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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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회관앞은 아침일찍부터 찾아드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있었다. 오늘 이곳에서는 한시영교수와 같은 중진인사들을 중심으로 하고 법조계인사들과 법률학분야의 학자들을 망라하는 협회의 결성식이 있게 된다.

회관홀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던 성옥은 얼마전에 만났던 김현호가 몇명의 젊은이들을 대동하고 희색이 만면하여 들어오는것을 보았다. 그도 협회결성의 발기인중 한사람으로 결성식에 참가하는것이다.

《속도가 굉장히 빠른걸. 정말 대단해.》

그는 성옥의 곁으로 다가와 등을 다독여주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선생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겁니다.》

성옥은 상기된 얼굴로 말하였다.

결코 겸손의 말이라고만 할수 없는것이였다. 그와 한시영교수처럼 권위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일을 이렇게 빨리 진척시킬수 없었을것이다. 그들의 힘은 무시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들은 자기의 인맥을 리용하여 될수록 많은 법조계인사들이 호응해나서도록 하는 등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그 조직적인 수완에는 배울 점도 많았다.

단체의 결성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에 성옥은 어지러운 이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을 다 바칠 불같은 정열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것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성옥은 앞으로 실무적인 문제들은 자기와 같은 젊은 사람들의 힘만으로도 해나갈수 있겠지만 장차 단체를 크게 확대해나가며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자면 이런 인물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여 상징적이나마 그들에게 회장직도 맡기는 등 협회의 중심에 세울것을 계획하고있었다.

협회에 가입을 신청한 사람들과 초대한 각계 인사들이 다 모이자 성옥은 회관안으로 들어갔다.

협회에서 중추적지위를 맡게 될 법조계인사들과 함께 결성식을 축하하려고 온 재야인사들과 정객들이 회관 주석단으로 나와 앉았다. 그뒤를 따라 들어간 성옥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회자의 발언이 있자 장내에는 순간 고요가 깃들었다.

《먼저 오늘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신 한시영선생의 발언이 있겠습니다.》

주석단에 앉아있던 한시영교수가 연탁앞에 나와 섰다.

《저는 교육자입니다. 우리 법조계의 장래를 떠맡게 될, 법의 건전한 발전을 담당해야 할 새 세대들에게 법률을 가르쳐온 사람입니다.

생명이 살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듯 아침저녁으로 오직 법사상과 그 실천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하여왔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영광스럽게도 이 결성식에서 첫 발언을 하게 되였다는 말을 듣고 황송함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또 감히 여러분앞에서 무엇을 말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교육자라지만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때 아무런 대답도 할수 없는것이 저라는 인간입니다. 교육자는 교육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위안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처절합니다. 현실에 눈감은 교육자의 리론이 무엇에 필요하단 말입니까.

이제 여러분과 함께 이미 파국에 이른 법체제를 바로잡는 중대사에 분투할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은 저에게 너무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교수의 발언이 있은 후 여러 인사들이 연설을 했다.

이어 성옥이 협회의 결성을 축하하는 연설을 하려고 연단에 올랐다.

사람들의 이목은 삽시에 법조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아왔으며 협회 결성을 위해 이악하게 노력한 그에게로 쏠리였다.

성옥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리였다.

《이 땅의 법률사는 오늘로서 장례를 치르었습니다. 또 오늘로서 새로운 출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초보적인 물음에 대답하는것으로 걸음마를 떼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무참히 유린당하고있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할 때 저는 항상 몽떼스큐(18세기 프랑스의 부르죠아계몽주의의 대표자, 사회학자)의 말을 떠올리군 합니다.

<자연상태의 만인은 사실상 평등하게 태여나지만 이러한 평등속에서 오래 계속해서 살수는 없다, 사회는 그들의 평등을 잃게 하는만큼 그들은 오직 법에 의해서만 다시 평등하게 된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민주제도란 본질상 공정한 법에 의해 세워지고 통치되는 그러한 제도입니다.

오늘 법실천상에서 볼 때 우리는 중세기이전에 머물러있습니다. 우리는 법이 소수 권력자들의 야욕으로 롱락당하는 불행한 현실을 목격하고있습니다.

여러분은 령장발부도 없이 체포구속되는 사람들이 하루평균 얼마인가 생각해보셨습니까. 불법재판, 재판없는 처형, 원인 모르는 죽음은 또 얼마입니까?

