는 갑자기 한 로동자에게로 시선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수리중에 있는 기관차곁에서 한 로동자가 어린 소년을 무릎에 앉힌채 담배를 말고있었다. 시퍼런 담배잎을 꽁꽁 다져 만 엄지손가락굵기의 담배를 입에 물고는 기름이 묻어 번들거리는 손으로 성냥을 둑 그었다. 이내 굴뚝같은 담배대에서 물씬물씬 연기가 피여오르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였다.

그는 잠든 소년에게로 연기가 가지 않게 하느라 손부채질을 하며 뻐금뻐금 담배를 빨아댔다. 늘 윤세의 자식을 두고 마음써온 강준호였던지라 자연 그 사람에게로 발길이 옮겨졌다.

알아보니 그는 떠돌아다니는 방랑아들을 기관구의 어느 빈방에서 재워도 주고 밥도 먹이며 돌보아주고있었다. 강준호는 혹시나 하여 윤세의 자식 이름이며 몇가지 특징을 말해보았으나 그는 난감해할뿐이였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애도 그런 애인걸요. 지금은 이런 애들이 부지기수지요. 이 근방에도 부모없이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애들도 수다하지요.》

이때 뭐가 불편한지 칭얼거리며 뒤채이던 아이가 눈을 뜨고 강준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예닐곱살쯤 되여보이는 아이였다. 윤세의 자식도 살아있다면 이렇게 컸으리라 생각하는데 소년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단추 하나 없는 잠뱅이자락이 벌어지며 표주박같은 배가 불쑥 솟아올랐다. 영양분없는 섬유질의 음식만을 섭취하는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배는 불룩한데 몸에는 살이 없어 갈비뼈가 아롱거렸다.

《배고프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어보였다. 기관차에 올라갔던 사나이는 밑굽이 까맣게 그을은 남비를 들고 내려왔다. 소년의 앞에 내놓은 남비에는 밥이라고 말하기 곤난한 음식물이 들어있었다. 시누런 강낭죽속에 팅팅 불어난 강냉이알들이 다문다문 박혀있었다. 부자집에서는 개들도 도리질할것이였지만 아이에게는 진수성찬인듯 군침까지 삼키며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가만, 내 이제 맛있게 만들어줄께.》

철도로동자는 주머니에서 닭알 한알을 꺼내 남비모서리에 툭 쳐서 깨뜨렸다. 흰 껍질속에서 흘러나온것을 익숙한 솜씨로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강낭죽에 버무리였다.

아이는 어쩌다 차례진 별식앞에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리고는 그처럼 맛스런 음식을 앞에 놓고 앉은것이 기쁜듯 헤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맛있지?》

아이는 대답대신 머리를 힘껏 끄덕여보였다. 기름기는 고사하고 풀기조차 없는 밥에 어쩌다 얹혀진 닭알 한알이 그리도 커보였던 모양이다. 강준호의 눈가에는 팥알같은 눈물이 고여올랐다. 방랑소년의 정상이 너무도 처량했다. 이것이 어찌 그애 하나의 불행이겠는가고 생각했다. 윤세의 아들이며 비명에 목숨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자식들이 불행의 나무로 자라오를 눈물의 씨앗이 되여 바람사나운 대지우에 뿌려졌다.

강준호의 뇌리에는 그날 잠뱅이소년의 처량한 모습이 사진처럼 또렷이 새겨졌다. 그후 세월은 악몽처럼 흘러갔다. 이듬해 어느날 강준호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였다. 험난한 세월의 풍파속에 어린 소년들이 겪었을 불행에 대해 상상해보며 철도로동자와 소년을 만났던 그곳에 당도했을 때 강준호는 너무나 처참한 현실을 보게 되였다.

왕년의 철도로동자는 파업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죽고 어린 소년만이 동냥으로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해가고있었다.

소년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너무도 이른 나이에 너무도 많은 풍파를 겪으며 아사의 공포속에 굶주린 창자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그애에게 옛적 어느날의 기억 같은것을 간직할 여유가 있을리 만무했다.

《너 생각나니? 바로 저쪽에서…》

《먹을것 좀 없나요?》

강준호는 한숨을 꺼지게 내쉬며 일어섰다. 그리고 소년의 앙상한 손목을 잡고 근처에서 장작을 피우며 수제비국을 끓여 파는 로파에게로 다가갔다. 음식냄새를 맡은 소년이 코를 벌름거리며 군침을 꿀꺽 삼키였다. 음식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미군부대 취사장에서 흘러나온 음식찌꺼기를 모아 만든 꿀꿀이죽이라는것도 있었다. 운이 좋으면 거기서 큼직한 햄쪼각이나 고기덩이를 건지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불결하긴 해도 굶주린자에게는 창자가 벌컥 뒤집힐만큼 고급스런 음식이였다.

