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8(2019)년 9월 8일 《통일신보》

 

     《통일신보》가 만난 사람들

공화국기와 어제날의 동포청년

 

70여년의 장구한 세월 오각별 빛나는 람홍색기발과 운명을 함께 해온 인민들이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뜻깊게 맞이하고있다. 이 시각 나붓기는 공화국기를 우러르며 지나온 한생을 돌이켜보는 수많은 사람들가운데는 정훈상(76살)선생도 있다.

일흔고개를 훨씬 넘어선 정훈상선생이 한생토록 심장속에 안고 사는 공화국기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남다른 인생행로를 걸어온 정훈상선생을 《통일신보》가 만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정훈상사건》

이제는 머리에 흰서리가 내렸지만 그의 눈빛은 젊은이들처럼 빛났고 기자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는 생기와 활력이 넘쳤다. 76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바로 1969년말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정훈상사건》의 주인공이다.

《벌써 50년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일이 어제날처럼 생생합니다.》

1970년 12월 29일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환영진을 친 순안비행장(당시)으로는 한대의 려객기가 착륙하였다. 비행기에서는 공화국기발을 손에 든 한 청년이 내리였다. 그처럼 갈망하던 공화국의 품에 안긴 기쁨에 넘쳐 열정적으로 공화국기를 흔들고 또 흔들던 동포청년, 그가 바로 당시 27살의 정훈상청년이였다.

▶ 어떻게 되여 고향을 떠나 공화국의 품에 안길 결단을 내렸는지 알고싶다.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여난 나의 어린시절은 온갖 박해와 탄압속에 흘러간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였습니다.》

나어린 정훈상과 형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통일투쟁의 길에 나섰던 그의 아버지(정해진)와 어머니(전례준)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다. 부모들이 북행길을 택하였다고 하여 그들은 《빨갱이자식》으로 취급받으며 고통속에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늘 고향마을 뒤산에 올라 눈물속에 부모님들이 계시는 북녘하늘을 바라보군 하였다.

남조선에서 1960년 4. 19인민봉기가 일어났을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 학생이였던 그는 리승만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에 참가하였다. 총에 맞고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면서 독재권력에 대한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고 한다. 시위대가 파출소를 점거하자 제일먼저 달려가 리승만의 사진을 떼내여 불태워버린 정훈상선생이였다. 리승만은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남조선의 사회정치현실에서 달라진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잔인하고 포악한 박정희군사파쑈독재 《정권》이 들어섰던것이다.

학비를 물지 못하여 끝내 광주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친척의 도움으로 당시 목포에 있는 해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 학교를 졸업하면 2등항해사자격증을 받게 되여있었다. 공부도 제일 잘했고 학교 롱구주장을 하며 교원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건만 그는 《빨갱이자식》이라고 하여 자격증을 받지 못하였다. 북녘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속지향은 더욱 강렬해지였다.

(북으로 가자!)

마침내 공화국의 품에 안길 결심을 내리였다.

1969년 8월 공화국북반부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건만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당하게 되였다. 하여 그는 고베구치소의 차디찬 철창속에 갇히우는 몸이 되였다.

국제적십자사에 알려 부모님들이 계시는 공화국으로 가게 해달라는 그의 호소를 남조선의 독재《정권》과 공모결탁한 일본반동들은 외면하였다.

《이제 더는 공화국으로 갈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절망속에 날과 달을 보내고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찾아 4명의 낯모를 사람들이 면회를 왔다. 그들중 한사람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효고현본부 사회경제부장이였고 다른 세사람은 정훈상선생을 지켜주기 위해 온 일본의 민주변호사들이였다.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일본땅에서 누가 나를 지켜준단말인가?)

그런 그에게 총련일군은 반드시 공화국의 품으로 갈수 있다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그때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습니다.》

정훈상선생은 감방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와 공화국기를 소중히 품고 그이의 로작을 학습하며 통일신념을 더욱 가다듬었다.

구치소밖에서는 정훈상청년을 구원하기 위한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의 투쟁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일본의 량심적인 인사들과 각계층 사람들도 정훈상청년을 지지하여 10만명서명운동을 벌리였다.

