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2월 17일 《우리 민족끼리》

 

《미군에 의한 학살만행사건-로근리사건》 (3)

 

남조선언론 《통일뉴스》에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미제침략군의 치떨리는 야수적만행을 고발하는 로근리학살사건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 글이 게재되였다.

글의 내용을 계속 소개한다.

은페된 진실이 드러나다

 

2001년 1월 12일 《한국》과 미국 두 당국은 로근리사건에 대한 《공동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때 두 당국은 《로근리사건은 철수중이던 미군에 의해 피난민다수가 사살되거나 부상을 입은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사결과》발표직후 빌 클린톤 미국대통령은 《미국을 대표해 1950년 7월 하순 로근리에서 <한국>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발표했다.

미국대통령이 《한국》민을 향해 《공식사과》를 한것은 아니였지만 이처럼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수 없었다.

지금까지 숱한 주《한》미군범죄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은 말할것도 없고 주《한》미군사령관조차 공식사과성명을 발표한적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대통령의 공식적인 《유감》표명에도 로근리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졌다고는 말할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만천하에 명백히 드러나 아무리 감추려해도 감출수 없는 사실만 어쩔수 없이 인정하였기때문이다.

로근리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단편적인 일부 사실만을 인정하겠다는 태도였던것이다.

이런 태도는 그동안의 미군범죄사건에 대한 미국의 행동양식 그대로였다.

미군이 1945년 9월 이 땅에 첫발을 디딘이래 주《한》미군의 범죄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났다.

주《한》미군의 력사는 곧 미군의 범죄력사이기도 하다.

미군의 범죄는 여러가지 형태였다. 민간인학살과 같이 명령계통을 따라 미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한 집단범죄행위도 있고 개별적인 사병들에 의한 개인범죄사건도 있었다.

미국과 《한국》정부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진실을 밝히기보다 은페하고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로근리사건도 그런 경우의 하나였다.

1999년 9월 29일 미국의 《AP》통신이 그 사건을 보도하기전까지 로근리사건은 력사의 어둠속에 묻혀있었다.

물론 《AP》통신의 보도이전에도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은 있었다.

학살사건피해자의 한 사람인 정은용은 오래동안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로하여 이 사건의 실체가 상당부분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국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부》도 미국의 눈치나 보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9년 9월 29일 《AP》통신이 보도하고 이를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지들이 받아 보도하게 되면서 로근리사건은 세계적인 조명을 받게 되였다.

 

진실의 단면만 드러낸 미국과 《한국》정부

 

《AP》통신의 보도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몇달이 지나자 공격이 들어왔다. 일부 증언자의 증언이 1차적경험이 아니라 간접적인 경험이라며 공격했다.

또한 미국 국방부는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것은 고의성이 없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이였다. 사건이 일어난것은 《전투경험이 없고 훈련을 덜받은 나어린 병사들이 전장에 급히 투입되는 바람에 두려움에 떨다가 실수로 총격을 가한것》이라고 변명했다.

언제는 《세계최강》이라고 자랑하던 미군이 한순간 오합지졸로 바뀌였다.

더우기 미국방부는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감추려 했다.

미공군의 전투폭격기 등이 명백히 민간인을 공격목표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임무보고서》라든지, 《조종사의 증언》같은것들을 은페하려 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 사건피해자들은 진실을 은페하는 행위라며 분개했다.

《한》미조사단의 《공동발표》 뒤 정은용 로근리미군량민학살사건 대책위원장은 《외딴 산간마을의 주민들을 미군이 안전한곳으로 안내해주겠다며 끌어내 폭격과 기총사격, 소총으로 400여명을 마구 학살한 사건, 이게 로근리의 진실입니다. 클린톤대통령의 발표는 이런 진실을 허구로 가리면서 생색만 내려는 짓입니다.》라고 비판했다.

로근리사건피해자들과 대책위원회는 미국정부가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주장했다.

《발표문》은 《일어난 사실》만을 인정하고있을뿐 학살이란 점을 인정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미국은 《로근리사건은 절박한 <한국>전쟁초기의 수세적인 전투상황하에서 <강요>에 의해 철수중이던 미군이 로근리주변에서 미상의 수많은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힌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미군에 의해 사람이 죽은 사실은 인정하겠는데 고의적인것은 아니라는 주장인것이다.

또한 미국측의 《보고서》에서는 발포명령책임 등의 주요쟁점에 대해 죄다 물음표를 달고있다.

곳곳에서 《결정적증거가 없다.》는 점을 리유로 《사격명령은 없었다.》는 《단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를 위해 《고의적인 학살》이 아니라는 《증언》들만을 골라서 기술하고있다.

이에 대해 미국조사단 자문위원인 한 예비역 해병중장은 《사격명령이 없었더라도 미군지휘부가 최소한 부대와 사병을 저지하거나 통솔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발포명령이 내려졌을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정은용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들이 민간인을 집단적으로 사살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게 말이 되는가, 책임이 없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유감>을 밝힌것은 또 뭔가.》라고 비판했다.

미국정부는 관련자료들을 샅샅이 뒤지는 《성의》를 보이긴 했으나 로근리 피해대책위원회는 미국측이 문건을 빼돌린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미국측이 가지고있는 미1기갑사단예하 각 련대와 대대의 전통보고문은 몇월, 며칠, 몇시에 날씨가 어떠했는가까지 상세히 기록되여있는데 유독 문제의 로근리지역 7련대 2대대의 기록만 빠져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참전장병들의 증언을 이끌어내는데 매우 소극적이였다. 특히 륙군부 장관은 조사과정에서 《전쟁범죄자로 밝혀지면 처벌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참전군인들의 《증언》을 막았다.

반면에 《한국》측의 보고서에서는 문제의 제1기병사단 제7련대 2대대 전령과 무전병의 《피난민에 대한 사격명령이 반드시 있었을것으로 믿고있다.》는 증언 등 학살명령과 관련된 사실을 중요하게 취급했다.

내용적으로 보면 사격명령이 있었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측의 보고서역시 학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과 반대되는 내용의 《증언》들을 병렬적으로 라렬함으로써 학살명령에 대한 사실을 희석시켰다.

《공동발표문》은 이외에도 공중공격에 대해서는 발생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고 모호하게 기술했다.

결국 1999년 10월부터 시작된 《한국》과 미국 두 당국사이의 15개월간에 걸친 《로근리진상조사결과발표》는 분명히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량쪽주장을 병렬적으로 기술하는 선에서 끝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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