하지만 강준호는 아이에게 차마 그런것을 사먹이고싶지 않았다. 소년은 아무거나 배를 불리면 그만이라는듯 사발에 무드기 담긴 수제비국을 정신없이 퍼먹었다. 마지막 한오리까지 건져먹고나서야 소년은 고마운 은인을 향해 꾸벅 머리숙여 인사하였다.

《창혁아!》

강준호는 이전에 철도로동자가 그렇게 부르던것이 떠올랐던것이다.

《그 아저씨가 생각나니?》

그제서야 소년의 눈에 그들먹이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였다. 비록 강낭죽이나마 사랑을 담아 먹여주는 사람이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가를 소년은 생각했을것이다. 이제는 그런 동정의 보호조차 받을수가 없게 된 가긍한 소년의 정상을 보느라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남의 아이들을 그렇게 돌봐주느냐는 물음에 철도로동자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 내가 버리면 이애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사람의 인정으로 어떻게 의지가지할데 없는 이 불쌍한 애들을 내버릴수가 있겠습니까?》

강준호는 그날 그 소년과 함께 서울행 렬차에 올랐다. 그후 창혁을 친자식처럼 정을 기울여 키워주었다. 성옥의 어머니는 수년동안 자기 자식을 찾아 고생하던 그가 데려온 소년을 아들처럼 사랑해주었다. 성옥에게 있어서 창혁은 친오빠나 다름없었다.

늘 안개속처럼 흐려있던 소년의 모습은 난생처음 행복의 미소로 밝게 빛났다.

그렇게 성장한 그가 대학에까지 들어간것은 모두의 경사였다. 그들은 창혁이 그늘없이 굳세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 운명이 아닌것 같았다. 아니, 생존의 터전이 되여야 할 이 땅이건만 순결한 인간들에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곧 학생운동에 뛰여들었다.

지식은 그의 생명에 학문의 세계뿐아니라 불합리한 이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투시하는 리성의 안광을 부여하였다. 한없이 고운 마음씨를 지닌 그였으나 끓어오르는 젊은 피를 주체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민주와 통일을 위한 그 길에서 자기 생명마저 다 바치였다. …

묘지기로인은 묘앞의 눈을 다 쓸어낸 후 그 자리에 토굴에서 가져온 거적을 깔았다. 그리고는 성옥이 들고 온 음식들을 펼쳐놓는것을 거들어주는데 손놀림이 도무지 늙은이답지 않게 재빨랐다. 향을 피우고 술을 붓고나자 로인의 장광설이 시작되였다. 술을 사발들이로 벌컥벌컥 들이키고난 후 그는 화락한 기분으로 강준호의 무릎을 철썩철썩 두드리고 침방울을 튕겨가며 끝없는 이야기판을 펼쳐놓았다.

《어찌겠나, 동갑이. 어차피 죽은 목숨인걸. 그래도 이애들은 저승에 가서 복을 누릴거요. 염라대왕님도 의로운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은 특별히 대접해준다지 않나. 게다가 여기 묘자리가 얼마나 좋은가. 좌청룡, 우백호, 주작, 현무…》

그는 신이 나서 산주위의 지세를 가리켜보이며 묘자리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하였다.

《살아 진천, 죽어 룡인이라는 말도 있듯이 명당이란것이 있는거네. 여기 지세를 좀 보라구. 이 묘자리가 명당이라면 명당이네. 내 묘라는것에 대해 좀 이야기하라나?

