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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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의에서 일군들에게 명백히 말씀해주시였다.
《미국은 지금 자기의 군대를 남조선에 영구주둔시키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책동하고있습니다. 쏘련군대가 철수한다고 하여 그 수단과 방법들이 점잖아지리라고 생각하는것은 오산입니다.》
장내에 술렁거리는 소음이 퍼져나갔다.
앞줄에 앉아있던 강원도당위원장이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나서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났다. 그는 해방직후 조국에 나온 쏘련출신 일군이였다.
《저… 그런데 지금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붉은군대가 철수하는것은 우리와 쏘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였기때문이고 또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앞으로는 불피코 쏘련정부가 우리 정부를 멀리하게 될것이라는 소문이 돌고있습니다. 정말 미군이 그냥 남조선땅에 주둔해있게 된다면 우리도 생각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쏘련군의 철거를 중지시키든가 적어도 연기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소리였다.
《그건 반동분자들이 퍼뜨리는 요언이요. 도당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반동놈들의 그런 악선전을 입에 올려서야 되겠소? 쏘련군대가 우리 나라에서 철거한다고 하여 결코 우리 나라와 쏘련과의 관계가 멀어지는것은 아니요. 쏘련군대가 철거한 다음에도 조쏘량국 인민간의 친선단결은 변함없이 강화될것이요. 그러나 오늘 우리 인민들에 대한 정치교양사업에서 중요한것은 우리 인민이 자체의 힘으로 조국의 통일과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할수 있다는 신심을 확고히 가지도록 하는것이요. 그렇소. 우리를 지지하고 성원하는 강력한 우방이 있다고 하여도 제 집대문은 제가 지켜야 하고 제 집문제는 제가 처리해야 하는거요. 자기 힘을 믿지 못하면 혁명년한이 어떻든 직위가 어떻든 변질과 타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되고마오. 각급 당단체들은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자체의 힘으로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분발해나서도록 하여야 하오.》
회의가 끝난 후
강원도 철원군으로 향하시던
며칠전 룡당포에 나가시였을 때 만나보시였던 변익수라는 부소대장청년의 고향에 가보실 생각이였다. 물론
금천일대는 38연선과 린접해있으면서 남쪽으로는 군사전략적요충지인 송악산을 끼고있고 북쪽으로는 여러개의 큰 도로와 철길까지 가지고있는 교통상 중요분기점으로서 황해도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지역이였던것이다.
례성강의 지류인 구연천과 시변천, 미당천의 합수목을 끼고있는 서천면의 시변리는 금천읍에서 동북쪽으로 수십리 떨어져있었다. 벌방지대인 황해도에서는 찾아보기가 드문 산골이였다.
승용차가 시변리의 어느 한 뚝길에 천천히 멈춰서자 뙈기뙈기 널려져있는 논과 밭에서 가을걷이에 여념없던 농민들이 맨발로 달려나와 만세의
함성을 올리며 차에서 내리시는
허연 채수염을 기른 로인의 주름깊은 눈귀로 어느새 맑은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주름많고 고박하고 농사일에 꽛꽛해진 모습이 만경대에 계시는 할아버님을 련상케 하여 가슴이 젖어들고 친혈육의 심정으로 로인을 비롯한 이곳 농민들의 살림살이형편을 더듬어보게 되시였다.
《
《그러니 벼가 잘되지 못했다는걸 로인님도 인정하고계신다는거지요. 물론 해방전에 비하면야 이만해도 대단하지요. 해방전에 비하면야…》
그들의 가까이로 다가가시여 너무 죄스러워서인지 고개를 제대로 숙이지조차 못하고 허둥거리고있는듯 한 벼이삭들을 가리키시였다.
