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21일 《우리 민족끼리》

 

《5. 18과 미국》(1)

 

지난 16일 남조선언론 《민플러스》에 남조선에 친미독재《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책동한 미국의 범죄행위를 자료적으로 폭로하며 저들이 길들인 군사파쑈깡패들을 5. 18광주학살만행에 내몬 배후가 바로 미국이라고 주장한 글이 실렸다.

글의 내용을 련재로 소개한다.

 

《전두환 신군부, <하나회> 배후엔 미국이》

 

5. 18광주항쟁 39주기를 맞아 미국에 학살책임을 묻는 진상규명운동이 전개되고있다.

신군부(新軍部)라 불린 《하나회》는 전두환이 주도하고 박정희가 기른 군사조직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나회》는 6. 25전쟁중이던 1951년 륙군사관학교 령남출신인 전두환, 로태우, 최성택, 박병하, 김복동이 《5성회》를 조직하면서 시작된다.

1961년 정호용, 권익현 등이 합류하여 《7성회》로 됐다가 1963년 《하나회》로 재편했다.

《5성회》시절 전두환주도로 륙군사관학도들은 5. 16군사정변 지지시위를 벌렸고 이를 계기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눈에 들어 《정권》의 비호아래 《하나회》를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키울수 있었다. 또한 전두환과 《하나회》는 윁남전쟁파병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대부분 군 요직을 독차지하였다.

1979년 박정희가 피격되자 권력공백기를 리용하여 군내 각 요직에 배치된 《하나회》 회원들이 보안사령관이였던 전두환의 뜻에 따라 《12. 12군사반란》을 주도했다.

1980년 5월 17일 《하나회》(신군부)는 《비상계엄확대조치》로 《정권》을 장악한 《5. 17 쿠데타》를 일으키는 한편 이에 항거하는 광주시민에게 특전사 20사단을 투입하여 수천명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이렇게만 보면 전두환이 《하나회》를 만들어 《정권》을 찬탈한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당시 미군이 전시작전통제권뿐만 아니라 군작전지휘권을 통채로 가지고있었다는 점에서 전두환신군부의 모든 움직임이 미국의 지시와 승인에 따른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우선 《5성회》와 《7성회》를 결성한 륙사 11기생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륙군사관학교가 4년제 정규교육과정으로 재편되여 첫 신입생인 11기는 전쟁중인 1951년에 입학했다.

륙군사관학교가 미군정기간인 1946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시작했으며 군지휘권이 미군에게 넘어간 전쟁시기 정규과정이 됐다는 점은 미군이 남《한》 군장교 특히 륙사 11기생들에 대한 장악력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가늠할수 있다.

당시 륙사출신 장교들은 미국 네바다주 군사훈련소에서 6개월에서 1년간 특별군사훈련을 받고 미국식 군사지휘체계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특히 《하나회》가 미국의 요청으로 윁남전쟁에 참전한 후 대부분 군 요직을 독차지한데는 인사권을 가진 주《한》미군사령관의 제가에 따른것이다.

미군이 《하나회》의 배후라는 사실은 《12. 12군사반란》과정에서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난다.

지금은 공개된 《12. 12》에 관한 미국 기밀해제문서에는 《그 시각 주<한>미대사, 주<한>미군사령관은 로재현 국방부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과 함께 새벽까지 군지휘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기록하고있다.

이는 미군이 임명한 남《한》군 최고책임자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일개 소장인 전두환이 체포하는것을 주《한》미군사령관이 진압하지 않고 내버려뒀다는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전두환의 《12. 12쿠데타》는 미국의 승인 또는 지시로 전개됐다고 보는것이다.

전두환이 체육관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되던 날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남긴 말은 전두환과 《하나회》, 그리고 미국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박정희피살 이후 가장 성공적인 미국의 남<한>정책가운데 하나는 전두환<정권>의 수립이다.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 보람도 크다.》(계속)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