묘는 인간이 자신을 의식하면서 생겨난것이네. 원래는 숨이 끊어지면 그저 들어다가 우묵한 곳에 내버리던거야. 그러다가 <몸이 왜 이렇게 싸늘할가? 그러니 나도 이렇게 되는걸가?> 하고 생각하면서부터 인간은 묘에 대해 생각했을거네. 성서에서는 발가숭이 아담과 이브가 눈을 뜨면서 처음 느낀것이 부끄러움이라 했지만 난 두려움일거라고 생각하네. 언젠가는 영원히 눈을 감을수 있겠구나, 그때는 모든게 끝나겠지, 이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그런데 숨이 끊어지는것보다 더 무서운건 그 다음이지. 난 산속에서 족제비란 놈이 사람의 시체를 뜯는걸 한번 봤네. 그야말로 이 머리카락이 몽땅 곤두서더라니까. 글쎄, 그놈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사람의 얼굴에 올라앉아서…》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오랜 옛날에야 더 말할게 있었겠나. 사람은 조금씩 개명해가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였을거네. 그래서 매장하는 방법이 나왔다 이 말이지. 묘는 장, 묘, 분의 형태로 변화해왔는데 한문으로 해석하면 장(葬)자는 주검을 땅이나 널판우에 풀로 덮어 감춘다는 뜻이 된다네. 그러다 점차 봉분없는 평지묘가 생기고 그후 무덤을 쉽게 찾고 시신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墳)자형무덤이 생겼던거네. 무덤분자는 흙과 조개껍데기를 많이 쌓아 봉분을 갖춘 무덤의 모양을 본딴것이지.

우리 선조들은 참 영특했어. 글쎄, 선사시대부터 이미 매장법을 알았다지 않나. 원래는 아주 문명한 제사법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다 흐트러지고말았다네. 그게 알고보면 멀쩡한 사람 웃기는 놀음이지 뭔가. 초혼이란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망자가 제사라는 의식을 통해 그 순간 재생한다고 믿었다네. 참, 어이가 없는 일이야. 산에 살면서 별의별 눈감기는 례식을 다 보는데 우습기 짝이 없어. 공상 잘하는 아이들이나 꾸며낼걸 머리흰것들이…》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쯧쯧 혀를 찼다.

《향을 피우고 술을 붓는건 그런대로 괜찮은거지. 그게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는걸 상징하는거라네. 양기가 승천해 신명이 되기도 하고 귀신이 되기도 하는데 생전의 원한과 미련을 놓지 못하면 승천하지 못하고 떠다니다가 음기가 된다는것이지. 바로 이것이 귀신이라는거네.

그러면 여기 봉분밑에 누운것은 뭔가? 살아서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서도 생전의 한을 품은채 한줌 흙으로 변해버릴 시신들이 있을뿐이지.》

그러던 묘지기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제 설음에 겨워 《동갑이 그렇지? 내 말 옳지? 백성들이란 그렇게 불쌍한거네. 살아보겠다고 뼈마디가 물러나도록 일해서는 상전들 배나 불려주다가 락이란걸 모르고 죽고마는거야.》라고 말하고는 벌거우리한 눈에 잔뜩 배여나온 눈곱을 문지르며 꺼이꺼이 울음을 울었다.

강준호는 창혁의 묘비에 눈길을 주었다. 태여난 날자만 씌여있고 사망날자는 없는 묘비였다.

묘비를 보는 순간 그에게는 창혁에게 시계를 주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강준호는 출판사를 경영하고있었다. 당시 구독률이 높은것으로 인정받는 출판사였다. 그렇게 잘 나가는 기업이지만 늘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우선 사장인 강준호부터가 상업적리윤보다는 대중교양지, 사회운동에 대한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더 중시하다보니 경영활동과 무관한 사업에 자금을 활용하는 일이 잦았으며 거기에 세무사찰이나 《반품(일단 사들인 상품을 되돌려보내는것)공작》 등을 통한 중앙정보부의 《고사작전》이 그치지 않았던것이다. 하여 강준호는 늘 눅거리단칸방신세를 면하지 못하고있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창혁으로서 언제까지 그의 등에 업혀 살수 없었다. 하여 신문팔이, 짐나르기 등 닥치는대로 일감을 얻어 학비를 보태기 위해 애쓰고있었다. 그런데 시계가 없다나니 여차하면 지각을 하군 하였다.

어느날 강준호는 출판사 편집위원회에 참가했던 한 대학교수로부터 창혁이가 자주 늦게 등교한다는 말을 듣게 되였다. 몹시 노한 그는 창혁을 불러들여 꾸짖었다.

처음 그렇게 꾸지람을 들은 창혁의 이마에 진땀이 내돋았다. 무겁게 입을 다물고있던 창혁은 강준호의 얼굴에 심히 락심한 빛이 어린것을 보고서야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강선생님도 돈이 없어 변변한 집 한채 마련하지 못하는 형편인데 어떻게 자기가 계속 신세를 질수 있겠느냐 하는것이였다.

그의 말을 들은 강준호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는 자기 손목에 찼던 시계를 풀어 그에게 채워주었다.

