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6(2017)년 4월 15일 《통일신보》

 

백두산하늘아래서 영원히 태양을 따르렵니다

황 진 생

 

위대한 태양의 빛발아래 저는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났습니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습니다.

지난해 5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민족사의 대사변으로 빛내여가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축하단성원들에게 친어버이의 정을 뜨겁게 부어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병석에 누워있는 저의 건강까지 념려하시며 귀한 약들을 보내주시고 치료를 잘해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그 사랑이 죽음을 이겨내는 불사약으로 온몸에 흘러들어 소생의 새봄을 맞고보니 선참으로 찾고싶은 곳이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입니다.

삶의 정신적뿌리가 내리고 조국과 영원히 뗄수 없는 운명의 피줄을 잇게 한 이곳.

경사로운 4월, 눈부시도록 찬연한 빛발을 뿌리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경건히 우러르노라니 백두의 옛전장에 삶의 터전을 잡고 태양을 받들어온 나날들이 더욱 긍지높게 회억되여 감개가 무량해집니다.

 

*      *

 

저는 이 글을 25년전 잊지 못할 4월의 봄날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날도 지금처럼 날씨는 류달리 쾌청하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0돐을 경축하여 성대히 진행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처음으로 참가하였던 우리 재중조선인예술단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온 동포사회가 명절처럼 흥성이였습니다.

한해전 4월의 봄명절을 맞으며 조국을 방문하여 어버이수령님을 뵈옵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은 저의 심정은 류달랐습니다.

하루빨리 그들을 만나볼 생각에 심길선(심양―길림)렬차를 타고 달음박치듯 총련합회 본부가 있는 심양으로 올라온 저는 예술인들의 손을 부여잡고 놓을줄 몰랐습니다.

총련합회의 일군이 이러한 저의 마음을 눅잦혀주며 전체 해외동포들이 충정의 마음을 담아 펼쳤던 봄축전장에서의 가지가지 사연들을 들려주는것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연하는 무상의 영광에 눈시울 젖어와 흐느끼며 만세를 부르고 또 부르며 그야말로 감격의 열파로 축전장은 뜨겁게 설레이는데 수령님께서는 오래도록 손저어주시며 따뜻한 인사를 보내주시였다는것입니다.

그 무대에 우리 재중조선인예술단도 여러편의 작품을 올렸는데 길림육문중학교에 모신 항일빨찌산시절의 수령님의 동상사진을 정중히 모시고 눈물을 쏟으며 부른 노래는 만장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고 합니다.

 

    김일장군님

    력사의 땅 길림에 모시고 사는 우리

    이백만 재중동포 축원의 마음안고

    중국땅 곳곳에서 달려왔어요

    …

 

우리 동포예술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다 들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래를 잘한다고 제일선참으로 박수도 보내주시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고 합니다.

축전무대에 처음으로 선 우리 예술인들이 노래를 불렀으면 얼마나 잘 불렀겠습니까. 그저 백두산하늘아래에 사는 남다른 긍지를 안고 수령님의 동상을 받들어가는 충정의 마음을 노래에 담았을뿐인데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니 누구나 격정을 금치 못했습니다.

총련합회에서 이 노래를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무대에 올린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영광의 축전무대에 서게 되였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예술인들은 두가지 감정에 휩싸여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크나큰 기쁨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에 못지않게 큰 근심이였습니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어떤 축전입니까.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축원의 마음을 안고 지구상의 곳곳에서 명망높은 예술인들과 단체들이 모여와 성대히 펼치군 하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예술축전입니다.

아무리 애국심이 높고 충정의 열도가 뜨겁다 할지라도 비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우리 동포예술단일진대 근심이 큰것은 너무도 당연한것이였습니다.

축전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연습으로 날과 달을 이어왔지만 좀처럼 만족할수 없었습니다.

예술인들의 기량이 부족한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보다는 우리 재중동포들의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보여줄수 있는 기본핵이 없다는것이 시연회참가자들의 일치한 의견이였습니다.

