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6(2017)년 7월 27일 《통일신보》

 

민족문화유산-개성의 삼댐모래찜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가운데는 개성의 삼댐모래찜도 있다. 얼마전 우리는 개성시인민위원회 보건국 국장 렴정철을 만나 삼댐모래찜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 자 : 오래전부터 개성지방사람들이 삼댐모래찜을 해왔다고 하던데.

렴 정 철 : 그렇다. 삼댐모래찜터를 일명 삼대미라고도 한다.

삼대미는 개성시 동대문밖 개울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게 펼쳐진 모래불을 두고 하는 말이다. 특별히 모래가 많은 내라고 하여 그 이름을 사천이라고도 부른다.

사천의 약모래는 천마산과 송악산, 용암산, 회망산의 천봉만악 뫼부리를 씻으며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살이 몰아온것이다. 여기에 울창한 수림속에서 새여나오는 진액까지 합쳐져 오래전부터 약모래로 소문이 자자하다.

기 자: 삼댐모래찜의 약효와 치료원리에 대해 알고싶다.

렴 정 철 : 삼댐모래찜터의 모래에는 마그네시움, 철, 동, 규소, 망간, 칼시움을 비롯한 성분들이 많이 포함되여있어 신경통, 관절염, 만성위염, 산후탈, 불임증 등 치료범위가 대단히 넓다.

삼댐모래찜의 놀라운 치료효과는 라돈기체에 의한것이다. 라돈기체는 피부와 호흡기를 통해 몸에 흡수되여 신경계통, 심장혈관계통, 물질대사 및 내분비계통, 조혈계통, 소화기계통 등에 좋은 작용을 하며 피부의 적응력을 높여주어 염증을 빨리 낫게 한다.

삼댐모래찜은 해마다 삼복철기간에 하는데 그것은 삼복철에 뜨거운 열작용에 의해 모래속에서 더 많은 라돈기체가 방출되여 치료효과가 높아지는것과 관련된다.

기 자 : 삼댐모래찜이 언제부터 알려지게 되였는가.

렴 정 철 : 삼댐모래찜터의 유래는 력사책들인 《고려사》, 《중경지》 들에도 기록되여있다.

어느날 동대문밖 사천기슭에 산대암이란 이름을 가진 기묘한 절벽아래의 모래우로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르고 주위에 초목이 우거져 절경을 이루고있다는 말을 들은 의종왕(고려 18대왕)은 거기에 《연복정》이라는 정각을 짓게 하였다. 그런데 물이 얕아 배를 띄울수 없으므로 사천에 제방을 쌓아 호수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산대암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삼댐이란 말은 산대암이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이밖에 삼댐이란 말이 인삼다음이란 뜻에서 나왔다는 일화도 전해지고있다. 옛날 황해도 배천고을에 몰락한 량반부부가 마흔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이 살았다. 하도 속이 상해 안해인 안씨가 용한 의원을 찾아갔더니 의원이 하는 말이 《내외가 양기가 몹시 허하네. 양기를 돋구는데 인삼이상 없으니 인삼을 푹 달여 복용하면 기별이 있을거네.》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인삼 한근을 얻어 달여 먹었는데도 기별이 없어 다시 의원을 찾아갔더니 수염을 내리쓸며 의원이 하는 말이 《삼다음은 모래찜이야. 산대암아래에 가서 모래찜을 하라구. 남았던 랭기가 깡그리 빠질거네.》라고 하는것이였다.

의원의 말대로 사천에서 모래찜을 한 안씨는 그후 떡돌같은 아들을 셋씩이나 낳았다고 한다. 안씨는 너무 기뻐 만나는 녀인들에게 《이보라구, 삼다음은 모래찜이야.》라고 자랑했다. 이 말이 한입두입 건너 삼댐모래찜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우리는 개성의 자랑인 삼댐모래찜터를 더 잘 보존하고 치료조건과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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