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8(2019)년 8월 23일 《통일신보》

 

《유신》독재자가 빚어낸 치욕의 《한일협정》

 

외세에 대한 아부굴종은 나라와 민족을 등진 반역자들의 더러운 생존방식이다. 외세의존에 환장한자들은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민족의 리익을 송두리채 팔아먹기마련이다.

남조선에 대한 횡포무도한 수출규제조치를 취한 일본과 한속통이 되여 추악한 망동을 일삼는 《자한당》패거리들의 망동이 그것을 보여주고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일본의 오만방자한 경제보복조치에 반기를 들 대신 오히려 일본의 역성을 드는 《자한당》의 친일매국행위에서 지난 세기초 일제의 더러운 앞잡이가 되여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을사오적》의 망령을 보고있다.

《자한당》의 망동은 력대로 섬오랑캐들을 하내비로 섬기며 친일로 목숨을 연명해온 뿌리깊은 근성의 발로이다.

본지는 《자한당》의 뿌리깊은 친일매국행위를 이번호부터 파헤치는 련재기사를 낸다.

 

*        *

 

을사국치의 해로부터 60년이 되던 1965년 6월 22일 일본의 도꾜에서는 강도적이고 매국적인 남조선일본《협정》이 정식 조인되는 놀음이 벌어졌다.

이날 일본에서 매국문건에 도장이 찍혔다는 소식이 오기를 초조히 기다리던 남조선집권자인 박정희는 《협정》이 조인되였다는 소식이 날아오자 너무도 좋아서 당시 외무부장관이였던 리동원에게 즉시 축전까지 날려보내면서 분주탕을 피웠다.

그러면 《제2의 을사5조약》으로 배격받는 남조선일본《협정》은 과연 어떻게 꾸며진것인가.

1951년 10월 20일 도꾜에서는 남조선과 일본사이에 범죄적인 《한일회담》이 열리게 되였다.

미국의 각본에 따라 벌어진 《한일회담》은 1961년 5월에 박정희가 감행한 군사정변으로 그것이 중단되기까지의 10년동안에 5차례에 걸쳐 진행되였으나 별로 큰 진전이 없었다.

이에 골머리를 앓고있던 미국은 저들의 손때묻은 주구인 박정희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자 그를 계기로 범죄적인 《한일회담》을 빨리 결속짓도록 음으로양으로 책동하였다.

상전의 이러한 속심을 재빨리 간파한 박정희는 군사정변을 감행한지 두달밖에 안되였던 1961년 7월에 벌린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가 지금까지 부자연한 상태를 계속해온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정부는 한일회담을 년내에 일괄해결할 방침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고있다.》고 떠벌이고나서 그 실현에 발벗고나섰다.

그리하여 중단되였던 매국흥정판인 《한일회담》은 1961년 10월 20일에 다시 열리게 되였다.

당시 일본은 친일주구인 박정희를 몇푼의 돈으로 더 단단히 틀어쥐고 다른 현안문제들도 저들의 요구대로 처리함으로써 남조선일본《협정》을 기어이 성사시키려 하였다.

이에 따라 남조선에 기여든 일본경제사절단과 일본독점재벌들은 박정희에게 저들의 음흉한 기도가 깔린 거액의 돈을 찔러주군 하였다.

박정희가 민정이양을 전후하여 일본상전에게서 받아먹은 정치자금은 2 000만US$를 넘었다.

그후 미일상전의 적극적인 뒤받침으로 1963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감투를 따낸 박정희는 《제3공화국의 운명을 걸고라도 한일회담을 추진시키겠다.》고 하면서 상전의 지시에 따라 1964년 《3월결속》, 《4월조인》, 《5월비준》이라는 일정까지 꾸미고 굴욕적인 협상에 더욱 악을 쓰며 매달렸다.

하지만 박정희의 이 매국일정은 분노한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3. 24, 6. 3투쟁에 의해 실현될수 없었다.

바빠맞은 박정희는 비상계엄령을 내려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을 최루탄과 총칼로 마구 탄압하는 한편 《한일회담고지점령내각》이라고 불리운 《정일권내각》을 꾸며내고 매국《협정》체결놀음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결국 14년간이나 끌어오던 침략과 매국의 흥정판인 《한일회담》은 마침내 일본상전의 강도적인 요구가 관철됨으로써 1965년 2월에는 서울에서 《한일기본관계조약》이 가조인되고 그해 6월에는 일본에서 남조선일본《협정》이 정식 조인됨으로써 끝을 맺게 되였다.

매국적인 《협정》을 통해 박정희《정권》은 일본에게서 응당 받아내야 할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 한마디 똑똑히 받아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일제가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 입힌 막대한 인적 및 물적피해에 대한 배상을 3억US$의 《무상공여》로 어물쩍 처리하였으며 일본과 과거청산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종국적으로》타결하기로 하는 등 천추에 용납 못할 반역죄를 저질렀다.

우리 민족에게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의 치떨리는 과거죄악을 똑똑한 사죄 한마디 없이 몇푼의 돈으로 어물쩍 덮어버리였으니 이런 매국《협정》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렇게 하고도 박정희역도는 큰뜻이 성취되였다고 뇌까리면서 졸개들과 같이 축하연을 벌려놓았다. 이어 《국회》에서 《한일협정비준동의안》을 단 30초사이에 날치기로 상정시키고 일제가 패망한지 20년이 되는 바로 전날인 1965년 8월 14일 《민주공화당》패거리들끼리 순식간에 비준하여버렸다.

매국적인 《한일협정》은 이렇게 세상에 삐여져나오게 되였다.

지금 일본당국은 54년전의 매국적인 《한일협정》을 통해 일제강제징용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는 해결되였다고 떠벌이면서 과거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요구에 응해나서지 않고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경제침략행위에 미쳐날뛰고있다.

하기에 지금 남조선의 각계층은 아베가 오만방자하게 놀아대고있는것은 수십년전 몇푼의 돈으로 일본의 과거범죄를 어물쩍 덮어버린 박정희의 친일매국행위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면서 《유신》독재자에 대한 저주와 분노를 터치고있다.

《자한당》의 조상인 박정희역도의 친일매국행위야말로 《을사오적》을 릉가하는 절대로 용서받을수 없는 민족반역의 범죄행위이다.

 

본사기자 주 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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