그래서 진지한 론의를 거듭하던 어느날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며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새로 창작하여 부르자는 의견이 제기되였습니다.

누구나 쌍손을 들어 찬동을 표시하였습니다.

사실상 그것은 우리 재중동포들의 마음을 울려주는 감동의 주제였습니다.

세계에는 해외동포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지만 중국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처럼 이역땅에 자기 수령의 동상을 높이 모시고 사는 동포들은 없습니다.

천만년세월이 흐른대도 잊을수 없고 잊혀지지 말아야 할 력사의 현장, 우리 수령님의 성스러운 항일혈전사가 굽이쳐간 전적지에서 재중조선인운동의 혈통을 고수하고 빛내이는것은 저희들의 더없는 자랑으로 영광으로 되고있습니다.

길림으로 가자, 항일의 전적지들에 아로새겨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력사를 온넋으로 체득하자.

이런 지향을 안고 총련합회일군들도 창작가, 예술인들도 1920년대 중엽 한별만세를 부르며 길림으로 모여들던 열혈청년들처럼 여기 길림으로 달려왔는데 그들에게 수령님의 불멸의 사적을 깊이 새겨줄데 대한 과업이 저에게 맡겨졌습니다.

길림성에는 왕청시와 연길시, 화룡시, 훈춘시를 비롯하여 항일의 옛 전구들이 집중되여있는 연고로 하여 일찌기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조국해방성전에 떨쳐나섰던 반일렬사들과 그 후손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살고있습니다.

저의 가정만 보더라도 어버이수령님께서 초기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때에 벌써 그이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간직하고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길림에 가면 꼭 만나보아야 할 아버지의 친구들이였다고 하시며 아버지(황백하)에 대해서도 회고하시였지만 한번 뵈옵고 절세위인의 그 출중한 인품에 너무도 매혹된 아버지는 후날 길림감옥에서 옥중투쟁을 하시는 수령님의 출옥을 도와드리기 위해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한없이 고결한 의리심을 지니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십년후에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으시고 회고록에서 《…손정도목사를 비롯하여 고원암, 오인화, 황백하와 같은 독립운동자들의 후원으로 감옥에서 제때에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붙잡혀 10년쯤 옥중생활을 더 하였을것이다. 10년만 철창속에 더 갇혀있었더라면 무장투쟁을 하지 못하였을것이다.》라고 회고하시였습니다.

그 시절 길림녀자사범학교에 다니던 저의 언니(황귀헌)도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배운 《조선인길림소년회가》를 애어린 학생소년들에게 즐겨 들려주며 조선인길림소년회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일찌기 길림시절부터 태양을 받들어온 수많은 렬사들이 꿈결에도 달려가 안기고싶던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시게 되였을 때의 감동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컸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길림땅에 아로새겨진 어버이수령님의 유서깊은 혁명사적을 해설해주는 강사가 되고 수령님의 동상을 보위하는 호위병이 되였습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늘 하시던 말씀은 수령님의 동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보위하는 길에서 아버지가 생을 마쳤을 때 저는 동상을 받들고있는 대돌을 점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느라니 마치 그 대돌이 우리 수령님을 따라 항일성전에 떨쳐나섰던 혁명렬사들의 군상처럼,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재중조선인운동을 앞장에서 개척해온 공민1세들의 모습으로 안겨왔고 저 역시 흰 대돌처럼 백옥같은 충정으로 절세위인의 동상을 받들어갈 결심을 다지고 또 다지였습니다.

