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7(2018)년 7월 4일 《통일신보》

 

  민족단합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여(10)

해외조국통일운동의 원로로 내세워주시며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애국의 길에 삶의 아름다운 자욱을 남긴 해외동포들가운데는 림창영선생도 있다.

식민지민족의 운명을 태줄처럼 감고 1909년 10월 은률군에서 태여난 림창영선생은 일찌기 193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생활을 하였으며 반일운동을 벌리였다. 8. 15후에는 남조선으로 돌아와 나름대로 민족의 운명을 놓고 고심도 하였다.

《부귀도 공명도 내 알바가 아니다. 오직 나라 사랑만이 나의 천분이다.》

이런 초지를 품고 몸부림도 쳐보고 정계, 학계, 언론계, 종교계 등에 관여하면서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림창영선생이였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키없는 배와 같은 처지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남조선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있던 선생이 고민과 번뇌의 수렁에 깊숙이 빠져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을 때인 1970년대 중반기에 그의 안해인 리보배녀인이 공화국을 방문하게 되였다.

어느날 그를 만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남편은 애국주의사상이 매우 높다고 하시면서 림선생의 애국주의사상에 매우 탄복하고있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안해에게서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어린 믿음을 받아안게 된 림창영선생의 마음은 그이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와 감사의 마음으로 끓어번졌다.

어버이수령님의 고매한 덕망과 친화력에 매혹된 그는 평양방문의 길에 올랐다.

평양방문의 나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자고 하시였다.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비록 민족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석님께서 나를 그렇게 믿어주시니 미력이나마 보태여 주석님을 도울 생각입니다, 나는 주석님을 민족의 사표(덕행이 높아 스승으로 되는 사람)로 삼고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통일성업에 매진하겠습니다라고 자기의 진정을 터놓았다.

그후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통일방안을 적극 지지찬동하면서 미국에서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을 활발히 벌렸다.

1992년 4월 림창영선생은 또다시 조국방문의 길에 올랐다. 평양에 도착한 림창영선생은 안해와 함께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자기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이번에 조국에 올수 있은것을 하느님덕으로 알았는데 조국에 와서 보니 주석님덕망때문이였다고, 일성주석님 슬하에서 온 겨레가 꼭 통일을 보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련방제통일방안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면서 우리 인민, 우리 민족이 하느님이라고, 온 겨레를 단합시키면 통일이 백번 가능하다고, 그래서 림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앞집문도 두드리고 옆집문도 두드리고 뒤집문도 두드리면서 동포들모두가 단합하여 조국통일운동에 떨쳐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서 선생은 통일조국의 래일이 꼭 오리라는 확신을 가다듬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생에게 년로한 몸으로 먼곳에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겠다고, 선생님과 같은분들이야말로 해외조국통일운동의 원로이고 선각자라고 하시며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크나큰 감격과 흥분속에 선생은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그이의 손을 오래도록 놓을줄 몰랐다.

선생은 끓어오르는 흠모의 마음을 억제 못하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분초가 새로운 국사를 미루시고 무상의 영광을 베풀어주시니 송구함을 금할길 없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보다 더한 국사가 어디에 있겠는가고 하시며 7천만겨레의 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앞에서는 모두가 심신을 바칠줄 아는 전사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통일성업의 길에서 함께 손잡고 나가자고 하시며 다시금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95년 12월 그가 또다시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체류의 나날 사소한 불편이 없도록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으며 은정어린 사랑의 선물을 안겨주시였다.

진정 절세위인들의 사랑은 민족적량심을 지니고 통일애국에 사는 온 겨레를 따뜻이 안아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자애로운 사랑이라는것을 선생은 심장으로 절감하게 되였다.

하기에 선생은 인생말년에도 운명의 키를 바로 잡고 온넋을 바쳐 민족대단합의 항로를 따라 기운차게 나아갈수 있었다.

 

본사기자 주 일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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