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8(2019)년 4월 6일 《통일신보》

 

자주로 빛나는 위인의 한평생

 

예나 지금이나 조선의 지정학적위치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렬강들의 각축전마당으로 무참하게 짓밟혔던 어제날의 약소국이 오늘은 자주로 존엄떨치고있으며 공화국의 인민들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자주적인민으로 되였다.

국력을 강화하지 않고 사대와 외세의존에 매여달린 결과 치욕을 강요당해야 했던 망국사를 돌이켜보게 된다.

사대에 물젖은 봉건통치배들은 19세기 후반기부터 물밀듯이 침노하여오는 유미자본주의렬강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불평등조약을 련이어 맺었다. 그들은 친로파, 친일파, 친청파로 갈라져 저저마다 다른 대국들을 등에 업고 무너져가는 봉건통치제도를 유지해보려 하였다.

결과 국력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국론은 심히 분렬되였으며 《아관파천》, 《을미사변》과 같은 비극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민족의 존엄과 자존심은 무참히 짓밟혀지고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의 참화속에 몸부림치던 삼천리강토는 《시일야방성대곡》과 더불어 일제의 손에 통채로 넘어갔다.

그러나 오늘의 공화국은 더이상 대국들의 짬에서 숨소리 한번 제대로 못내고 렬강들에게 무참히 뜯기워야 했던 어제날의 약소국이 아니며 공화국의 지위는 그 어떤 대국도 무시할수 없이 비상히 강화되였다.

이 거창한 전변은 위대한 일성주석께서 지니시였던 투철한 자주적신념과 그이의 현명한 자주정치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그이께서는 일찌기 항일혁명을 민족적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성전으로 여기시고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의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는 로선을 밝히시였다. 항일대전이 시작되던 시기에 그이께서 제시하신 구호는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무장에는 무장으로!》였고 내세우신 무기획득방법도 적의 무기를 빼앗아 자체로 무장하는것이였다. 일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수류탄공장을 보내달라는 청원편지를 보냈을 때에도 그이께서는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고 하시며 자체의 힘으로 수류탄을 만들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자력갱생의 산아인 그 이름도 유명한 연길폭탄이 나오게 되였으며 폭탄이 작렬하는 곳에서는 일제가 무리로 녹아났다.

조국해방의 력사적대업성취는 그이의 자주적신념이 안아온 빛나는 승리였다.

외세는 해방된 조선 역시 이른바 《신탁통치》의 미명하에 하나의 약소국으로 저들의 지배밑에 예속시키려고 획책하였다. 조선은 렬강들의 명의로 활동하는 어떤 최고총감에 의해 《관리》되여야 하며 이러한 《관리》를 5년, 필요하다면 또 5년동안 연장하고 이 기한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후견》시기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문제를 유엔에까지 끌고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것을 조작해내고 조선의 내정에 로골적으로 간섭하려고 책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음흉한 속심을 조선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라는 자주적론리로 명백히 까밝히시고 강권과 전횡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놓으시였다. 그이의 투철한 자주적신념과 배짱에 의하여 외세의 지배와 간섭은 여지없이 분쇄되였으며 조선은 당당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로 세계정치무대에 나서게 되였다.

모든것이 다 파괴되여 재더미우에서 진행된 전후복구건설과 그리고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종일관 자주적립장을 견지해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언제나 인민의 무궁무진한 정신력과 창조력을 절대적으로 믿으시고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준엄한 난국을 타개하시였다.

주체45(1956)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나라를 방문하실 때였다. 그 나라 정부지도자들은 수령님께 자기들이 주는 기계를 가져다가 공업화하면 되겠는데 무엇때문에 자체로 기계설비를 생산하려는가고 하면서 그렇게 해가지고서는 수지도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들의 말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국제분업에 참가하라는 요구가 다분히 깔려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우리 나라가 좀 더 크고 힘이 세져서 대학생수준이 된 다음에 국제분업에 참가하려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가 기계공업이 없는 조건에서 국제분업에 참가한다면 쎄브성원국들에 원료나 대주어야 할것이며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에게 남을것이란 빈 굴밖에 없게 될것이라고, 우리는 국제분업을 반대하지 않으나 우리 나라의 수준이 다른 나라와 평등하게 된 다음 국제분업에 참가하자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조선의 실정과 조선인민의 리익의 견지에서 분석판단하시는 그이의 정당한 론거앞에서 그 나라 지도자들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경제적자립은 자주정치의 물질적기초이다. 경제적예속은 정치적예속을 낳으며 경제적불평등은 정치적불평등을 가져오기마련인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그처럼 어려운 난국속에서 자체의 힘으로 공업화를 완성하고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도록 하시여 공화국은 외세의 강권과 압력속에서도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지켜낼수 있었다.

1980년대말~1990년대초 동유럽의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이 련이어 붕괴된것을 기화로 적대세력들은 공화국에 대한 정치군사적위협공갈과 경제적봉쇄, 제재책동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이 준엄한 환경속에서도 조선이 사회주의기치를 변함없이 높이 들고 나갈수 있은것은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로선을 확고히 견지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때문이다.

식민지노예로부터 자주적인민으로, 세계지도에서 빛을 잃었던 조선을 존엄높은 자주의 나라로 되게 하신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업적중의 업적이다.

공화국의 성스러운 력사를 자주로 빛내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업적은 영원불멸할것이다.

 

본사기자 고 성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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