저는 그 하많은 이야기를 길림에 높뛰는 숭고한 뜻을 깊이 새기고 4월의 봄축전장에서 태양찬가를 높이 부르기 위해 찾아온 동포예술인들에게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잊지 못해 회고하신 길림육문중학교 교정의 정향나무꽃향기가 풍겨오고 북산공원지하실에 꺼질줄 모르던 초불과 더불어 절세위인의 열정에 넘친 모습이 안겨온다며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80년 10월 당창건 35돐을 맞으며 그처럼 분망하신 나날을 보내시는 속에도 평양을 찾아온 저의 언니를 몸소 만나주시고 내가 왜 그때 사람들을 금싸래기처럼 귀중히 여기는가, 그때 사람들은 우리가 총을 쥐고 싸울 때 따라나선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그때 사람들은 오직 진리 하나만을 믿고 따라나섰던것이라고 가슴뜨겁게 교시하시였습니다. 그 교시를 전해듣고 어떤 동포들은 봄축전이 끝나면 여기 길림에 삶의 터전을 잡고 동북땅에 깃들어있는 불멸의 력사와 사적물들을 발굴고증하는데 한생을 바치겠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평양으로 떠나기 앞서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서 최종시연회가 열렸는데 그때 저도 예술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길림에 모신 수령님의 동상을 한평생 잘 모셔갈 불같은 결의를 다지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정말 그때처럼 조선민족의 성원으로서의 긍지가 가슴그들먹이 차오른 때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재중조선공민들의 넋이 맥동치는 그 노래가 그토록 어버이수령님께 큰 기쁨을 드렸다니 격정은 대하를 이루고 결심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백두산하늘아래 사는 한없는 긍지를 안고 태양의 동상을 굳건히 받들어가려는 의지가 뜨겁게 분출되는 속에 만사람을 감동케 하는 화폭들이 펼쳐졌습니다.

그 열화의 마음에 받들려 길림육문중학교와 북산공원의 약왕묘를 방불하게 형상한 모형사판이 생겨났고 반일투쟁연고자들의 체험담과 동북3성에서 전해오고있는 김일성빨찌산에 대한 전설적인 무훈담들을 수록한 도서 《왕청의 진달래》도 출판되여 어버이수령님의 항일혁명업적을 우리 재중동포들은 물론 조국인민들속에 더 깊이 체득시킬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들의 충정에 의해 마련된 그 모형사판을 몸소 보아주시고 참 잘 만들었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였고 도서 《왕청의 진달래》출판에 기여한 왕청현지부장에게는 높은 국가수훈과 은정어린 선물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더 밝고 더 정중하게 모시기 위한 사업이 진행될 때는 총련합회만이 아닌 온 동포사회가 충정의 열기로 끓어번집니다.

낮에 밤을 이어 지성어린 물자들을 안고 길림육문중학교로 달려오고 한번 찾아와서는 현장을 떠날줄 모르는 동포들을 대할 때마다 저는 조국방문의 나날에 들은 평양일화를 떠올려보군 합니다.

언제인가 만수대언덕에 올랐던 남측의 한 성원이 나어린 소년단원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떠받들고있는 대돌의 무게가 얼마인가 물었을 때 전체 조선인민의 심장의 무게를 합친것과 같다고 대답했다는 그 유명한 일화를 말입니다.

위대한 수령을 받드는 인민의 그 마음이 대돌의 무게를 이루고있는 조국, 바로 여기에 그 어떤 세월의 풍파에도 끄떡없이 활력있게 전진하는 조국의 참모습이 있듯이 길림땅에 높이 모신 수령님의 동상을 받드는 충정의 대돌로 삶을 빛내이려는 그 마음들은 우리 재중동포조직이 날로 흥하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웅변해주고있습니다.

그 불타는 충정의 마음은 길림땅에만 수놓아지는것이 아닙니다.

두만강연안일대의 수많은 항일혁명전적지들은 모진 세파속에서도 그 정결함과 숙연함을 조금도 잃지 않아 찾는 사람들을 류다른 감회에 젖어들게 합니다. 여기에도 우리 재중동포들의 충정이 슴배여있습니다.

백두산하늘아래 사는 사람들이여서 더욱 긍지높고 또한 남달라야 하는 우리들의 삶이기에 혁명전적지들과 사적물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것을 사명으로, 도의로, 숭고한 의무로 간주하고 온갖 성의를 기울이고있는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길림땅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으로 달려오군 합니다.