《동무들, 우리가 9월 9일에 공화국창건을 선포했다고는 하지만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아직도 허다하오. 그런데 지금 내보기에는 여기 시변리인민들의 생활형편이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 뒤떨어져있습니다. 제한된 부침땅과 충실치 못한 벼이삭들을 보면 다 알립니다. 부침땅면적을 결정적으로 늘여야 합니다. 논면적을 확장하고 벼의 수확고를 높이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적자금에 의한 관개공사를 적극 진행하는 동시에 농민들이 자체의 힘으로도 관개시설을 많이 건설하도록 적극 장려하며 방조할것입니다.》
《그러니 농민들이 모두 합심하여 관개공사부터 힘있게 내밉시다. 옛날부터 논물욕심엔 친구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로인님… 어떻습니까? 혹
제가 경험많으신 로인님의 생각과는 어긋나게 생각하는건 아닌지…》하고
《어쩌면
《아닙니다. 논에 물이 충분해야 벼가 잘 자란다는거야 누구나 알고있는 상식이지요. 문제는 농민들이 오늘에 만족하면서 그쯤하면 일없으니 안먹고 안하는게 낫다는 식의 낡은 사상관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로인님 같은분들이 잘 일깨우고 도와주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의 손으로 더 새롭게, 더 멋있게 창조하고 꾸려나가야 합니다. 누구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데도 없고 또 그런 버릇이 붙어도 안됩니다. 관개공사뿐아니라 이 고장엔 산이 많으니 축산을 대대적으로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변리농민들이 나아갈 길을 하나하나 밝혀주신
사람들이 저마끔 뒤를 돌아보며 한동안 떠들썩했다. 한참만에 누구인가가 사람들을 헤가르며
《석고명이라고 제 옆집에 사는 령감의 딸이 그 변익수와 좋아합니다. 그 딸의 이름은 석반월이라고 아근에선 그래도 그중 인물도 잘나고 성품도 좋은 애입니다. 그런데 그 딸은 지금 해주에 나가 공부를 하고있고 고명이 그 사람도 오늘 마누라와 같이 저 령너머에 있는 교회당에 례배보러 갔습니다. 그래 그 집식구들이 여긴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그분도 해방전에 이 일대에 퍼져있던 감리교의 신자인 모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변익수의 장인될 사람이 신자라는것이
《오늘 저녁에라도 석고명농민을 만나거든 사위감이 경비대생활을 아주 잘한다는것과 얼마전에 38°선을 넘어 들어오려던 미군놈들을 쫓아버려 큰 공훈을 세운 그를 내가 직접 만나보았다는것을 전해주십시오. 훌륭한 사위감을 두었다고 내가 칭찬해주더라고 말입니다.》
《네, 제 오늘중으로 꼭 전해주겠습니다.》
옆집에 산다는 그 농민은 마치
《익수동무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십시오. 이제 너의 고향에서도 전변이 일어날거라구 말입니다. 우리도 경비대병사들에게 짝지지 않게 일을 더 많이 할것이라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고명이 그 사람이
《비단 익수동무에게만이 아닙니다.》하고
《여기는 38°선이 가까운 곳인데 경비대원들을 친혈육처럼 잘 도와주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나섭니다. 우리의 주권과 우리의 땅, 우리의 모든것이 저절로 지켜지고 유지되는것은 아닙니다. 지금 발전하는 우리의 현실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반동놈들과 계급적원쑤들이 전쟁을 하자고 별의별 흉책을 다 쓰고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여러분모두가 분발하여 농사도 잘 짓고 인민군대와 38경비대 동무들에 대한 원호사업도 잘해야 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나라는 전쟁의 불길속에 잠기게 됩니다.》
《왜 그러십니까? 재지 말고 의문되는것이 있으면 어서 말씀하십시오.》
《
《물론 미국이 자기의 국제적의무에 충실하자면 응당 군대를 철수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미군은 절대로… 절대로 조선에서 스스로 물러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하시는 동안
《그러나 우리는 우리 땅에서 쏘련군대를 철수시키고있습니다. 왜? 민족의 자주권을 위해서입니다. 자주권을 잃으면 나라는 언제 가도 평온할수
없으며 더우기 우리 나라에서는 외세의 간섭책동을 짓부시고 자기의 자주권을 고수하지 못한다면 분렬된 강토를 통일할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우리
또다시 울려퍼진 만세의 환호성… 울며 따라서는 농민들을 뒤에 두고 떠나시는
지금 38°선너머 남쪽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있는지… 조선반도를 기어이 타고앉을 야심에 충만된 원쑤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있는지. …
아기도 태여난 그해 겨울이 제일 춥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