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6(2017)년 4월 10일 《통일신보》

 

인민은 오늘도 주석님을 노래합니다

 

머지않아 성황리에 막을 열게 될 제5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에 참가할 출연자들의 열의는 여간 아니다.

국립민족예술단을 찾았을 때였다.

연주가, 가수들이 노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를 곡상에 맞게 형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재우시고

    이 밤도 사랑의 길 떠나시는 수령님

    찬이슬 내리는데 또 어데 가시옵니까

    수령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

 

이 노래를 공화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부르면부를수록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신 위대한 일성주석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경모심에 젖게 하는 노래이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평생토록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인민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시고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인민의 수령, 인민의 어버이이시다.

그이께서 일찌기 《ㅌ. ㄷ》의 강령에 인민의 나라, 사회주의를 세울것을 투쟁목표로 내세우신것은 그 결심을 반드시 현실로 실천하시려는 확고한 신념의 분출이였다. 한생의 그 투쟁목표를 위하여 그이께서는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을 믿고 인민의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 혁명을 하시였고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한몸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반일독립의 길에 나서시였을 때에도 인민을 국가와 후방, 정규군으로 보시고 싸움이 시작되면 전민이 병사가 되여 일어날것이라는 인민중시의 믿음과 사랑으로 전민족을 불러일으켜 항일대전을 벌리시였다.

해방후 조국에 개선하신 그이께서 그리운 고향집을 지척에 두시고도 강선의 로동자들을 먼저 찾으신것도 인민의 애국심을 발동하여 새 조선을 하루빨리 일떠세우기 위해서였다.

주석님께서 인민의 의사와 요구를 집대성하여 로선과 정책을 세우시고 인민을 위한 혜택과 시책을 마련하시였기에 그이의 현지지도의 발자취는 공장과 건설장으로, 도시와 농촌으로, 북변의 탄광마을로부터 동해기슭의 작은 포구, 남단의 외진 섬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새겨지였다. 전후 주석님께서 내놓으신 중공업의 선차적복구발전을 보장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경제건설의 기본로선도 안온한 서재에서가 아니라 평양과 자강도 등 방방곡곡의 건설장, 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현실속에서, 인민들속에서 무르익히신 사색과 탐구의 고귀한 결실이였다.

언제나 인민대중을 선생으로 여기고 그들에게서 배워야 하며 모든 일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하여야 한다는것이 인민에 대한 주석님의 절대적인 믿음이고 신조였다.

인민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려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평생 뜻이였고 가장 큰 소원이였다. 명절날, 휴식일도 따로 없이 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면서 지어 1년에 한번 찾아오는 자신의 생신날에도 농장길, 공장의 구내길을 걸으신 주석님이시였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하여 저택에 시험포전을 만들고 농작물의 생태학적특성과 비배관리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농사에 일반화하도록 하신 사실,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수만 있다면 국가주석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도하는 고문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신 이야기 등 주석님께서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기울이신 로고와 심혈은 끝이 없다.

위대한 주석님의 인민적령도와 헌신적풍모에 대해 국제고통련 뷸레찐 《통일》은 《위대한 주석님은 한가정의 행복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인민모두의 만복을 위하여 나라의 새벽문을 제일먼저 여시고 저녁문도 제일 늦게 닫으시며 한평생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걸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라고 전하였다.

그이께서 불같은 정력으로 한평생 인민행렬차를 타고 달려오실수 있은것은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을 지니시고 인민의 리상과 꿈을 반드시 풀어주시려는 무거운 책임감을 간직하신데 있었다. 세상에는 위인들이 자기의 목적을 세우고 먼길을 걸은 일화들이 적지 않지만 주석님과 같이 인민을 위하여 떠나신 걸음을 한평생 멈추지 않으시고 수천수만리길을 걷고 또 걸으신 례는 없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편히 쉬시옵기를 인민들은 절절히 념원하였지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자신의 로고를 오히려 락으로 여기시였다.

《언제면 그 언제면 편히 쉬시렵니까 수령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고 인민들은 노래에 담아 간절히 아뢰였지만 그이께서는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면서 인민의 집을 짓고 인민의 쌀독을 채우고 인민의 옷감을 마련하기 위하여 궂은 길, 험한 길 걷고 또 걸으시였고 일하고 또 일하시였다.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였다.

주석님의 현지지도의 길에는 자동차가 다닐수 없는 머나먼 산촌의 오솔길도 있었고 전화의 나날 총포탄이 비발치는 위험천만한 길도 있었고 눈비내리는 진창길도 있었다. 그이의 현지지도는 인민적령도의 빛나는 귀감이시다. 그이께서 새 사회건설의 첫 시기부터 생애의 마지막나날까지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은 장장 57만 8 000여㎞(144만 5 000여리)에 달한다. 현지지도단위수는 무려 2만 600여개를 헤아리고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사실과 수자이다.

그 모든것이 노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의 구절구절에, 은은한 선률에 그대로 담겨져있어 노래의 여운은 그처럼 큰것이다.

위대한 주석님에 대한 끝없는 경모의 정 강렬한 뜻깊은 4월의 봄날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절절하게 울리고있다.

 

본사기자 리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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