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4월 10일 《우리 민족끼리》

 

위대한 어버이의 한생의 지론

 

4월의 봄명절, 태양절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우리 인민과 세계진보적인류의 가슴속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그리움이 끝없이 흐르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김일성동지는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만민이 우러르는 절세의 위인이시다.》

2만 600여개!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전기간 현지지도하신 단위들을 말하여주는 수자앞에서 이 세상 누구나 격동을 금치 못한다.

혁명으로 삶을 시작하시고 혁명으로 전생애를 관통시키셨으며 위대한 생애도 혁명의 길에서 마감지으신 우리 수령님에 대한 못잊을 추억을 불러오기때문이다.

혁명도 건설도 오직 인민을 위하여, 바로 여기에 우리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리념이 있고 목표가 있었으며 지향이 있었다.

언제인가 우리 수령님께서 하신 귀중한 교시가 쟁쟁히 메아리쳐온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고있다. 그것은 바로 인민들모두가 잘사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이다.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도, 수많이 일떠세우는 건설물도 다 인민을 위한것이다. 때문에 일군들은 모든 사업의 첫자리에 항상 인민의 리익을 놓고 사색을 해야 하고 완강히 실천해야 한다. …

인민의 리익을 모든 사업의 첫자리에,

이것은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에게 의거하고 인민을 위하여 혁명하신 우리 수령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명령이였고 한번 어긴적 없이 지켜오신 사업원칙이며 삶의 륜리였다.

주체81(1992)년 5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고령임에도 머나먼 길을 달려 개성시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며 로고에 로고를 바치시였다.

그날 어뜩새벽에 평양을 떠나 안개짙은 새벽길을 달리던 승용차들은 잡관목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길가의 비탈진 공지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멈춰서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아침밥을 먹고가자고 하신것이였다.

이제 10여분이면 가닿을수 있겠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 길가에서 아침식사를 드시게 하다니.

어버이수령님께서 도로에서 얼마간 떨어진 야산기슭의 잔디밭으로 걸음을 옮기시자 일군들은 더욱 당황해났다. 한 일군이 그이께 어떻게 풀밭에서 밥을 드시겠는가고, 개성에 아침밥을 준비시켰다고 말씀올리였다.

사실 그들은 지방당일군들에게 최대의 성의를 다해 준비를 하도록 《특별지시》를 주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엄하신 표정으로 국가주석의 현지지도라고 해서 왕님행차하듯 해서는 안된다, 옛날에는 시골의 사또만 행차해도 숱한 아전나부랭이들까지 묻어가서 음식상을 차려놓고 진탕망탕 먹고 돌아치며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내군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인민우에 군림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인민의 심부름군이다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은 자신께서 내겠다고, 어제 저녁에 곽밥을 준비시켰으니 그걸 하나씩 나누어주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면 인민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으니 좋고 시간을 절약해서도 좋다고 하시는것이였다.

너무도 옹색하고 목이 꽉 메여와 아무 말도 못하고 곽밥을 받아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것은 식은 밥에 반찬이라야 콩나물과 도라지무침이 전부였다.

손에 든 곽밥을 내려다보며 모두가 눈굽을 적시는데 우리 수령님의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찬밥을 마른대로 그냥 먹으면 체할수 있으니 더운물을 한모금씩 마시고 밥을 들라고…

간소한 야외식사는 15분간도 못되여 끝났다.

마지막 한사람이 저가락을 놓을 때까지 기다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럼 시간도 없는데 더운물로 입가심들을 하고 어서 떠납시다 하시며 일어서시였다.

이때 두명의 일군이 팔뚝만 한 나무토막을 얻어다놓고 돌아앉아 손칼로 열심히 껍질을 벗기고있었다. 그건 뭘 하자고 그러는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물으시자 한 일군이 어줍은 웃음을 지으며 여기가 뜻깊은 자리여서 표적을 해두고싶어 그런다고 말씀드리였다.

뜻이 깊다는건 무슨 소리요! 이런데까지 표식빌 세우자고 동무들은 묻어다니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인민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겠는지 그거나 연구하시오.

어버이수령님의 발자취가 무수히 찍혀진 이 나라의 산과 들에 이러한 야외식사자리가 얼마인지 그들이 어찌 다 알수 있으랴.

길없는 심산속에도, 갈대 설레이는 길섶, 머나먼 섬마을 도래굽이에도 우리 수령님의 발길은 수없이 깃들어있는것이다.

혁명과 건설도 오직 인민을 위하여,

이것은 력사교과서나 당회의문건에 남은 문구가 아니였다.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인민의 리익은 혁명의 근본이고 혁명의 요구였다.

그렇듯 위대한 어버이사랑의 세계를 되새겨볼수록 인민들의 먹는기름문제를 두고 마음쓰시며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토론하자고 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그날의 음성이 들려오는듯싶고 이른아침 두부공장에 나오시여 그 맛까지 보시며 인민생활문제로 마음쓰신 수령님의 미소가 눈물겹게 안겨온다.

인민이 사는 곳 어디에나 뜨겁게 찍혀있는 우리 수령님의 발자욱, 그것을 다 이으면 우리 조국의 지도가 되고 인민이 주인된 이 나라의 력사가 되리라.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외국의 한 문필가를 위해 오찬을 마련하신적이 있었다. 그때 그 문필가는 위대한 수령님께 슬기로운 조선인민의 번영을 위하여 부디 건강하시기를 축원한다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위해서 오래 살라니 참으로 고맙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후날 그는 이 사실에 대하여 감동적으로 전하면서 인민이라는 두글자만 화제에 오르면 금시 활기를 띠시는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글은 마땅히 인민적인 송가로 되여야 할것이라고 자기의 심정을 절절히 토로하였다.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우리 수령님 한자한자 쓰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글발이 떠오른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였다. …

《인민들속에서》!

정녕 언제나 자신을 인민의 아들이라 하시며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신 위대한 인민의 태양이시고 불세출의 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 이 나라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고귀한 추억이 《인민들속에서》, 이 여섯글자속에 그대로 담겨져 빛을 뿌린다.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인민의 리익을 최우선, 절대적으로!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만복을 불러오신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지니시였던 인민사랑을 그대로 체현하고계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이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로 하여 인민이 주인된 이 땅우에 더 큰 행복이 마중오고있다.

 

 

그렇다. 위대한 한평생, 위대한 력사는 끝나지 않았다. 더욱 줄기차게 흐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하늘처럼 여기신 우리 인민을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상으로 정히 새겨안으시고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받들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높이 모시여 어버이수령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시며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인민들속에 계신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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