한마디로 이 땅은 범죄의 란무장으로 화해가고있습니다. 법의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는 한 민주화는 영원히 먼 꿈일뿐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러분들모두의 뜻과 힘을 모아 법이 진정한 자기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작은 일보를 떼여놓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걸음은 이 세상을 변혁에로 이끌어가는 큰걸음으로 이어지게 될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장내에서는 박수소리가 오래동안 그칠줄 몰랐다. 대학교수들과 법조계의 선배들이 그를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이윽고 협회의 결성목적과 활동원칙, 활동방향 등이 제시되였다.

결성식이 끝난 후 회관을 나선 성옥은 종로 보신각근처에서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와 만났다.

《강준호선생의 건강은 좀 어떻소?》

그는 강준호가 출판업을 할 때 편집위원으로 활동한적이 있는 사람이였다.

《건강을 회복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주저앉을분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요새 그분이 또 뭔가 일을 벌려놓으려는것 같더군.》

《벌써 소문이 났단 말입니까?》

《소문이라니? 이렇게 신문에까지 났는데.》

그는 손에 들고있던 D일보를 펼쳐보였다. 신문에는 로쇠를 모르는 굳센 의지를 지니고 정치무대에 다시 오른 재야인사 강준호가 경마장에서 정객들과 재야인사들을 만난 내용을 담은 기사가 실려있었다.

필자는 그날 만났던 대머리기자였다.

성옥은 교수에게 강준호가 요즘 계획하고있는바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다면서 또 시작을 한단 말이지. 하긴 그 인간이 그냥 누워있을리야 없지. 이번만은 어떻게 성사가 되면 좋겠는데… 내 래일쯤 선생을 찾아갈거라고 전해주오.》

그는 담배를 피워물며 저으기 심란한 기색으로 물었다.

《참, 우리 대학의 양일선교수가 구속된걸 아오?》

《예, 알고있습니다.》

양일선은 서울대학교 교수였다. 평소에 이 땅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미국에 추종하는 군부독재가 살판치는 한 민주화는 실현될수 없다고 주장하며 동호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였다.

성옥이가 교수를 직접 상대한것은 독서회사건을 통해서였다.

어느날 써클활동을 료해하러 왔던 동호가 금지된 서적을 한권 주고갔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교내에서 책을 보다가 발각되였다.

정보부에 끌리워간 학생은 책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고 구타를 당하였다.

성옥은 책은 자기가 돌린것이니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섰다. 동호는 절대 그럴수 없다며 성옥을 밀쳐버리고 총장방을 향해 갔다.

하지만 이날 그들은 뜻밖의 사실에 부딪쳤다. 양일선교수가 그 책임을 떠맡아 나섰다는것이다. 교수는 대학에 나온 정보부요원들에게 책은 자기가 그 학생에게 주었으니 죄를 물으려면 자기에게 물으라고 하였다.

그 일로 교수는 한동안 고초를 겪어야 하였다.

그가 풀려나올 때까지 성옥은 괴로움속에 모대기였다. 지금이라도 교수가 당하는 그 모욕과 모진 고통을 대신하고싶었다.

동호의 인솔하에 학생들은 양교수의 석방을 요구하며 교내를 벗어나 거리로 진출하였다. 대학교수들도 이에 합세하였다. 당황한 대학당국은 학생들은 학업에 전념하라고 간청하다싶이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시위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들의 투쟁으로 양일선교수는 얼마후 대학으로 돌아왔다.

성옥은 동호와 함께 교수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용서라니, 난 오히려 나에게 진리를 탐구하는 훌륭한 제자들이 있다는것으로 행복을 느끼였소.》

양일선교수는 그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은 신념으로 살아야 하오.》

성옥은 그때 그에게서 그 어떤 풍파에도 굽힘을 모르는 량심과 지성을 보았다.

학생들속에서 인망이 높은 그를 문제교수로 지목하고 주시해오던 당국자들은 그가 4. 3투쟁이후 계속 고조되여가는 대학생들의 반《정부》투쟁을 공개적으로 지지성원해나서자 백주에 령장도 없이 붙잡아들이였던것이다.

