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21일 《우리 민족끼리》

 

《일본인들이 멸망하는 9가지 리유와 1가지 살길》(1)

-일본수상 아베에게 쓰는 편지-

 

지난 8월 15일 남조선인터네트신문 《통일뉴스》에 과거범죄를 미화분식하며 오만하게 날뛰는 아베패당을 신랄히 조소, 단죄한 편지가 실렸다.

편지를 련재로 소개한다.

현재 일본수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씨, 8. 15는 조선의 해방과 일본패망 74주년인 날입니다.

《천하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라는 성구를 본바 있습니까?

《천하만사》가 영원할수 없으니 인생의 《한시성(限時性)》을 깨닫고 겸허한 삶을 살것을 담은 금언(金言)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권력에 취해 자신의 인생은 물론 자식들의 인생까지 망치는 삶》을 살다 영원한 지옥불에서 타고있는 동서고금의 정치인들처럼 영원히 일본수상일것처럼 착각하며 오만방자한 삶을 살고있습니다.

당신의 정신적스승으로 일본수상을 지낸바있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께가 그랬듯이 《수상》이라는 자리란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잠시 떴다 지는 한쪼각 구름과 같이 덧없는 자리입니다.

하여 나는 당신을 일본수상이 아니라 《무엇이 정의인가를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으로 보고 아직 희망이 있는 당신의 령혼을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분명한 사실은 당신의 선조들처럼 당신 또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분명한 사실은 당신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동물들과 꼭같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며 오늘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선택할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엄한 존재가 된것입니다.

당신나라의 《지도자》들은 오로지 《섬나라의 한계》를 뛰여넘고자 하는 야욕에서 무고한 타국의 량민들을 《집단학살》하는 범죄들을 자행하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들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을 비롯한 일본인들은 선조의 유산뿐만아니라 이 죄악된 령혼 또한 상속받았기에 그 《죄악된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고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통한 그 죄악상은 끝이 없을만큼 많습니다.

그중 당신나라 사람들의 령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9가지 리유》들을 공개합니다.

이는 정죄(定罪)하고자 함에 있기보다는 멸망길로 향하는 일본인들의 령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입니다. 하여 당신과 일본인들이 멸망치 않을수 있는 《한가지 길》도 알려드립니다.

일본인들의 령혼이 멸망케 되는 첫번째 리유는 《집단학살범죄》입니다.

당신나라는 《한》반도강점기 《제암리집단학살》과 《관동대학살》, 《남경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무고한 타국의 량민들을 집단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신나라가 범한 이러한 죄악들을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한 많은 일본인들의 《집단지옥행》을 견인할 《집단학살》실화 몇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일본군이 범한 《제암리집단학살》사건의 실상을 알려드립니다.

서울시위대 제1대대 군인이였던 홍원식은 강도 일본이 《한》반도침략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군대해산령(1907년)을 내리자 반일의병운동을 전개하던중 3. 1운동을 확산시켰다는 죄목으로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교회당(경기도 화성)안에서 무고한 량민 28명과 함께 갇혀 불에 타 학살되였습니다.

이 사건의 집단학살범은 일본군 아리다(有田俊史) 중위를 비롯한 일본군경들이였습니다. 그날 일본군경들은 3. 1운동을 전개한 주민들을 조사한다고 교회로 모이게 한 뒤 문을 잠그고 집단학살을 자행하던중 불에 타죽어가던 녀인이 안고있던 어린 아기를 살리고자 창문밖 풀밭으로 던지자 현장에서 즉살하였습니다.

광분한 일본군은 교회근처 민가 31가구를 불태우고 39명에 대한 추가집단학살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집단학살소식을 접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고있던 스코필드 선교사(Frank William Schofield)가 1919년 4월 17일 현장을 방문하여 시신들을 매장해준 뒤 현장사진들과 함께 《제암리의 대학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보내여 미국에서 발행되던 장로회기관지《Presbyterian Witness》 등의 언론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여론화된바 있습니다.

다른 집단학살사례로 일본군경이 범한 《관동대학살》사건의 실상을 알려드립니다.

1923년 9월 1일 도꾜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에서 진도 7. 9급의 초강력지진으로 인해 사망자, 행방불명자가 14만명에 이르는 등 재난으로 확산되였습니다.

사회가 혼란해지자 일본군경은 《조선인들이 폭동과 방화를 하고있다.》고 날조하여 경찰조직의 비상련락망을 통해 확산시킨뒤 《자경단》까지 동원해 그 지역에 거주중이던 조선인들을 집단학살한 사건입니다.

《상해림정》산하의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보고한바에 의하면 6 661명의 조선인들이 피살된것으로 되여있습니다.

또 다른 집단학살로 일본군이 자행한 《남경대학살》사건의 실상입니다.

서안사건(西安事件)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항일공동전선을 전개하기로 하자 위협을 느낀 일본군은 남경대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때 집단학살된 중국인의 수자는 중국측자료에는 39만명이상, 극동국제군사재판기록에는 20만명이상입니다. 그중의 많은 이들을 총알을 아끼겠다며 산채로 땅에 묻어죽이거나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죽이기도 했습니다.

일본군들은 심지어 살아있는 중국인들의 목을 누가 더 많이 자르는지 시합을 자행하군 했는데 1937년 12월 13일 《도꾜니찌니찌신문(東京日日新聞)》(현재 명칭은 마이니찌신문)은 이 천인공노할 죄악상을 미담처럼 기사로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남경대학살의 적라라한 실상은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등의 언론인들에 의해 전세계로 공개되였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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