삼도만유격근거지에 피여난 류달리 연분홍빛 짙은 진달래꽃을 보면 꼭같은 꽃을 길림육문중학교 교정에 피우고싶고 수종이 좋은 나무를 보아도 수령님동상앞에 무성한 수림으로 펼치고싶은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조국의 어린이들이 아버지대원수님을 뵙고싶을 때마다 부르는 노래에도 있지만 시계바늘 거꾸로 돌릴수 있듯 날과 달도 반대로 돌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행복의 봄날, 뜻깊은 4월 우리 재중동포들에게 하늘같은 축복을 안겨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을 다시한번 뵙고싶은것이 모두의 꿈이고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로 펼쳐질줄 몰랐습니다.

감회도 깊은 2010년 8월 《무정차》, 《무숙박》의 혁명전설을 아로새기시며 중국방문의 대장정에 오르신 위대한 정일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그 모습으로 길림육문중학교를 찾아주시였던것입니다.

그날 수령님의 동상앞에 이르시여 숭고한 경의를 드리신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공부하시던 교실도 찾으시고 북산공원의 약왕묘도 돌아보시며 뜻깊은 사적물들을 보아주시였습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저와 재중총련 길림시지부의 회원들은 한달음에 길림육문중학교로 달려가 장군님의 발자취를 따라 돌아보며 참고참아온 격정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잘 모시고 주변도 잘 꾸렸다고 교시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잊지 못할 4월의 그 봄날 항일혁명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력사의 땅에서 애국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가도록 고무해주시던 수령님생각이 너무도 간절하여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그 교시에서 백두산하늘아래에 사는 긍지를 안고 태양민족의 존엄을 빛내이며 애국사업에 더욱 매진하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믿음과 당부를 읽었습니다.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를 존경하고 따르는것은 자식의 응당한 도리이듯이 망국의 설음에 울던 우리들에게 주체조선의 해외공민으로서의 영예를 안겨주시고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부어주시는 절세의 위인들을 높이 모시고 받드는것은 마땅한 본분이고 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재중동포들을 사랑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고 행복과 영광의 단상에 높이높이 세워주시였습니다.

그 하늘같은 은정을 넘치듯 받아안으며 저도 높은 국가수훈을 지닐수 있었고 조국통일상수상자로 삶을 빛내여나갈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과 정으로 우리 재중조선공민들만이 아닌 해외동포들 모두를 품어주시며 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계십니다.

그 품에 안겨 울고 웃으며 저는 전승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도 지니였고 오늘은 태양의 빛과 열을 자양분으로 받아안으며 새로운 인생의 봄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시 주신 생명을 태양을 받드는 길에서 다 바쳐가려는것이 저의 의지입니다.

길림땅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더 밝고 정중하게 모시고 결사옹위하는것은 우리 재중조선공민들에게 있어서 제일가는 생명이며 총련합회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주는 피줄기입니다.

하기에 우리들은 지난 2월 뜻깊은 광명성절에도 백두산하늘아래에 사는 태양민족의 후손답게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결사보위하며 동포들속에서 중국 동북의 항일혁명전구들을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을 보다 참신하게 하여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고수하고 더욱 빛내여나가려는 결의를 담은 편지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님께 올렸습니다.

저는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시는 우리 가정, 수령님을 목숨으로 보위하고 백두산위인들만을 끝까지 믿고 따르는것을 무한한 영광과 행복으로 여겨온 그 가풍을 후손들에게 제일가는 재부로 물려주며 충정의 한길을 여생이 다하도록 가고 또 가겠습니다.

그 절절한 심정을 담은 노래, 우리 재중조선공민들 누구나 사랑하며 즐겨부르는 《우리는 조선사람》의 한 구절을 새겨보는것으로 저의 글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길림에 모신 수령님동상 한평생 잘 모시고

주체의 혈통 대를 이어 빛내여가리라

하늘과 땅이 변한대도 우리는 조선사람

수령님의 아들딸로 민족의 존엄 빛내가리라

 

(필자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 길림지구협회 회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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