그의 체포가 완전한 불법행위라는것을 확인한 성옥은 강준호가 석방되자 곧 양일선교수문제에 손을 대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왜선지 그에 대한 변호는 허락되지 않았다. 면회조차 승인되지 않았다. …

《이번에 양교수에게 엄중한 형벌이 가해질거라고들 하오. 정치범으로 기소될거라는 소문도 돌고 지어 정보부가 간첩사건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말도 있소. 학생들이 또 한바탕 들고일어날 기세요. 우리 교수들도 어떻게 해결해보자고 노력은 하고있소만 잘 안되는구만.》

《저도 그 문제를 많이 생각하는중입니다. 그런데 쉽게는 해결될것 같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소?》

《정상적인 절차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것 같습니다. 변호의뢰도 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여러가지로 방도를 모색하는중입니다.》

《각방으로 노력을 해주오. 아무튼 고맙소.》

《마음놓으십시오. 양선생님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아무리 포악한 독재통치라 할지라도 인간의 정의와 량심을 다 짓밟지는 못한다는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성옥은 새로 조직된 단체의 첫 투쟁을 양일선교수의 석방운동으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성옥의 결심을 알게 된 교수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스승의 애정으로 성옥의 사생활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앞으로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 강준호를 만난 성옥은 협회결성소식을 전해주었다.

강준호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그리고는 다소 심중한 기색으로 물었다.

《동호군의 소식은 들었냐? 교도소를 탈옥한 그가 서울에 들어왔다는 말이 돌던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사실여부는 알수 없지만 지금 대학내 운동권학생들이 그의 영향을 받고있다는 소문도 있더라. 난 그의 인간됨을 잘 안다. 절대로 물러서려 하지 않을테지. 이제 또 한바탕 판을 크게 벌릴거야. 참, 똑똑한 젊은이지. 헌데 세월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구나.》

성옥은 집으로 가며 줄곧 동호에 대해 생각하였다.

동호가 대학생들과 련계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옳은것 같았다. 왜 대학생들뿐이겠는가. 분명 과거의 모든것을 회복하기 시작했을것이다. 또 사회 각계층속에 손을 뻗치려 할것이다. 원래 풍운을 몰고다닌다던 사람이니까…

경마장에 갔던 날 청량리시장곁에서 만났던 선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아는 그때 동호가 강준호의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성옥은 그것이 단순한 인사치레일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창혁이가 그러했듯이 동호도 강준호와 손을 잡으려 시도할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하지만 성옥은 그가 강준호에게서 결코 동의를 얻어내지 못할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완고한 강준호가 절대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것이기때문이였다. 결국 그들은 나름대로의 길을 가게 될것이다.

그런데 비극은 동호가 가는 길에는 가능성과 현실성이 보이지 않고 무참한 희생을 요구한다는데 있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소로 나가니 동료변호사들이 여느때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가보지요? 정선생은 부동산문제가 잘 해결되였는가보군요. 송선생은 스코틀랜드위스키라도 잔뜩 선물 받았는가요? 다들 기분이 좋으신걸 보니…》

왁자하니 웃음판이 터지였다. 실무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던 사무소가 어쩌다 사람사는 집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나만 밥벌레가 된것 같아 창피해 살겠소.》

성옥이 몽롱한 꿈만 꾼다고 제일 많이 비웃던 정변호사의 말이였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우리도 오늘 아침의 일을 다 들었소. 성옥씨가 신발이 닳게 뛰여다닌다구 입방아질만 하다가 되게 뺨을 맞은 기분이요. 그래서 말이지. 내 이 친구들하구 좀 의논을 해봤소. 우리도 받아주지 않겠소? 그러면야 호박잡는거지 뭐요. 나도 학생땐 머리를 좀 들던 놈이라 이거요.》

머리를 사선으로 치켜올리며 우스운 시늉을 해보이는 그를 보자 성옥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남아대장부로서 부끄럽소. 여기 사내들이 있는데 유독 녀자가 그 일을 하고있지 않소, 이래서 되겠소?》

《정선생이랑 바란다면 난 반대없어요.》

《좋아, 친구들! 뜻을 같이하겠다면 내 모두 초청하지. 오늘 저녁엔 신라호텔 가는거다.》

성옥은 명랑한 기분으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바라보느라니 저도 모르게 신심이 생겼다.

물론 앞으로 여러가지 난관이 있을수 있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다.

일단 협회의 활동을 승인하기는 하였지만 당국이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지 않을것은 뻔했다. 사소한 저항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이기에 가해오는 압력도 만만치 않을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가리라고 성옥은 결심했다.

그때 가면 사람들은 나를 리해하게 될것이다.

성옥은 자기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미는 한 동료의 손을 꼭 잡으며 생각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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