1960년대말 《정훈상사건》은 온 일본땅을 뒤흔들었다.

공화국에서는 평범한 동포청년의 인권을 옹호하여 외무성 성명을 비롯하여 각계층 단체들의 성명들이 련이어 발표되였다. 외무성 성명은 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및 법률적문제를 포함하여 다른 나라와의 관계문제 또는 주요한 국제적사건들에 대한 견해와 립장을 표명하는 무게있는 국가적인 문서이다. 이러한 외무성 성명이 평범한 한 청년을 위하여 발표된데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훈상청년이 공화국으로 오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억류되여 옥중고초를 겪고있다는것을 보고받으시고 그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본반동들이 그를 1년 넘어서까지 억류하며 온갖 박해를 가하고있는것은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적대행위라고, 그를 꼭 데려와야 한다고 하시며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정훈상청년은 꿈결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으며 극적인 인생전환을 하게 되였다.

 

공화국기를 소중히 품에 안고

정훈상선생의 집에는 소중히 보관하고있는 공화국기발이 있다. 정훈상선생은 공화국의 품에 안겨 비행기에서 내릴 때 손에 들고 흔들었던 공화국기발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이 공화국기발을 가슴에 품은 때로부터 50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행복의 금방석에 앉아 꿈같은 나날을 보내여왔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한량없는 은정속에 그는 인민경제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였다. 대학시절 어느 한 병원에 입원한적 있었던 그는 누구나 돈 한푼 내지 않고 마음껏 치료를 받고 의료일군들이 친혈육의 정으로 온갖 정성을 기울여주는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살던 세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현실이였던것이다.

《사람들은 저의 남편이 일흔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청춘의 활력에 넘쳐있는것을 보고 여러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라고 하면 믿기 힘들어합니다.》

정훈상선생이 인민경제대학을 다닐 때 인연을 맺었다는 안해 신혜숙녀성이 하는 말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훈상선생은 어릴적에 나무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친데다가 고등학교시절에는 중병에 걸려 혈육들까지도 살 가망이 없다고 여겼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공화국의 품속에서 돈 한푼 안들이고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던것이다.

알고보니 그와 일생을 함께 하고있는 신혜숙녀성은 처녀시절 만수대예술단의 재능있는 무용배우였다. 그가 출연한 무용 《조국의 진달래》, 《눈이 내린다》, 《사과풍년》, 《키춤》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화국의 유명한 무용작품들이다.

신혜숙녀성과 행복한 가정을 이룬 정훈상선생은 오래동안 인민정권기관에서 일하였다. 정훈상선생의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들도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대학들을 졸업하고 중앙기관의 어엿한 일군들로 자라났다.

▶ 가정에 조국통일상 상장이 3개나 있는데 쉽지 않은 애국자집안이라고 본다.

《나의 아버지와 큰아버지, 사촌형이 받은 조국통일상 상장들입니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받들어온 정훈상선생의 아버지 정해진선생은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의 품에 안겨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다 바친 애국자였다. 큰아버지인 정해룡선생도 해방후 려운형선생과 함께 통일애국투쟁에 나선 애국지사였으며 사촌형인 정춘상선생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싸웠다.

《그들도 람홍색공화국기를 가슴에 안고 통일애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공화국기발은 우리 가정만이 아닌 온 나라 인민의 마음속에 더없이 소중한 기폭으로 간직되여있습니다.》

그러면서 정훈상선생은 꿈결에도 그리운 공화국의 품에 안겨 값높은 삶의 보람과 행복을 한껏 누리고있는 자기를 두고 누구나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군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판이한 두 제도, 두 현실을 살아오면서 순간도 떨어져 살수 없는 은혜로운 조국의 귀중함을 페부로 절감하고있는 정훈상선생, 하기에 그는 운명과 미래를 다 맡아 안아주는 어머니조국의 정다운 모습으로 새겨져있는 공화국기발을 언제나 마음속에 소중히 안고 산다.

 

본사기자 김 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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