《그래도 학교에는 늦지 말아야지. 만일 네가 앞으로도 그렇게 시간을 소홀히 여기게 된다면 애써 공부를 한들 무슨 보람이 있겠니?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이 아니다.》

창혁은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해후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그는 몸에서 시계를 떼여놓은적이 없었고 시간에 대하여 철저하였다.

그의 벗들은 묘비에 차마 사망날자를 적어넣을수가 없었다.

창혁을 묻던 그날 강준호는 뼈아픈 자책에 싸여있었다. 불행의 력사를 묵인한 그 세대에 속했다는 그리고 그애가 위험천만한 길을 걷고있는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말리지 못한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인생에 씻을수 없는 죄를 저지른 죄인인듯이 여겨졌다.

그는 다시는 애젊은 생명들이 피흘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인생의 마감시간까지 모든것을 다 바쳐 살리라고 생각하였다.

바라던 그날이 오면 창혁의 묘앞에 서서 네가 바라던 자유의 날이 왔다고 큰소리로 알리고싶었다.

허나 날과 달이 흘러 그의 묘비에도 이끼가 돋기 시작하고 자기인생도 종착역을 바라보고있건만 더욱 쓸쓸한 마음을 안고 다가설뿐이였다.

《여보게 동갑이! 또 무슨 생각을 하나? 자, 어서 술을 마시자구. 그저 설음을 달래는데는 이 술이상 없다니까. 내 아들 중범이녀석이 죽기 전날 밤에 하던 말이 생각나는구만. 이녀석이 술 한병을 척 사다가 나에게 부어주며 <아버지, 사람이 태여나면 죽기도 하는거 아입니꺼. 난 말입니더. 앞으로 총탄에 맞아 죽든 대검에 심장을 찔려 죽든 시위마당에서 싸우다 갑자기 장쾌하게 죽고싶습니더.> 이러는게 아니겠나. 그때 내 그놈 이마빡을 쥐여박으며 꽥 소리쳤지. <이놈, 말이 씨가 되는줄 모르느냐? 그따위 방정맞은 소리 작작해!> 아, 그런데 다음날 그런 일이 벌어질줄이야 어찌 알았겠나. 그놈이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을 했어야 하는건데.》

강준호는 그해 4월 어느 신문에 실렸던 한장의 사진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사진은 그 전날 마산에 주재하고있던 한 기자가 부두앞바다에 떠오른 김주렬의 시체를 찍은것이였다.

리승만은 군경을 내몰아 자기의 4대《대통령》 재선과정의 부정협잡행위에 분노한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던중 나어린 고등학교 학생을 최루탄으로 쏘아죽이고 바다에 처넣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던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곧 다른 신문사들과 통신사들에서도 보도하였으며 외신을 통해 세계에 전파되였다. 그 한장의 사진이 분노한 민심에 불을 달았다. 수백만 정의의 심장들이 복수의 사자마냥 드디여 쌓이고쌓인 의분을 터뜨리고만것이다. 4. 19봉기의 나날 강준호는 찌프차를 타고 거리를 달리며 독재의 아성을 향해 몰아쳐가는 장엄한 노도를 가슴 떨리는 감격속에 목격하였다.

거세게 밀어닥치는 거창한 힘의 급류앞에 천년은 갈것 같던 독재의 방파제가 맥없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악한 무리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쫓겨나는가를 보았다. 흥분한 군중이 땅바닥에 나떨어진 독재자의 동상에 바줄을 걸고 거리를 내달리는 광경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것 같았다.

격동된 그는 궐기한 민중의 거세찬 진출을 찬양하는 수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누구보다 이 력사의 한 시점을 깊이 리해하고있으며 언론활동을 통해 그에 기여하여왔다고 자부도 높았던 그였다.

그러던 어느날 강준호의 이런 인식에 뜻밖의 충격이 가해졌다.

그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였던 그해 겨울이였다. 한동안 행처도 알리지 않고 사라졌던 창혁이 눈오는 어느 깊은 밤 그를 찾아왔었다. 그는 강준호가 자기의 정치적리상을 실현해볼 꿈을 안고 《국회》의원선거에 나서던 때 돌연 대학을 중퇴하고 로동현장에 들어갔었다. 보다 조직화되고 대중화된 저항운동을 전개할것을 결심한 창혁이였다.

