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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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의 형성발전

고고학적 및 인류학적발굴자료들에 의하면 100만년 이전시기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조선사람은 다른데서 넘어오거나 건너오는 등 흘러들어온 이주민인것이 아니라 인류발상지의 하나인 조선땅에서 인류로 발생하여 그 려명기로 원인, 고인, 신인단계를 거쳐 발전하였다.

조선사람의 선조는 평양의 상원군의 검은모루유적을 남긴 사람들과 력포사람, 승리산사람들로 대표되는 조선 옛 류형사람들이며 그들은 오랜 구석기시대를 거치고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아시아대륙 동쪽의 넓고넓은 지역에서 조선사람으로 형성되였다. 조선말의 형성발전은 조선사람의 형성발전과 유기적인 련관속에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발생은 사람의 발생과 때를 같이한다.

조선말은 그 어떤 다른 지방에서 흘러들어온 이주민의 언어에서 기원한것이 아니라 조선 옛 류형의 원인단계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고인과 신인단계를 거쳐 이루어지고 완성된 조선고유의 언어이다.

조선말은 자연계의 구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자주성을 얻고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한 로동과정에 이 땅에서 그 주인인 조선사람이 형성되면서 함께 이루어져 발전하였다.

조선말은 형성초기에는 말소리체계와 문법구조, 어휘구성이 비교적 단순하였으며 점차 력사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풍부화되였다.

조선 옛 류형사람들은 오랜 발전과정에 하나의 피줄과 언어를 이어받은 여러 갈래의 종족들로 발생발전하게 되였다.

조선 옛 류형사람들의 피줄과 언어를 이어받은 이 여러 종족들은 일찌기 원시공동체사회에서 벗어나 점차 노예소유자사회로 넘어가기 시작하였고 BC 3000년기 초에는 드디여 평양을 중심지로 하여 원시조 단군을 통치자로 하는 첫 국가인 고조선(전조선인 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을 일떠세웠다.

이리하여 조선말은 첫 국가어-국어로 되고 문화의 민족적형식을 더욱 특징짓게 되였다. 이것은 동방력사에서도 하나의 획기적인 사변이였다.

반만년전에 동방의 첫 나라, 첫 노예소유자국가인 고조선이 일떠서면서 우리 나라는 원시공동체사회가 붕괴되고 여러 종족들이 통합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였다. 피줄과 언어를 같이하는 같은 갈래의 여러 종족들이 통합되는 과정에 언어적공통성은 더욱 강해졌으며 조선말은 나라의 강성, 력사의 발전에 따라 발전풍부화과정을 더욱 다그쳐오게 되였다.

고조선에 뒤이어 구려, 부여, 진국 등 노예소유자국가들이 련이어 일떠섰다.

노예소유자국가들인 고조선의 3000년 력사를 거쳐 더욱 발전하는 력사에 따라 봉건국가들인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떠선 삼국시기로 되면서 조선말도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고조선과 구려, 부여는 고구려에 의해 통합되고 이에 따라 고조선과 구려, 부여에서 쓰이던 조선말은 고구려국가를 단위로 하여 통일적으로 발전하게 되였으며 진국에서 쓰이던 조선말은 백제와 신라, 가야가 섬에 따라 이 국가들을 단위로 하여 발전하게 되였다.

봉건국가들의 분립은 오래동안 계속되였으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 조선말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갈라지지 않고 그 피줄과 함께 단일성을 확고히 담보하면서 단일어로서의 공통성을 유지하고있었다.

일반적으로 기원상 공통성을 가진 하나의 언어가 몇개의 봉건국가를 단위로 하여 몇세기만 서로 갈라져있어도 많은 경우 친족성을 가진 다른 언어들로 분화되여 각각 독자적인 언어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사람의 통일적겨레말인 고구려말, 백제말, 신라말은 의연히 하나의 조선말로서의 단일성을 확고히 보장하면서 일정한 방언적차이는 가지면서도 여전히 공통성을 보존함으로써 언어적인 분화를 가져오지 않았던것이다.

삼국에서의 언어적공통성에 대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에 관한 옛 문헌자료에 의하여 밝혀졌을뿐아니라 특히는 옛 문헌에 반영된 삼국시기의 사람이름, 고장이름, 벼슬이름 등에 대한 리두표기자료의 언어학적인 해독과 분석에 의하여 의심할 여지없이 확증되였다.

이때의 조선말은 고구려말-고구려에서의 조선말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을 주류로 하여 줄기차게 발전하였다.

그것은 고구려가 그때에 조선사람이 살며 차지하고있었던 전체 판도의 5분의 4를 차지한 가장 강대한 나라, 대표적인 큰 나라로서 고구려말이 이 넓은 지역에서 쓰이면서 조선말발전에서 기본줄기를 이루고있었던것과 관련된다.

7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여 신라가 자기 판도를 넓히였으나 인차 고구려유민들이 고구려를 이어 발해나라를 세움으로써 또다시 동방의 강성한 큰 나라로 되면서 우리 땅에는 두개의 봉건국가가 존재하게 되였다.

신라의 령토확장에 의하여 신라말의 령역이 넓어져 옛 백제의 전지역과 옛 고구려의 일부 지역 주로 대동강이남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을 중심으로 한 옛 고구려판도의 인민들은 여전히 고구려때의 말을 그대로 써왔다.

