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7(2018)년 7월 4일 《통일신보》

 

《통일신보》가 만난 사람들

《친정집》이라는 정다운 부름과 더불어

―평양산원 원장 김성희―

 

두차례의 력사적인 판문점수뇌상봉과 회담으로 민족적화해와 평화번영의 새시대가 펼쳐지고있는 지금 온 겨레는 크나큰 격동과 환희에 넘쳐있다. 마음속에 묻고 살아온 통일소원을 이룰 그날을 그리며 날과 날을 흥분속에 보내는 사람들중에는 평양산원 원장으로 일하고있는 김성희선생(62살)도 있다. 북과 남, 해외에 널리 알려져있는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북측본부 위원이기도 하다.

 

첫 통일동이에 대한 추억

 

《력사적인 4. 27선언이 발표될 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다 났습니다.》

기자와 만난 김성희원장은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는듯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통일을 갈망하고 갈라져선 못살 하나의 민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범민련 북측본부 위원인 김성희원장도 례외가 아니다.

《뜻깊은 설날아침에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일데 대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신년사를 들으며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습니다. 그후 북과 남의 선수들이 통일기를 휘날리며 겨울철올림픽개막식장에 공동입장하고 녀자빙상호케이선수들이 단일팀을 무어 경기에 출전하는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피줄을 가진 한겨레라는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27일과 5월 26일, 판문점에서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이 진행되는 특대사변이 련이어 일어났으니 이 얼마나 우리 모두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일입니까. 6. 15시대가 다시 온것만 같은 심정입니다.》

《참, 그때 평양산원에서 첫 통일동이가 태여나 온 겨레에게 기쁨을 주지 않았습니까?》

《예. 생각할수록 감회가 깊습니다. 2005년 10월 10일 밤 10시 남조선의 〈통일련대〉 황선녀성이 평양산원에서 딸을 낳았지요. 그때 태여난 애의 이름이 윤겨레인데 이제는 13살이 되였을겁니다. 퍽 컸을텐데 보고싶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추억하지만 그때는 산모가 위급한 상황이였던지라 초긴장상태였다고 그는 추억을 더듬었다. 2005년이면 6. 15가 놓아준 《통일오작교》를 넘어 남조선의 수많은 각계층인민들이 인기있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러 평양으로 달려오던 때였다.

해산예정일을 한주일 앞둔 만삭의 몸으로 시부모들과 함께 평양에 온 남녘의 황선녀성은 도착한 날부터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관심속에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 바깥에는 평양산원 구급차가 비상대기하고있었고 그의 량쪽에는 김성희원장과 의사선생이 앉아 그에게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러던중 갑자기 진통이 와 평양산원으로 옮겨졌다.

《그때 산모의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한해전 맏딸출산때 수술자리가 안에서 터진 위급한 상황이였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산모와 어린애 모두 잘못될수 있었지요.》

그때 김성희원장이 직접 수술장에 들어가 전과정을 지도했다. 황선녀성이 서울로 돌아간 후 그의 수술부위를 본 산부인과의사는 정말 꼼꼼히 잘 했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황선녀성은 평양에서 통일옥동녀를 낳은 감격을 담아 평양산원창가에서 이런 시를 읊었다.

 

너의 고향은 평양이란다

6. 15 축복받은

서울의 평양아이야

무엇보다 6. 15를 닮거라

불가능이 없단다

《이것은 황선녀성만이 아니라 6. 15의 혜택속에 조국통일의 밝은 앞날을 그려보는 남녘겨레의 진정이였습니다.》

그때 황선녀성은 물론 그의 시부모들은 공화국의 무상치료제의 혜택과 평양산원 의료집단의 성의있는 방조에 크게 감동되여 돌아갔다고 한다.

김성희원장은 첫 통일동이의 출생확인서를 자신이 직접 떼주었는데 태여난 곳을 평양산원이라고 쓸 때의 감정은 한두마디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고 한다.

《6. 15시대에 첫 통일동이가 태여난것은 평양산원의 자랑입니다.》

 

녀성들의 《친정집》

 

김성희원장은 평양산원이 생겨 두번째로 원장사업을 해오고있다. 1980년 당시 평양의학대학 림상의학부를 졸업한 그는 지금까지 38년간 평양산원에서 일하고있는 오랜 보건일군이다.

뛰여난 전문실력과 오랜 의사경험은 그가 원장사업을 맡아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김성희원장이 대학졸업후 평양산원 의사로 일할 때 전쟁시기 간호원이였던 그의 어머니는 보건일군은 실력도 높아야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고 늘 일깨워주었다. 그는 30여년간을 평양산원에서 일하면서 공화국의 인민적보건시책에 대해 페부로 체험하였다.

《산원에 와서 비행기를 많이도 탔습니다.》

산모를 위해 비행기가 나는것은 공화국에서 평범한 일로 되고있다.

특히 나라가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산모를 위해 사랑의 비행기가 날았을 때에는 그도, 산모의 고향사람들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군 하였었다.

세쌍둥이, 네쌍둥이임신부가 있는 곳이라면 산간오지 그 어디라도 찾아가고 재해지역 한명의 산모를 위해 직승기가 나는 현실을 직접 겪으면서 이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가 하며 깊은 감동에 잠기군 하였다고 한다.

《그뿐입니까? 산모들은 꿀과 미역은 물론 갖가지 보약을 공급받고 애기옷과 애기기저귀, 애기물수건에 이르기까지 제일 좋은것으로 받아안습니다. 중앙홀의 동백꽃, 도라지꽃, 은행나무잎 등을 새긴 천연보석바닥을 밟으며 우리 평양산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를 낳고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갈 때까지 녀성들이 받아안는 국가적배려는 한두마디 말로 다 설명 못합니다.》

몇해전에는 평양산원에 유선종양연구소까지 세워져 녀성들의 유선증과 유선암까지도 미리 예방하고 조기에 적발하여 치료해줄수 있게 되였다.

녀성들에게 돌려지는 사랑과 배려를 온몸으로 느끼며 김성희원장은 이 고마운 제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여야겠다는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그는 입원환자들에 대한 의료봉사를 진행하는 속에서도 여러 부문의 녀성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현장의료봉사활동을 짜고들도록 하였다. 현장치료대를 뭇고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 등 여러 단위에 파견하여 녀성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 의학과학기술강의도 진행하였다.

《우리 녀성들이 평양산원을 가리켜 〈친정집〉이라 정담아 부릅니다. 그 부름속에는 이렇듯 훌륭한 병원을 세워준 나라에 대한 고마움, 훌륭한 인민적시책을 마련해준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감사의 정이 담겨져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평양산원을 돌아보고 쓴 외신보도자료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다른 나라에서는 녀성들이 1만US$가 있어야 안전하게 해산할수 있다. 그러고보면 지난 30여년간 평양산원에서 태여난 어린이출생을 위해 바친 해산방조비는 72억US$를 넘는다.》

지금껏 수많은 녀성들이 평양산원에서 아기를 낳고 병치료를 받았지만 해산비, 치료비란 말조차 모르고있다.

하지만 《친정집》이라는 정다운 부름과 더불어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은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것이다. 그러면서 김성희원장은 지금의 북남관계개선의 흐름이 더욱 빨라져 평양산원이 북남녀성들의 《친정집》으로 불리울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며 밝게 웃었다.

 

본사기자 김 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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