오랜만에 나타난 그는 자기를 친자식처럼 돌보아준 강준호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런 후 자기들의 계획을 설명하며 강준호에게 후원해줄것을 간절히 부탁하였었다. 곧 둘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선생님은 4. 19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창혁이 안타까워 웨치던 말이였다.

《4월은 력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에 대해 말해주고있습니다.》

《너의 그 뜻을 내 모르는바는 아니다만 터놓고 말해서 그건 아직 리상론에 불과한거야. 4. 19의 폭풍이 아무리 거세고 민중의 힘이 아무리 거창했다한들 결과는 어떻게 되였냐 말이다. 그 결과로 온것이 그들이 피타게 웨치던 민주의 세상, 통일조국이였던가? 그와는 반대였지. 현 집권세력은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켰어. 4. 19의 이름을 빌어 이 땅에 싹트기 시작한 민주화의 봄을 땅크로 깔아뭉개였단 말이야. 슬프게도 4월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을뿐이야. 사나운 개를 쫓으니 영악스런 이리가 들어온셈이 되였어.》

《그러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선생님은 무엇으로 사회의 민주화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수 있다고 보십니까. 현실에 안주하며 결국 <정권>과 타협이나 하는것이 유일한 방법이란 말입니까? 그건 또 하나의 실책을 범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환상에 빠져 계실수 있습니까.

여기는 한반도 남쪽입니다. 식민지의 운명은 종주국의 주권자들에 의해 결정되는것입니다. 어떤이들은 4. 19이후 민주당정부가 계속 존속되였더라면 력사가 달라졌을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오유가 있습니다. 민주당도 미국의 하수인노릇을 할수밖에 없다는것입니다. 중요한것은 민주당이 쿠데타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다는것이 아니라 미국과 군부독재세력이 사회변혁의 주체인 민중에게서 모든 권력을 강탈했다는것입니다. 때문에 비단 진보민주세력들뿐만이 아니라 전체 민중이 한결같이 자기의 사명과 지위를 자각하고 단합된 력량으로 일어나 이 땅우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근원인 외세와 그에 추종하는 군사파쑈독재세력을 축출해낼 때만이…》

《그만해라. 천만부당한 말씀이야. 그러지 않아도 군부집권자들이 가장 경계하는것이 그것인줄을 모른단 말이냐? 그런 기미가 조금만 보여도 거미줄처럼 늘어놓은 정보망의 촉수에 걸려들거다. 수만을 헤아리는 모든 정보원들이 오직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들이 빨갱이란 말을 늘 입에 달고다니는것도 실은 자기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그런 세력의 등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란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그래도 할수 있단 말이냐, 도대체 누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픔이 가득 어렸던 그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심이 어리고있었다.

《선생님, 다름아닌 우리가 할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생을 바쳤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뒤를 따르렵니다. 그리고 모두가 따를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그날이 올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것입니다.》

창혁은 강준호를 향해 고개숙여 인사한 후 바람처럼 사라졌다. 두손을 주머니에 찌른채 뽀얀 눈발사이로 걸어가던 그의 뒤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후에도 창혁은 수차 강준호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찾아왔었다. 그러나 둘사이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불행한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그렇게 불쑥 문을 두드리며 나타났었다. 그런 후 그는 영원히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

묘지기는 빈 사발에 제손으로 또 가득 술을 부으며 중얼거렸다.

《동갑이, 우리 그 아들놈이 정말 난놈이지? 그 조꼬만 놈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겠나? 누굴 닮았는지 하여간 참 잘도 낫더랬는데… 그런 놈은 또 없을거네. 그렇지 않나?》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쓰러져 누우며 잠꼬대처럼 중얼거리였다.

《이눔아, 어쩌자구 나 같이 늙은 놈만 남겨두구 너희들끼리 갔더란말이냐. 장차 이눔의 세상은 어찌 될려는건지…》

숨을 씩씩 몰아쉬는 묘지기로인의 실주름이 가득 잡힌 두눈귀로 굵은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강준호는 그의 말이 자기를 꾸짖는것처럼 들려와 마음이 몹시 괴로왔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며 따스한 해살이 산판가득히 쏟아져내리였다. 묘지기는 이따금 킁킁 코소리를 내며 평온한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물그물 흰 연기를 피워올리던 향불도 점차 사그라들더니 이내 마지막연기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사위는 끝없이 고요하였다. 묘지기의 잠꼬대소리가 풀숲의 설레임소리에 섞이여 간간히 들려올뿐이였다.

《정말 죽으면 다 잊혀지는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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