그러므로 이 지방의 옛 고구려말은 7세기 후반기부터 둘로 갈라져 그 남부지역방언은 한때 판도상의 변화가 있었으나 의연히 자기의 특징적면모를 일정하게 유지하고있었으며 그 북부지역방언은 발해말로 되여 약 200년동안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걷게 되였다. 10세기에 첫 통일봉건국가인 고려가 일떠섬으로써 인민들은 력사상 처음으로 단일민족국가의 테두리안에서 동일한 언어생활을 할수 있게 되였다.

이것은 우리 말이 단일민족국가의 공통어로 발전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고려에 의한 국토통일로 언어생활의 중심지는 한곳으로 집중될수 있게 되였으며 고려가 수도를 개경(개성)으로 정함에 따라 옛 고구려말인 그 지방의 방언이 공통어의 기초방언으로 되였다.

개경은 본래 고구려의 판도에 속해있었던 곳으로서 5세기이후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으로부터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며 그 언어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고구려말의 남부방언의 령역에 속해있으면서 여전히 고구려말의 특징들을 유지하고있었다.

그리하여 고려말의 형성에서 평양-개경일대의 옛 고구려말은 결정적역할을 놀게 되였는데 그것은 고구려말에서 쓰이던 어휘들을 그대로 고려말에서 이어받아 쓰고있은데서도 뚜렷이 알수 있다.

옛 문헌들에 반영된 고려말어휘들가운데서 고구려말어휘와 대응되는 기록자료는 다 일치한다.

남아있는 문헌자료에서만도 확인되는것이 수십개에 이르고있으며 그 대부분은 오늘까지도 그대로 계승되고있다.

이와 같이 옛 고구려말이 고려말의 기초방언으로 됨으로써 고려는 언어생활령역에서 고구려의 유산과 전통을 전면적으로 이어받을수 있게 되였다.

고려말은 고려봉건국가의 중앙집권의 강화에 따라 그 령역을 넓혀나가다가 11세기이후에는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언어의 공통성의 기초로서 그 영향력을 전국에 미치게 되였다.

그리하여 고려말은 고려판도 전역에서 단일민족국가공통어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역할을 하게 되였으며 방언으로서는 기초방언인 중부방언과 북부, 동부, 서부방언 그리고 제주방언이 존재하게 되였다.

14세기말 리조의 성립으로 수도가 한양(서울)으로 옮겨졌으나 그것으로 하여 결코 민족어의 기초방언문제가 달리 뒤흔들리는것과 같은 심각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한양말이나 개경말이나 본래 다 같은 방언구역에 속하는 옛 고구려말이였다는 사정과 관련된다.

그와 함께 또한 10세기이후 단일민족국가공통어는 거의 500년동안의 고려시기에 일정하게 굳어져왔기때문에 한양에로의 수도의 옮김이 민족어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지 못하였던것이다.

리조시기에 들어서면서 판도의 확장과 대량적인 이민에 의하여 방언구획에서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 북부방언은 동북방언, 서북방언으로 구획되고 종전의 동부방언인 동남방언, 종전의 서부방언인 서남방언 그리고 중부방언과 제주방언 등 6개 방언이 있게 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적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조선말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민족공통어와 방언의 관계에서 그리고 민족어의 규범화와 교육 등 민족어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였다.

이것은 부르죠아민족운동의 한 고리로 벌어진 애국문화운동에 의하여 더욱 촉진되고 그 성과가 공고화되였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강점으로 말미암아 조선말의 발전은 혹심한 인위적인 장애를 받게 되였으며 심지어 언어생활에서 조선말을 쓰는것이 금지되고 탄압받으며 말살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였다.

일제의 조선민족동화정책의 한 고리로 집행된 조선어말살책동으로 조선말교육과 조선말에 의한 출판활동은 금지당하고 심지어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까지도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금지당하는 참상이 빚어지게 되였다.

일제는 조선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을뿐아니라 조선사람들이 성까지도 제놈들식으로 부르도록 강요하였다.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조선말은 조선민족과 함께 빛을 잃고 없어질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잃어버릴번 하였던 조선말은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구원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을 벌리시는 첫시작부터 조선말의 고수와 발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던 시기로부터 무장투쟁의 피어린 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내고 그것을 더욱 보급발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인 투쟁을 벌리시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말과 글은 일제침략자들의 검은 마수에서 고수되고 자기 발전의 새로운 길을 걸어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언어분야에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이 마련될수 있게 되였다.

조국해방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가지 문제》를 비롯한 여러 로작들에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독창적인 언어사상을 제시하심으로써 민족어발전의 앞길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써 해방직후에 우리 말을 국가공용어의 위치에 끌어올리고 일본말의 잔재를 없애버리도록 하시였으며 우리 인민이 조선말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 문맹퇴치사업을 힘있게 벌리는것과 함께 서사생활에서 한자사용을 페지하는 등 조선말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이와 함께 언어규범화사업과 어휘정리사업을 힘있게 벌리게 하심으로써 우리말발전의 새로운 시대를 펼쳐주시였다.

그리하여 조선말은 봉건통치배들의 사대주의와 일제침략자들의 말살책동의 후과로 빚어졌던 부족점을 가시고 민족적특성이 높이 발양된 문화어로 활짝 꽃펴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리론을 빛나게 구현해나가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찌기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하여》《언어와 민족문제》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자주시대 민족어문제해결의 밝은 앞길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언어의 사회적본질과 기능, 우리 민족어의 우수성, 언어의 변화발전의 합법칙성, 언어교육과 학습 등에 관한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사상리론과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주체적이며 문화적인 언어생활기풍을 세울데 대한 혁명적인 사상리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과 문필활동을 통하여 문화어발전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여오심으로써 오늘 조선말은 자기의 발전력사에서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일대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우리 인민의 언어생활은 더욱 높이 발전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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