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8(2019)년 2월 12일 《통일신보》

 

 《통일신보》가 만난 사람들

억센 푸른 잎에 애국의 마음 얹는 소나무화가

 

지난 일요일 모란봉솔숲의 정서는 참으로 이채로왔다. 겨울철이라고 하지만 푸근한 날씨가 며칠째 지속되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 우거진 모란봉에 올랐다.

모란봉의 산길을 따라 걷던 기자는 소나무를 그리고있는 한 젊은 화가에게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그의 그림솜씨에 심취되여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참신하고 기발한 구도, 선명하면서도 친근한 색형상, 힘있고 활달한 붓다름새로 그려가는 소나무그림을 바라보며 둘러선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가는 《조선의 기상이 차넘치는 소나무를 훌륭히 창작하는것이 목표》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소나무화가로 불리우는 리경남선생에 비하면 아직 자기는 멀었다고 하는것이였다. 겸손성에서만이 아닌 진정이 담긴 그의 말에 화제는 자연히 소나무화가에 대한것으로 번져졌다.

소나무화가! 소나무를 얼마나 잘 그리면 소나무화가로 불리우랴.

그의 말에 의하면 리경남화가는 나이 여든을 가까이하고있는데 지난 수십년간 수많은 소나무그림을 창작하여 내놓았다고 한다. 소나무화가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동한 기자는 그를 찾아 떠났다.

 

흥미진진한 《소나무강의》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의 인민예술가 리경남(79살), 그는 단붓질로 소나무를 훌륭히 그려내는것으로 하여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의 창작실에 들어서니 마침 소나무그림창작중이였다. 창작세계에 빠지면 침식마저 잊는다는 리경남화가라고 한다. 80나이를 가까이하고있지만 청춘의 활력에 넘쳐 창작활동을 벌리고있는 그를 보느라니 비결이 무엇일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젊어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리경남화가는 늘쌍 소나무속에서 살기때문이라며 웃으며 말하였다. 그는 《인간의 한생을 두고 말할 때 서양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소나무에서 나서 소나무로 돌아간다.〉는 말이 전해져오고있다.》고 하면서 구수하게 이야기를 펴나갔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로 집을 짓고 살아왔다. 새 생명이 태여나면 금줄에 푸른 생솔가지를 꽂아 대문에 내걸어 세상에 태여났음을 알리였다. 이렇게 새 생명은 태여난 첫날부터 소나무의 기운을 받았다. 아이들은 소나무 우거진 뒤동산을 놀이터삼아 자랐고 성년이 되면 초례상에 대나무와 소나무를 꽂고 정절과 사랑을 맹세했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여나 솔잎타는 연기를 맡으며 한생을 보낸 뒤 죽으면 역시 소나무 우거진 산에 묻힌 우리 민족이라는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소나무와 관련하여 모르는것이 없는 《소나무박사》였다. 소나무의 발생력사로부터 소나무이름의 유래, 소나무의 분류와 생물학적특성, 소나무의 심기와 보호에 이르기까지 모르는것이 없었다. 흥미진진한 그의 《소나무강의》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에 의하면 소나무를 남달리 사랑해온 우리 겨레는 소나무를 즐겨 그리군 하였는데 중세동방미술의 대걸작인 고구려무덤벽화들에도 소나무가 형상되여있다는것이다. 평양시 력포구역에 위치한 돌칸흙무덤인 룡산리1호무덤안칸벽에 강의하고 불의에 굴할줄 모르는 고구려사람들의 담대한 기상을 담아 휘몰아치는 광풍속에서 살아움직이는듯 한 소나무가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후기신라의 이름난 화가 솔거는 벽에 소나무를 어찌나 잘 그렸던지 날아가던 새들이 진짜소나무인줄로 알고 거기에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지금도 전해지고있다.

절벽우에 억센 뿌리를 박고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를 형상한 고려의 리제현, 15세기 리상좌의 《달밤에 소나무밑을 거닐며》, 17세기말~18세기 정선의 《사직단의 소나무》, 18세기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 19세기 허린의 산수화 《산골살이》들에도 모두 소나무가 형상되여있다.

