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11일 《우리 민족끼리》

 

푼두골의 비석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존함은 강도 일제에게는 겁에 질려 벌벌 떨게 하는 공포의 상징이였고 우리 인민에게는 승리의 신심과 락관을 북돋아준 희망의 등대였다.

만경대고향집에서 만경봉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얼마간 가느라면 푼두골이라고 부르는 잠풍한 골안이 나진다.

한때 이곳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증조부모님의 분묘가 모셔져있었다.

그앞에는 김보현선생님의 체취가 슴배인 옛 비석도 있었다. 비석에는 만경대일가분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있었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만은 없었다.

해방된 이듬해인 주체35(1946)년 봄 어느날 만경대고향집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사연에 대해 감회깊은 추억을 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0여년만에 만경봉에 오르시면서 흘러간 옛시절을 추억하시는듯 자주 멈추어서시여 주위를 살펴보기도 하시고 또다시 걸음을 옮기시며 산중턱에까지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윽토록 푼두골에 있는 증조부모님의 산소쪽을 바라보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 푼두골에 우리 증조부모산소가 있고 그앞에 비석이 있다고 하시면서 《여기에 우리 집안들의 성명이 다 새겨졌으나 내 이름만은 없습니다.》라고 하시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는것이였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선친들의 묘소를 잘 모시고싶은 마음은 지극하시였으나 너무도 살림이 가난하여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것을 두고 늘 가슴아파하시던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주체27(1938)년 어느날 두분의 분묘앞에 소박한 비석을 해세우시였다.

비석뒤면에는 손자분들과 증손자분들, 지어는 외손자분들의 이름까지 주런이 다 새겨졌다. 그런데 유독 맏증손자분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만은 일제의 가혹한 책동에 의하여 끝끝내 새겨질수가 없었다.

이때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밀영에 혁명의 사령부를 두시고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려나가시던 시기였다.

주체26(1937)년 6월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 커다란 승리가 이룩됨으로써 일제식민지통치체제는 밑뿌리채 뒤흔들리고있었으며 도처에서 만신창이 되도록 얻어맞은 일제놈들은 김일성장군님의 존함만 들어도 넋을 잃고 쥐구멍을 찾았다.

일제놈들자체가 산간오지의 철없는 아이들까지도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외우며 그이를 해방의 구성으로 흠모하고 따른다고 비명을 지른 사실도, 장백현의 한 경찰우두머리가 취재하러온 기자가 내민 명함장에 《김일신》이라고 쓴 이름을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잘못 보고 《악》 소리 한마디를 지르고는 기절해 넘어졌다는 이야기도 이즈음에 생겨난것이다.

이처럼 천출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의 존함만 들어도 벌벌 떨던 일제는 선조의 묘비에 자손의 도리로서 항렬에 따라 이름을 새기는 조상전래의 풍습마저도 지킬수 없게 책동하였다. 놈들은 지어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비석에 새겨질가봐 비석자체도 세우지 못하게 발악하였다.

그리하여 선조분들의 비석에는 끝끝내 맏증손자분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새겨지지 못하였던것이다.

자그마한 농촌마을 뒤동산의 소박한 비석뒤에 새겨지는 항일의 청년장군의 존함앞에서도 그처럼 벌벌 떨던 일제의 가련한 꼬락서니는 그대로 하늘이 낸분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앞에서 종말을 고해가는 《대일본제국》의 초라한 몰골이였다.

비록 비석에 존함을 모시지 못하게 갖은 비렬한 책동을 다하였지만 우리 수령님의 태양의 존함이 력사와 더불어 온 세상에 길이길이 빛을 뿌리게 될줄을 일제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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