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21일 《우리 민족끼리》

 

600년만에 빛을 본 보물

 

주체81(1992)년 5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성에 있는 왕건의 무덤을 찾으시였다.

왕건의 무덤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거기를 꼭 가보아야겠다고 하시면서 이른새벽에 길을 떠나시였다.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로상에서 식사를 하시고 때로는 차에서 내리시여 걷기도 하시며 묘를 찾아가시였다.

무덤은 개성에서 서북쪽으로 20km정도 떨어진 어느 한 산등성이에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덤앞에 이르시여 이윽토록 조용히 서계시였다.

곡절많은 이 나라의 력사와 더불어 세월의 풍파속에 시달려온 왕건의 무덤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묘를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태조 왕건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국가를 창건한 시조왕이다,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해져서 릉을 잘 쓰지 못했을수 있으니 왕릉을 고증하고 시조왕의 무덤답게 훌륭하게 꾸려야 한다는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일군들은 그제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시는 이 길이 후세에 길이 전해질 력사적인 자욱임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의 손길에 떠받들려 반만년전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 확증되지 않았던가. 오늘은 또 왕건릉이 개건되게 되였구나.)

일군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문도 없이 왕건의 묘를 돌아보신 소식은 날개가 돋친듯 전해졌다.

전설아닌 전설은 이때부터 생겨나게 되였다.

큰 귀중품함을 든 로인이 한 일군을 찾아왔다.

《이 보물을 우리 왕씨가문의 하늘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드려주시우다.》

로인은 이런 부탁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 보물은 인차 위대한 수령님께 전해졌다.

그 보물은 뜻밖에도 고색이 짙은 왕씨족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려태조인 왕건은 우리 나라에 첫 통일국가를 세운 사람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시대가 좋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 있소.》라고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절세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나라 력사에 빛을 뿌려주시니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겨난것이 아닌가.

사실 왕씨가문족보는 력사의 어둠속에 영영 자취를 감출번 한것이였다.

반역적인 조선봉건왕조가 서면서 고려의 왕씨가문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참살이 감행되였다.

그 무시무시한 판에서 어느 한 왕족이 자기 가문의 족보를 가지고 구사일생으로 송도장안을 벗어나게 되였다.

그는 깊은 산골에 숨어버렸다.

그때부터 어언 600년세월이 흘렀다.

고려태조왕의 후손들은 자기들의 래력을 세상에 알리기를 꺼려하였다.

그리하여 100년도 여섯번이나 흐른 기나긴 세월 무수한 수난과 곡절속에서 귀중한 족보는 한낱 한가정의 가보로 어둠속에 깊이 잠겨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왕건의 묘를 찾아주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한 왕씨자손들의 감격이 어떠했으랴.

그들은 선조들의 마음까지 합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를 드리였다.

가문의 가장인 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은 하늘의 태양이시다. 태조 왕건이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난대도 족보를 희세의 위인께 삼가 드렸을것이다.》

왕건왕의 족보가 600년세월의 주름이 잡혀서야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께 바쳐졌다는 희한한 이야기는 만사람을 놀래우며 전설로 길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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