 

수천그루의 소나무를 그린 화가

 

소나무그림들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생활속에 깊이 뿌리박은 소나무에 대해 잘 알수 있다고 하면서 리경남화가는 《소나무는 조선화로 그려도 멋있고 유화로 그려도 멋있는 리상적인 묘사대상이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자기 작품에 소나무를 즐겨 그리군 한다.》며 소나무를 잘 그리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그에 의하면 소나무를 그릴 때 소나무잎은 소담해야 하며 소나무의 정수리를 고르롭게 하여 뻣뻣이 세우지 말아야 한다. 화려하게 그리는데 중심을 두는 버드나무와 달리 소나무그림에서는 소나무의 특성이 잘 살아나는 뿌리그리기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것 그리고 소나무줄기를 잘 그리는데 주의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나무껍질을 그릴 때 붓질을 건성건성하는것과 함께 슬쩍 처리하거나 붓놀림을 시원하고 명랑하게 하여 소나무를 분명하게 그릴데 대한것 등 들을수록 소나무그림에 정통한 화가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46년간의 화가생활기간에 그가 창작한 소나무는 수천그루가 넘는다고 한다. 그의 개인화첩도 보았는데 역시 소나무그림이 태반이였다.

리경남화가가 그린 소나무그림들은 독특한 구도와 힘있고 률동적이며 로숙한 기법으로 하여 미술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그가 창작한 조선화 《소나무》만 놓고보아도 천연바위우에 억세게 뿌리박은 소나무의 우불구불한 줄기와 길게 드리워진 아지들, 무성한 솔잎 등 세월의 비바람을 꿋꿋이 이겨내며 서있는 소나무의 억센 모습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몰골기법의 특징을 살려 한두번의 붓질로 소나무의 형태학적특징과 색감, 질감, 립체감 등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보면 볼수록 깊은 사색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그의 소나무그림들중에서 국보적인 작품으로 등록된것들이 적지 않다. 중국, 로씨야, 뽈스까, 말레이시아 등에서 열린 전람회들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력이 강하여 더욱 빛나는 소나무

 

어떤 곡진한 사연이라도 있어 한생 소나무를 그린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에 그는 추억깊은 어조로 이야기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는 철부지소년이였다고 한다. 어느날 적기들의 맹폭격에 마을뒤산의 아름드리소나무들이 몽땅 불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듬해 봄 불탄 소나무들에서 놀랍게도 새 순이 돋아났다. 그 모습은 어린 그의 가슴에 이름할수 없는 향수와 함께 소나무의 억센 기상을 새겨주었다. 군사복무의 나날 고향을 그릴 때면 제일먼저 떠오른것이 소나무였는데 그것은 전쟁의 시련을 이겨낸 고향의 모습, 조국의 모습이였다.

소나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울려준것은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세계였다고 한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무성한 소나무를 보시고 우리 나라에는 어디를 가나 소나무가 많은데 예로부터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는 변심을 모르는 절개와 의리의 상징으로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

조선민족은 소나무아래서 자라난 민족이기때문에 순진하고 소박하면서도 언제나 푸르싱싱한 자기 본색을 잃지 않고있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사시장철 푸름을 잃지 않고 그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이 억세게 자라는 소나무에는 우리 민족의 기상, 우리 국가의 강인성이 그대로 비껴있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이렇듯 숭고한 뜻을 지니신 절세위인들을 대를 이어 모시여 조선의 국수 소나무가 온 세상에 더욱 빛을 뿌리고있는것이다.

민족의 넋과 기상, 조국의 강인성이 그대로 비껴있어 한생 소나무를 사랑하고 소나무를 그려왔다는 화가의 말은 들을수록 감동을 자아냈다.

리경남화가는 사람들이 소나무그림을 많이 내놓은 자기를 소나무화가라고 부르는데 조선의 화가라면 누구나 소나무를 사랑하고 즐겨 그리고있다고, 모두가 소나무화가라고 덧붙였다.

조선의 자랑, 국가의 상징인 소나무를 훌륭하게 그리는것은 그만이 아닌 이 나라 화가 모두의 꿈이고 희망인것이다.

리경남화가는 말한다.

《강대한 나라가 있어 인민의 존엄이 떨쳐지고 국수인 소나무도 빛나는것이다. 소나무의 강인한 기상으로 력사의 모진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고 승리만을 떨쳐가는 우리 조국이다. 내 나라의 불패의 기상, 승리의 기상을 안고 여생을 소나무그림창작에 바쳐가겠다.》

 

본사기자 홍 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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